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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아리아나 프랭클린 지음, 김양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읽기를 결정했을 때는 제목에 끌렸고, 읽기 시작하면서는 두께에 압도되었다. 550페이지를 웃도는 분량에, 띠지에 적힌 '중세의 CSI'라는 찬사가, 요즘 왠지 바삭하고 얄팍한 소설이나 읽게 되는 본인에게는 분명 어떠한 기대를 안겨주었다. 밤을 새워가며 토끼눈 되도록 한 권을 막 읽어낸 지금, 본인은 어떻게 느끼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세의 CSI'라는 표현은 맞다. 하지만 21세기의 CSI처럼 현란하고 치밀한 범죄구성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아리아나 프랭클린의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은 소위 '매니아' 층에서 각광을 받을 수 있는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터부시되는 (그래서 더 흥미를 끄는) '죽음'이라는 존재, 법의학, 12세기 영국이라는 중세배경, 살짝 들어가 있는 로맨스, 배경 중 하나로 등장하는 교회 (혹은 기독교 신앙) 등의 매력요소들은 프랭클린의 펜 아래에서 매끄러운 한 편의 이야기로 잘 어우러지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엮어나가며 생기는 소소한 구석구석은 마무리가 약간 허술하다. 이러한 스릴러물에서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키다 멈출 정도로 사람을 쥐락펴락하는 면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이 작품에서 그런 면은 크게 찾아보기 힘들어서 처음부터 한 호흡으로 책에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마치 아름다운 레이스를 감상하던 중, 보고싶지 않아도 밉게 묶인 매듭이 눈에 자꾸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장르를 굳이 잊어버리고 한 편의 '소설'이라고만 생각하면 읽을 만한 책이고 재미도 있다. 하지만 사전에 특정 장르에 대한 선입견 혹은 높은 기준을 갖고 책을 읽는 사람은 정중히 일독을 말리고 싶다.
특히 범인설정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저 범죄의 원인이 '그 사람의 천성'이었다고 이야기하기보다 뭔가 유아살해에 대한 더 설득력있는 근거가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범인-에 대한 작가의 설정은 밋밋했고, 때문에 그만큼 충분히 공들여가며 우리에게 그들의 범죄근성에 대해 어떤 '납득'을 시켜주는 것도 아니다. 작가의 설정에선 그들은 단지 '그런 성격'이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것이었다. 단지 '살인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는 좋은 스릴러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 식으로 설명하려면 우주 삼라만상 중에 설명 못할 것이 없다. 마치 산이라서 산이고 물이라서 물이라는 느낌이 아닌가. 물론 이런 불평이, 은연중에 좀 더 큰 자극을 바랐던 본인의 욕심 때문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작가의 프로필을 보니 중세물을 본격적으로 쓰는 작가인 것 같았는데 그녀의 다른 작품을 기대한다. 다만 그 작품은 지금처럼 물흐르듯 매끄러운 글흐름 안에서도 어느 정도의 깊이를 더 보강한 내용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지금의 솔직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