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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카노바의 우아한 인생 1
캐슬린 테사로 지음, 서현정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0. 초코바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마담 다리오가 채워줄게!
고인 물같은 정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하나의 계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모습이 영 마음에 안들어도 그런 스위치 하나 없이는 손 하나 꼼짝하기 싫으니, 사람이란 동물이 역시 게으르기는 한가 보다.
대학입시라는 스위치, 결혼이라는 스위치...살면서 여러 계기를 만나게 되지만 그것을 누르는 것만으로는 왠지 어딘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지 않던가? 자신의 모습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전면적인 변신을 꾀해야 할 때, 좀 더 아름다워지고 싶을 때 말이다. 그런 자신의 상황을 알면서도 꾸역꾸역 먹고 낡은 옷을 입고 스스로 아름다워지길 포기하다시피 하며 살았던 루이즈 카노바는 다른 얼굴을 한 우리의 모습이다.
계단 밑 골방에서 살던 해리 포터에게 날아든 호그와트 입학 허가서 같이, 루이즈 그녀에게 안겨온 마담 다리오의 패션백서 [엘레강스]가 우리의 꽃돼지, 루이즈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약 500여 페이지에 걸친 그녀의 이야기에서 핵심을 뽑자면 다음과 같다.
1. 정, 반, 합-이 화학반응에 필요한 촉매는 몇 가지?
이 책의 처음과 끝을 꿰뚫고 흐르는 것은 [정체-불안정-변신]이라는 큰 규칙이다. 젊은 나이에 배가 불룩 튀어나오고 늘어난 스웨터밖에 없는 루이즈, 동성애자인 남편의 무관심에 지쳐버려 일탈을 시도하는 루이즈,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후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낸 루이즈. 이렇게 그녀는 규칙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점점 변화시킨다. 이는 그녀의 태도변화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부정적인 면에서의 무신경, 너무 과민할 정도의 (남자에 대한) 신경, 하지만 결국에는 20년 만에 자연스러운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간 그녀...마치 깎아놓은 듯한 [정반합의 규칙]이 아닌가.
이 규칙이 루이즈 위에서 올바로 돌아가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촉매가 들어갔다. 콜린, 리아, 마담 다리오같이 그녀의 등을 밀어주는 정촉매, 전남편과 올리버, 리츠에서의 대실수같은 소위 '쓴 인생경험' 이라 할 수 있는 부촉매. 그녀 혼자만의 힘으로 이 정반합의 수레바퀴를 굴리려면 힘 깨나 들었을 거다. 높은 에너지언덕이 딸린 이 '변신'이란 화학반응에서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 곧 '합'까지 이를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그런 모든 촉매와 그녀가 갖고 있는 에너지 덕분이 아니었을까.
2. 사랑의 기본은 자신에 대한 사랑
이 책에서 또 하나 유심히 보아야 할 부분은 그녀가 만나온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루이즈는 그녀의 가치를 '얼마나 멋진 남자에게 눈길을 받을 수 있는가'에 따라 판단한다. 자신의 눈으로 보는 자기 모습보다 남의 눈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더 신경쓰는 것은 어찌보면 이해될 법도 한 일이겠지만, 루이즈에게는 그 사이의 밸런스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헛점이 있었다.
올리버 벤트를 만나기 위해 온 극장을 하이에나처럼 헤매고 다니는 그녀, 좀 더 유혹적인 모습을 하기 위해 리츠 호텔에 창부같은 차림을 하고 간 그녀. 아름다운 옷차림이란 스스로의 자신감을 북돋기 위해 필요한 것인데도, 그녀의 복장기준은 언제나 남자였다. 하지만 그런 선택이 그녀에게 언제나 성공만을 가져다 주었던가? 과연 그녀는 그 노력만큼의 온전한 대가를 얼마나 받을 수 있었나?
어렸을 때의 남자친구부터 마지막에 만난 에디까지, 그녀와 인연을 맺었던 남자들은 많았지만 그 중 제대로 된 남자는 에디 하나밖에 없었다. 이는 그들의 눈에 비친 그녀의 모습이 그만큼 불안정하고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진정 사랑받을 만한 여자라기보다, 자신없는 태도로 굶주린 눈을 하고 이리저리 남자를 찾아헤매는 그녀의 모습. 혼자 있기 싫어서 전남편과 결혼했고, 단지 멋진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올리버 벤트에 목을 맸었다. 하지만 전남편은 동성애자였고 올리버 벤트는 옛사랑의 그림자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콜린과 리아의 도움으로 점점 자신을 바라보는 법을 배워가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만난 남자는 밝고 유쾌하며 잘생기기까지 한 젊은 피아니스트 에드워드이다. 결국, 어깨힘을 빼고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사랑하게 될 때 온전한 사랑이 찾아오는 것이다. 전남편과 올리버 벤트같은 찌질한 남자는, 루이즈가 스스로 자기애를 온전히 찾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반증으로 제시된다는 느낌이었다.
3. [엘레강스]-진정한 우아함이란 무엇인가
온 방 안에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마담 다리오의 '말씀'을 신봉했던 루이즈지만, 단지 복장에 대한 팁만이 그 책 안에 있었던 게 아니라는 것을 그 때의 그녀는 몰랐다. 복장 그 자체보다도 그 옷을 입어내는 사람 안에서 살아숨쉬는 '자연스러운 우아함'과 이 핵심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스스로 계속 마인드컨트롤을 걸고, 두려운 마당에도 억지로 한걸음 한걸음 내딛어가면서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은 후 마침내 갖게 된 자신에의 신뢰- '이것이 진짜 아름다운 내 모습이다' 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된 루이즈는 [엘레강스]를 손이 잘 가지 않는 책장 한 구석에 곱게 꽂아놓는다. '마담 다리오도 이 자리라면 마음에 들어할거야'라고 되뇌면서. [엘레강스]에의 졸업. 이는 루이즈가 비로소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살펴볼 수 있는 사람- 한 사람의 아름다운 여인,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아름답게 하는 방법을 아는 여인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서 온전히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람으로. 이 마지막 장면이, 흔한 할리우드 영화의 해피엔딩보다도 더 마음에 와닿는 엔딩이었다고 말하면, 과장이 심한 걸까? 마치 다 키운 내 새끼를 보는 기분, 한 여자가 여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보아온 입장에선 딸자식 다 키워낸 엄마같은 기분도 들었다. 결국 끝까지 잘 해낸 사랑스러운 그녀에게 잠시 책을 덮고 박수를 쳐줬다.
4. 마치며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든 책이지만 책의 첫머리부터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는 루이즈의 모습 하나하나가 나에게 완벽히 겹쳐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워지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나,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할지 알지만 실천하는 것이 두려워서 주저앉는 나- 내 모든 나약한 모습이 그 안에 온전히 들어있었다, 작가인 캐슬린 테사로가 내 모습을 보고 쓴 것이 아닌가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잠깐 했을 정도이니까. 하지만 그 덕분에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나는 곧 책 안으로 녹아들어갈 수 있었고 책 속의 루이즈와 같이 울고 웃으며 즐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비록 내 손에는 [엘레강스]가 없지만 루이즈의 이야기 한 판을 들으며 내가 어떻게 해나가야 할 지 뚜렷한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됐다. '타인이 보는 내 모습보다, 내가 보는 내 모습을 더 우선시해라'. '진정한 매력은 고급스러운 복장에서 나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사랑해라'. 자오선 넘고 큰 바다 건너 마담 다리오가 내게 보내준 이 비결들로, 나도 올 여름 루이즈만큼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