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의 연애론 - 새롭게 쓰는
스탕달 지음, 권지현 옮김 / 삼성출판사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좋은 술은 세월을 뛰어넘어 마시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 좋은 글도 그러하다. 쉬이 변색되지 않는 내용을 담은 글은 긴 세월이 지난 후에도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어내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 앞에, 20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스탕달이 와 있다. 입담 좋은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서, 가장 쉽게 변해버릴 것만 같은 '사랑'은 그 정수만 농축되어 마치 변치 않는 소금결정처럼 오롯이 빛난다. 2백 년 후의 후손(?)인 내가 책을 읽으면서 계속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 '농축'의 힘일 터이다. 

  사람이라면 살면서 한두 번쯤 잊지 못할 사랑을 한다. 그것이 어린 시절의 풋사랑일 수도 있고 성인이 된 후의 열렬한 사랑일 수도 있지만 그 '여러 가지 사랑'들은 모두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갖고 있어야 할 구심점을 잃고 불안정하게 이리저리 흔들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스탕달은 이 책에서 그러한 사랑을 모두 네 가지로 구분하고 각각에 대해 자신이 그 동안 생각하고 관찰해왔던 것을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이란 무릇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에 닿아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비교할 바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가도 자칫 한 순간에 차라리 처음부터 없었으면 좋았을 경박한, 한낱 가십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해버리기도 하는데 이 책은 저자의 담담한 펜 끝을 빌려, 그러한 말초적 자극보다는 독자 자신이 해왔던 지난 사랑의 기억을 반추하면서 사랑이라는 것이 갖는 어떤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품성을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준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200년 전의 프랑스 여인들도 내가 지난 달에 했던 고민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니. 그들도 나처럼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면서 공상에 빠지기도 하고 난데없이 그 사람 주위의 사물들이 유리눈이 날리는 것마냥 반짝반짝 빛나보이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니. 시간과 공간은 달라도, 그들과 내가 공유하는 감정의 흐름은 똑같았다. 사랑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 중 하나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또한, 저자가 쌓아왔던 여러 경험에 의한 내공으로 연애고민을 하는 독자들에게는 따로 살짝 조언을 던지기도 한다. 바야흐로 목하 짝사랑 중인 나에게는 어떻게 해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더 사로잡을 수 있을지 좀 더 명확한 길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시선을 조절하라느니 하는 구체적인 조언이야 200년 전 파리에서 통할 법한 약간 낡은 이야기지만, 그가 말한 '결정 작용'을 조절하는 법이라든가 언제 밀고 언제 당겨야 할 지 (대화를 어떻게 받아주고 또 어떻게 대해야 할 지)에 대한 것은, 요즘도 충분히 통할 법 했다. 게다가 남자 입장에서 해주는 조언이라 특히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느꼈다. 
  알랭 드 보통이 번개처럼 우리 앞에 출현하기 전에, 이미 옛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스탕달이 있었다. 프랑스인 다운 섬세한 기질로 인류가 벌일 수 있는 사건 중 가장 아름다운 '사랑'에 대해 늘어놓는 그의 이 담론과 찬탄과 경외가, 꺼칠한 손익계산과 덧붙어 마치 샴쌍둥이같은 묘한 형상을 한 요즈음의 모랫바람같은 사랑에 익숙해진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운 여름이 막 지난 참이다. 이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높은 하늘 아래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면, 그 동안 혼자 바쁘게만 살아온 사람들도 옆에 따뜻하게 손잡을 사람 하나가 은근히 욕심날 법 하다. 외로운 사람들은 이제 옛 사람이 얘기해주는 사랑이야기에 귀기울여 보자. 영화나 소설 속에서만 보던 사랑의 자극적이고 숨막히는 일면만이 사랑의 전부가 아니다. 한 존재에 대한 진정한 매혹이 가져다주는 열락과, 그로 인해 불안정해지는 자신의 삶이 상대방의 그것과 얽히면서 아름다운 인생의 한 장면을 엮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놀라운 가능성의 시사가 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다. 이만하면 로맨스에 대해 논한 여러 책 중에서도 당당히 고전으로 꼽힐 만한 책이다. 사랑을 하는 사람, 사랑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 또 나처럼 짝사랑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사람, 언젠가 사랑을 할 모든 사람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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