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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표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는 여럿이 있지만, '아직 살아있는 작가'들 중에서라면 단연 다치바나 다카시, 이 사람이 내 첫번째로 꼽히는 사람이다. 뚝심있고, 마이페이스이며, 남의 눈치를 볼 줄 모르는 사람.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철학과에 다시 들어가 놓고서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서재용 빌딩을 작게 하나 지어놓고 책만 읽어대며 글을 쓰는 사람. 고집이 대단하기 때문에 가끔 글에서 일종의 '안하무인'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지만, 그 정도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일매일 크고 작은 것들과 싸워온 사람이라 읽으면서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번에 읽은 이 책은, 그 사람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인터뷰어가 되어 열한 명의 젊은이의 이야기를 정리해 실은 것이다. 일본에선 1988년에 나온 책이라고 하지만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분명 통하는 무언가를 갖고 있는 묘한 책이기도 하다.
실제 인터뷰가 있었던 이 시절의 청년들은 점점 무기력해지고 잔꾀만 늘어서 어른들의 눈에는 별 볼 일 없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대다수가 밟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를 일부러 내려서서 자기가 원하는 길을 걷기 위해 앞뒤 돌아보지 않고 매진하는 이 젊은이들이 있다는 걸 알리는 것이 아마 다치바나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정말,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 그래 아직 이런 사람들도 있는거야. 이런 우직한 이들이 남아있어서 다행이야'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내 안의 무기력함까지 아프지 않게 꾸짖어주는 기분이 들어서 읽고 난 다음에도 한동안 마음이 상쾌했다.
어줍잖게 대학을 다니면서 줄곧,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라는데 내 적성이 무엇인지조차 알기 어렵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본인도 그 점에 대해서 2~3년을 방황했다. 정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가 어려워서 하루하루가 미지근해져버린 맥주마냥 맛없고 심심했다. 지금 본인은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안다. 잘해낼 자신까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일을 하면 내가 즐겁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그걸 찾아낸 계기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으로,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면 그냥 놓쳐버렸을 수도 있는 그런 일이었다. 단순히, 적성 하나를 알게 된 것 뿐인데도, 요즘 스스로 너무 즐거워 미치겠다. 전에는 막연히 두렵고 걱정되기만 했던 앞날도 갑자기 극채색의 화려한 무언가로 바뀌어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본인이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청춘표류'에 나오는 젊은이들의 인터뷰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핵심은 이것이다.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를 알아라'. '계기를 놓치지 마라. 무엇이 계기이고 기회인지 살펴라'. '포기하지 마라, 타협하지 마라'. 말로만 들으면 다 아는 내용이고 실천하기도 쉬워보이지만, 직접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듣는 이 아포리즘은 그렇게 간단한 것들이 아니다.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깨지고 박살나가면서 하나하나 익혀온 것들이니까. 이 책을 읽는 우리는, 그들처럼 직접 깨지지 않고서도 그들이 얻어낸 것을 그대로 받아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편한가. 단지, 문제는 그런 우리들이 마지막 책장을 덮고 언제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런 책은 그 안에서 얼마나 싱싱한 것을 낚아올려 우리 마음속에 가두느냐가 관건이다. 소설 한 편 읽는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고 가볍게 덮는다면 당신은 이 책값의 80%는 날려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절실한 사람, 앞날이 보이지 않아 무섭고 두려운 젊은이만 이 책을 읽어라. 반 장난 식의 가벼운 마음으로 가지고 놀기에는, 이 책의 낚싯바늘은 너무 짧고 너무 예리하다. 일격필살. 불안하고 두려운 당신의 마음을 이 열한 명의 젊은이들이 단번에 낚아올릴 수 있도록,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섣불리 이 책을 잡지 않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