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누구를 위한 협력인가 - 비시 프랑스와 민족 혁명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87
박지현 지음 / 책세상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조선일보에서 이 작은 문고판 책에 대해 보기 드문 긴 서평이 실렸다. 그것도 이한우 기자이름으로. 이한우 기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의 과거사 청산에 대해 친일-반일의 틀로 과거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실은 책 소개보다 오늘날 과거사 청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하는게 글의 목적 같았다.) 그야말로 조선일보적인 글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마음이 끌려 책을 사 보게 되었다.

아쉽게도 이 책은 전후 프랑스의 과거사청산에 관한 책이 아니다. 단지 비시정부가 어떤 과정을 통해 성립되었으며 어떤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어떤 지식인들이 어떻게 참여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과거청산에 대해서는 뒷부분에서 간략하게 다루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비시정권에 대해 한국 시민사회가 가지고 있는 ‘상식’을 의심하게 만든다.

우선 비시 정권은 독일의 프랑스 점령 후에 독일의 주도 하에 새워진 꼭두각시 정권-괴뢰정권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우리가 만주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비시정부는 이른바 친독 나치주의자들이 주도해서 만든 정권이 아니라, 나치에 대항해 싸우던 전직 각료들이 주도했다. 비시정부의 수상이 된 페텡(P.Petain)은 독일이 선택한 인물이라기보다는 프랑스가 선택한 인물이다. 이미 1차대전 이후 전쟁영웅으로 떠오른 페텡은 1930년대 이후 신화적인 인물로 프랑스 대중들에게 각인 되어왔다. 프랑스를 구원할 인물이라는 극우파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고, 프랑스 공화정을 수호해줄, 공화주의자 제독등으로 좌파의 대변자로 불려지기도 했다. 그야말로 범국민적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자 레노(P.Reynaud) 수상이 그를 부수상으로 임명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독일의 전격전은 마지노선을 무력화 시키며 1940년 6월 16일에는 마침내 파리를 함락시켰다. 레노 수상이 책임을 지고 사임함에 따라 부수상이던 페텡이 여든 살이 넘은 나이로 수상직에 올랐다. 당시 국방부 차관이었던 드골은 영국으로 망명해 대독항전을 주장했다. 그러나 페텡의 첫 임무는 독일과의 휴전협정이었다.

독일과의 휴전협정 결과로 파리를 포함한 북부는 독일 점령지역으로 귀속되고 프랑스 중부의 온천 휴양지 비시에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다. 바로 비시정부다. 기존의 프랑스 공화국(제3공화정)은 사라지고 에타 프랑세(프랑스국 Etat fran ais)가 출범했다. 재밌는 것은 당시 프랑스인들중 대부분이 페텡의 이같은 결정을 환영 한 것이다. 그들로서는 무지막지하게 밀고 들어오는 전쟁의 포화로부터 한숨 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무기력한 패배를 통해 의식의 변화와 국가재건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러한 무언의 각성이 휴전을 전제로 등장한 비시정부를 지지하도록 만들었다"

드골은 망명직후 대독항전을 주장하며 라디오연설을 했지만 이에 주목한 프랑스 인들은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프랑스를 이토록 무기력하게 패배하도록 만들었던 프랑스의 '집단 도덕성의 위기'라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여기서 우리의 시선을 1930년대 인민전선정부 시기로 안내한다. 프랑스에서 1930년대는 대공황으로 인한 산업화의 폐해가 곳곳에 드러났으며 좌우의 대립과 갈등이 극심하던 시기였다. 프랑스는 무기력했고, 독일의 공격에 무기력하게 무너질 뿐이었다. 프랑스 인들의 좌절감이 팽배하던 시기였다.

"독일에 대한 협력 체제이기는 하지만 무너진 프랑스를 재건해야 한다는 명분 또한 비시정부 수립의 주요한 동기였다."

