우리 가족 주치의 굿닥터스 -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문의 76명이 만든 건강백서
대한의학회, 대한의사협회 지음 / 맥스미디어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직업이 약사라서 하루에 열 시간씩 몸이 아픈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 나는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약국에 와서 질문하는 것들이 사실 몇몇 가지로 한정되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약 먹으면 나아요? 얼마나 먹으면 나아요?"

  "그래서 이 중에 어떤 게 감기약인데요?"

  "비타민 C 한 통 주세요...종합비타민이요? 비타민 C가 몸에 좋잖아요. 그래서 전 그것만 먹어요. 다른 것까지 먹을 필요 있나요?"

  "저기...무좀약 먹고 있는데 술 꼭 끊어야 하나? (멋적게 웃으며,) 이거 아침에 먹을 건데 그럼 저녁엔 술 마셔도 되겠네?"

 

  제일 황당했던 질문은 타이레놀을 소화제로 알고 평생 복용했던 아기엄마였고...그리고 대답하기 참 난감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여기 원장님 잘 봐요? 인터넷 맘스 카페에서 평판이 좋아서 일부러 왔는데~"


 

  이런 질문들을 마주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의약업계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의 생각보다도 의약 관련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관련 직종이 아니니 그들이 (관련자인) 우리에 비해 지식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고 그것을 충분히 채워주는 게 약사의 역할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가끔 본인도 잘 모르면서 나에게 고집을 피우는 답답한 경우를 맞닥뜨리면 시쳇말로 '답이 안나온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일례로, 처방약에 대해 불신감을 갖고 무조건 자기가 원하는 약으로 넣어달라고 우기는 사람들이라든지 병적으로 항생제를 기피하는 몇몇 아기엄마, 혹은 병적으로 항생제를 매일 먹이는 또 다른 아기엄마들...위산이 많이 나와 속이 더부룩하니 부채모양이 그려진 발포성 소화제 물약을 달라면서 왜 달라는 것을 안 주고 다른 걸 팔려고 하느냐고 나에게 역정을 내는 어르신... 혈압약 처방이 의사 마음대로 가는 게 아니라 사실은 일정 단계를 어떻게 거치는 게 좋다는 가이드라인이 따로 있다는 사실, 무분별한 항생제 남용은 문제가 되겠지만 지금처럼 세균성 염증으로 번질 수 있을 땐 당연히 항생제가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 위산과다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는 탄산이 들어가 있는 발포성 소화드링크제는 증상개선에 도움이 안될 뿐더러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믿지 않는다.

  이런 이들의 특징은 면대면으로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의사나 약사 개인은 크게 신뢰하지 않으나 대중매체 케이블 방송의 의료관련 토크쇼 내용이라든지 신문지상에 실린 건강기사들, 주변 지인들의 비슷한 투병경험이나 인터넷 집단지성의 의견은 쉽게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 짚어주면 그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면서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것들이 주로 모 일간지 기사, '우리 아파트 5층 권사님'이나 '조리원 동기 예랑이 엄마', 혹은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대형 맘스카페 게시글들인데 그 글을 작성한 사람이나 5층 권사님이 의약업계 전문가는 확실히 아님을 본인도 인정하면서도 우리 이야기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더 믿으려고 '애쓴다'. 이런 이들은 의학전문기자의 기사도 그 질환에 대한 모든 경우의 수를 다 포함할 수 없음을 좀체 인정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해프닝이 하나씩 있을 때마다, 작금의 우리 사회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쪽으로 흘러가다보니 아는 사람만 믿으려는 심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현상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덤덤히 넘어가려는 편이지만 동시에 더 늦기 전에 좀 더 공신력 있는 어느 누군가가 이렇게 대중들이 잘못 알기 쉬운 의학지식에 대해 정리를 한 번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비슷한 컨셉의 책은 종종 발견할 수 있었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어느 특정 분야-소아질환이나 성인 만성질환-에 포커스를 맞춘 책이 대부분이었으며 저자가 전문가 개인 한 사람인 경우가 많아 의료보건 종사자 집단의 목소리를 대표한다고 보기에는 좀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는데 이번에 출간된 이 책은 대한의학회와 의협에서 공동출간한 책이라 대표성의 문제에 있어서도 걱정할 것이 없고 다루고 있는 주제도 사람이 살면서 평소 흔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들에 대한 것으로 알차게 구성되어있어 좋다고 생각되었다.

  책은 크게 다섯 가지 섹션으로 나뉘는데 생활습관부터 요즘 자주 인구에 회자되는 몇몇 만성질환에 관한 상식, 병원에서 흔히 받게 되는 검사에 대한 궁금증까지 되도록 고르게 구성하려고 한 것이 눈에 보여서 그 점이 좋았다. 내용에 관한 것은 내가 무어라고 말할 재간이 못 된다, 약밥을 10년 가까이 먹어온 내가 읽기엔 내용이 가볍기 때문에...하지만 약국 손님들의 질문 난이도라든지 자주 받게 되는 특정 질환 관련 처방전들이 정해져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일반적인-주위에 편하게 물어볼 만한 의료인이나 보건업계 종사자가 없어 대중매체 혹은 주변 지인의 경험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기에는 무난하고 맞춤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편히 읽히고 간결하여 지루하지 않으며 전 연령층을 대부분 커버할 수 있는 내용이다. 주변 지인에게 추천하겠냐는 질문에는 Yes. 별점을 주라면 별 다섯 개 중 별 네 개 꽉 채워 주련다.

  혹자는 내용이 너무 얕지 않으냐는 불평을 할 수도 있겠지만 범대중적 건강입문서로 이 정도면 훌륭하다. 사실 의료건강입문서가 얕은 내용을 담을 수 밖에 없는 것은 한정된 지면보다도 일반 대중이 보건의료종사자들에게 느끼는 심리적 장벽을 한 번 뛰어넘게 만드는 데 더 의의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보건의료종사자는 질병의 치료만 하는 치유자 뿐만이 아니라 대중이 원하는 건강상담을 해주는 상담자이기도 한데 의외로 그 부분을 간과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 더 깊은 내용을 원했다거나 이 책을 읽고난 뒤 더 궁금한 것이 생겼다면 망설이지 말고 단골 의원 의사에게나 집 앞 약국 약사에게 물어보러 가자. 그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환자의 효율적 진료시간이나 영양제 상담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의사나 약사에 대해 느끼는 심리적 거리감을 좁힌 후에야 왜곡된 건강정보를 맹신하는 일이 없을 것이니 이럴 때는 약간의 뻔뻔함을 무기 삼아 사는 것도 괜찮다. 그로 인하여 당신이 더 건강해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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