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 동녘문예 6
김산 지음, 조우화 옮김 / 동녘 / 199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젊다 혹은 어리고 늙음을 얘기하는데에도 시대와 자기가 발딛고 있는 현실이란 문제는 늘 따라다닌다. 한번도 스스로를 어리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김산의 일생을 보노라면 시대의 그 무엇인가에 자신의 젋음을 모조리 맡겨버린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결국엔 젊음 나이라는 것이 시대가 정하고 있는 정신의 최대치와 최소치사이를 진동하는 무엇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아리랑이라는 소설을 읽고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김산이라는 사람은 11살에 집을 뛰쳐나와 동경 만주 북경 상해를 돌아다니며 운동을 시작한다. 톨스토이주의자로 인도주의자로 무정부주의자로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끝내 테러리즘과 결별하고 맑스주의자가 된다. 그는 조선의 혁명은 국제주의적 관점에서 중국의 혁명을 성취하면 가능하리라는 믿음으로 중국공산당에 입당한다. 그런 그의 나이 19살이다. 사상 혹은 이론은 현실을 반영하는 가치라는 것도 나이에 의해 자리매김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실천의 맥락임을 그는 말해준다. 11살의 나이에도 스스로를 혁명의 대열에 서게 만드는 건 한 인간의 비범함이나 이론의 우수성이 아니라 현실의 비참함이다. 사실 맑스주의라는 위대함은 맑스라는 인물의 위대함보다 시대의 비참함이 우선한다.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주위의 현실은 이론을 선택하게 만든다. 어쩌면 그 귀결은 당연한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14세에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고 14살 무렵에 결혼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게 하는 김산의 내적동기는 그 무엇도 아닌 현실이다.

지금의 세계가 이야기하는 어린이 혹은 보호해야할 대상으로서의 제한은 인간을 통제하고 삶을 재단하는 잣대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1살에는 초등학교 15에는 고등학생 20에는 대학생 28은 결혼적령기 40에는 안정된 직장과 자식 뭐 이런 일방향적이고 통제규율적인 연령이데올로기는 현실에 기반함과 동시에 사회적 금기와 지배를 강화한다.
나이는 스스로를 규정하는 잣대가 아니다. 그저 숫자일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나이에' 혹은 '내 나이쯤이면' 하는 사회가 규정한 무언가에 휩쓸려 몸을 사린다. 미시화 된 권력은 이런식으로 작용한다. '자기 시대를 앞서 있다는 것은 선전작업과 비판을 할 수 있는 자격에 불과할 뿐 지도할 자격은 되지 못한다. 위대한 대중운동가는 대중을 쫓아가서 앞으로 밀뿐 대중을 밧줄로 잡아끌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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