이러한 상황은 비시정부로 하여금 '민족혁명이라는 카드'를 꺼내들게 했다. 이 새로운 비전에 많은 프랑스의 지식인들(좌우를 막론하고)이 공명했던 것이다. 이 책의 후반부는 이렇게 비시정부와 공명했던 지식인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궤적과 이를 받아들인 비시정부의 민족혁명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점에서 다소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이 책에서 짤막하게 다루고 있는 1930년대를 과연 좌우의 극심한 대립으로 프랑스가 위기에 봉착한 시기로만 파악할 수 있냐는 것이다. 대공황이 서구 자본주의사회 대부분이 겪어야 했던 참혹한 사건이라면 이에 대한 해결방안이 왜 "흙으로 돌아가라"는 구호로 상징되는 농업공동체로의 복귀였는지, 이에 대한 경제적 설명은 상당히 빈약하다. 단지 산업화의 폐해, 부문별한 도시화의 문제라면 그런 폐해가 어떻게 받아들여진 것인지, 농업공동체로의 복귀는 어떤 경제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효과는 어떻게 드러났는지에 대한 설명이 아쉽다. 또한 비시정부의 농업정책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며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이는 문고판 책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농업정책보다 흥미로운 것이 비시정부의 노동정책이었다. 오히려 이 부분이 인민전선 시기의 극심한 좌우대립으로 인한 사회적 상처를 어떻게 비시정부가 치유(혹은 봉합)하려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비시정부의 노동정책의 핵심은 '인간다운 노동자'라는 구호로 정리된다. 이는 비시정부가 발표한 노동헌장으로 구체화된다. 모든 노동조합은 회사의 경영진을 포함하여 지역의 산별노조에 귀속된다. 이는 분명 노동조합-노동운동이 정치적 성격을 가져야 하며 사회주의혁명의 주력부대가 되어야 한다는 좌파적 시각을 거부하는 것이다. 비시정부는 노동조합이 철저하게 경제주의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못을 박는다. 이러한 비시정부의 노조정책은 기본 노조운동의 부정이라기 보다는 19세기 이후 유럽노동운동의 하나의 경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첫쩨, 노동자를 억압하는 모든 형식에 반대하는 반자본주의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파업만이 아니라 공장 폐쇄도 금지하고 있다. 둘째, 직업사회조직에서 지역노조 단위를 기본으로 '조합조직'을 시도하고 있다. 셋째,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하며, 넷째, 회원 개인의 자유보다 집단 노조의 자유를 중시한다. 다섯째, 하나의 노조로 구성된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사회위원회'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기존 노조주의의 역할을 유지하도록 했다."

이러한 비시정부의 노동정책은 1930년대 프랑스 노동총연맹(CGT)의장 출신이었던 브랭의 역할이 컸다. 그는 프랑스의 노동운동이 노동자의 권리를 증진시키기보다는 정치투쟁에 매몰됨으로서 그 본질에서 벗어나 오히려 노동자의 복지와 권리증진에 지체를 가져왔다고 파악한 것이다.

노동헌장이 이러한 노동자의 권리와 자본가의 이해를 타협하는 모색의 결과였다면 노동자의 복지증진을 위한 정책들도 시행된다. 바로 '산업체 노동전문의'와 '노동사회고문관'이 그것이다. 전자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전문으로 다루는 의사를 의무적으로 배치한 정책을 이야기 한다. 이러한 노동전문의의 필요성은 이미 1930년대부터 일군의 의사들에 의해 계속 지게되어온 것이다. 후자는 노동자의 가족이나 심리문제를 상담하는 일종의 전문 상담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시정부의 노동정책은 작업장이 더 이상 계급투쟁의 장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또한 이는 1930년대부터 제기된 '인간학'에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다. 이를 단순히 반노조적이고 보수적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비시정부에 대해서, 특히 제3공화정 이후 프랑스 현대사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도 책은 쉽고 재밌었다. 그러나 이 책은 비시정부에 대한 명쾌한 종합적 해법을 제시해주기 보다는 더욱 의문을 가중시킨다. 이러한 페텡의 비시(1940~1942)가 어떻게 라발의 비시(1942~1944)로 전환되었으며 라발의 비시는 페텡의 비시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왜 페텡의 비시에 참여하고 지지를 보낸 많은 지식인들(이를테면 미테랑)이 레지스탕스 노선으로 생각을 바꾸었는지, 이에 대해서는 이 책을 보고도 알 수 있는 바가 없다.

또한 비시정부를 파시즘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그렇다면 무엇을 파시즘으로 규정화는가의 문제를 만들어 낸다. 정책입안과 시행의 자율성의 유무를 파시즘으로 본다는 것인지, 단시 독일과 이탈리아의 악마들에 의한 정권을 파시즘이라 부는 것인지. 비시를 왜 파시즘이라고 볼 수 없는지에 대한 설명 속에서 과연 파시즘이 무엇이라는 이야기는 없다. (미안하지만 나로서도 파시즘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파시즘이라는 게, 워낙 정의가 제각각이기도 하고.)

책의 말미에 이야기된 한국과 비시정부간의 차이에 대한 지적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물론 비시정권을 오늘날 한국의 시민사회가 인식하는 것처럼 나치독일의 괴뢰정권이었으며 이러한 과거를 프랑스가 철저하게 청산했다는 인식은 대단히 문제 있는 것이며 과거청산의 사례로서 프랑스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저자의 견해는 상당히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그러나 프랑스와 한국이 다르다면서 제시한 견해, 프랑스의 비시정권은 자발적인 대독협력정권이었고 일본의 지배가 "식민지 수탈과 한민족말살정책으로 일관했다"고 정의내리기엔 어려운 측면이 다분히 있다. 점령지-식민지의 '회색지대'는 비시 프랑스 뿐만 아니라 식민지 조선에도 성립 가능한 공간일지도 모른다.(아쉽게도 이부분과 관련한 윤해동의 책은 아직 읽지 못했다.)

