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충동과 광기의 암호를 해독하다
리처드 레티에리 지음, 변익상 옮김 / 애플씨드 / 2022년 7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크게 들었던 생각이다.
연쇄살인범 프로파일링에 흥미를 느껴서 관련서적을 시간 날 때마다 찾아읽는 사람이라 이번 책에도 흥미가 있었는데, 읽고 나니 이건 내가 기대했던 것과 영판 다르다. 전에는 강력범죄자들과 나 사이에 큰 강같은 것이 있어서 우리는 서로 맞닿을 수 없는 그런 존재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눈 두개 코 하나 입 하나라고 해서 다 같은 인간은 아니지- 하는 그런 정도의 인식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 읽은 이 책에서 저자는 '아니, 그들과 우리는 다 같은 인간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것도 각각의 범죄유형을 하나하나 예를 들어 짚어가면서 그렇게 말한다.
전에 읽었던 프로파일링 관련 서적들은 각 케이스를 풀어나갈 때 사체의 훼손방식이라든지 타겟으로 점찍힌 피해자들의 공통점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엮어서 가해자의 빈곤한 정신세계나 유독 남들보다 강한 가학성이든 폭력성이든 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만족하고 끝내는데, 이 책은 각 범죄자들의 정신분석검사 결과와 과거사를 쭉 보여주고 이 사람이 왜 이런 성격과 정신을 갖게 되었는지 더 깊게 분석해 들어간다. 그 부분이 좀 인상깊었는데 아무래도 경찰과 학자의 차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다이모닉>이라는 개념을 주창하는데 이것은 말하자면 아주 원초적인, 우리 개인의 심연 속에 누구나 갖고 있는 야성적인 일면이다. 평소에는 우리의 이성과 자아가 잘 통제하고 있지만 어떤 이유로 인하여 그 통제의 끈이 끊어질 때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면모를 저자는 다이모닉이라고 칭하면서 이 책에 등장한 각 범죄자들의 다이모닉한 면면이 어떻게 드러날 수 있었는지를 분석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책을 읽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원초성에 대한 통제를 마음에 되새길 수 있게 해준다. 내가 보기엔 그게 이 책의 큰 주제인 것 같다.
연쇄살인범의 정신나간 머리속을 구경하는 재미로 범죄서적을 읽는 분에게는 추천하기 어렵지만 범죄/비범죄를 떠난 큰 범주에서의 인간심리에 관심이 있거나 혹은 양질의 사회구성원을 어떻게 하면 잘 키워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는 분이라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길티플레저로 휙 읽고 잊어버릴 책은 아니고, 읽고 나면 곰곰 되씹어볼 것들이 분명 있는데 그게 어떤 방식으로든 독자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