1930년대 이후 유럽의 파시즘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움직여졌는지, 전후 과거청산의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 나는 아는바가 없다. 이 책은 그 점에서 하나의 문제의식을 던져주었을 뿐이다. 이 책의 미덕은 뭔가 더 보아야 겠다는 에너지를 넣어준 것에 있다. 기회가 되는 대로 더 많은 책을 읽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10월혁명사
이완종 지음 / 우물이있는집 / 2004년 10월
33,000원 → 29,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6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6월 17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05년 03월 15일에 저장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문화의 수수께끼 - 마빈 해리스 문화 인류학 3부작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에서는 마빈 해리스의 문화인류학 3부작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문화의 수수께끼>,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식인과 제왕>) 그중에서 가장 널리 읽힌 책이다. 가끔 논술용 도서로도 많이 추천된다.

이 책이 고등학생 논술도서로(그뿐만 아니라 청소년이나 대학신입생의 권장도서로도.) 자주 선정된 이유는 음식문화에 대한 저자의 관점 때문이다. 왜 인도에서 소고기를 먹지 않는지, 왜 아랍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지에 대하여 저자가 잘 논증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논술의 단골 소재였던 개고기 식문화와 곧바로 딸려 나오는 ‘문화의 상대성’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텍스트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개고기 식문화의 정당성도 아니고, 문화의 상대성이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금하는 이유를 밝히는 것이라면 더더욱 아니다. 저자의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현상적으로 보기에 비합리적인 비서구 문화의 행위양식들이 근저에는 대단히 정교한 합리성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더 나아가 근대적 합리성에 대한 강력한 옹호를 시도한다.

이런 점에서 해리스의 견해는 비서구지역을 계몽되어야 할 대상으로 본 기존의 서구 근대주의자들과 결을 달리한다. 그렇다고 해서 김지하나 함재봉마냥 비서구지역, 즉 동양이 서구 근대성을 뛰어넘는 대단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가 비서구 지역에서 발견한 것은 야만도 아니고, 탈근대적 정신도 아닌, 정교한 합리성이다. 인도에서 소고기를 먹지 않는 것도 아랍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도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정교한 장치로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책 후반에서는 서구문명을 공격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적 진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발생 배경과 사회적 역할을 면밀히 분석한다. 여기서 거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기독교의 이미지와 실제 예수와 그 직계제자들의 활동은 매우 달랐으며, 중세 후반의 마녀사냥의 광란은 균열하고 있던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서 기능하였다는 것을 밝힌다.

결국 마지막에서 그는 자신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마녀의 복귀, 즉 근대 합리성에 대한 반문화운동의 공격에 대한 것이다. 이를 ‘마녀의 복귀’라고 표현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런 반문화운동은 현실의 변혁을 은폐하는 기능을 한다. 삶의 고통과 번뇌를 참선이나 환각제를 통해 극복 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일상의 생존 자체가 어려운 하층노동자, 도시빈민 - 서발턴들에게 두드리고 노래하며 명상을 하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결국 해리스는 지독한 모더니스트며, 지독한 좌파라고 보여진다.(뭐 내가 일단 지독한 모더니스트니 이점에 대해선 그냥 동의할 뿐이다. ㅋ)

이는 서구문명에만 적용 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문명사회(?)에 편입된 한국에서도 문명의 오만과 편견, 주술적 맹신은 나름의 세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 : 지식인과 그 사상 1980 - 90년대 당대총서 13
윤건차 지음, 장화경 옮김 / 당대 / 2000년 10월
평점 :
절판


한국사회에서 80년대는 사상사적으로 반공의 족쇄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로운 학문연구가 가능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해방감은 80년대 초반의 네오맑스주의의 우회로를 거쳐 80년대 후반에 이르면 레닌주의와 주체사상으로 극단화된다. 어쩌면 이는 건강한 발전을 위해 필연적으로 겪어야 했던 홍역일지도 모른다. 90년대 한국은 동구 사회주의 붕괴의 충격을 받으면서 맑스주의의 거대한 균열과 치유할수 없는 타격을 입게된다. 그러나 이후 한국의 사상조류는 다양해졌다. 일단 긍정적이다.

사실 한국의 사상사는 외부의 시대흐름과는 대단히 동떨어져있었다. 70년대 서구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생겨나기 시작해 80년대 그 전성기를 맞게된다. 서구에서 80년대는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기존의 낙관적 근대인식(맑스주의로 대표되는)이 크게 흔들리는 시기였다.

오히려 한국은 70년대 조금씩 비판이론등 네오맑스주의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광주이후 사상의 흐름은 급진전되는데, 당시 많은 이들이 타이핑 된 T.B.D나 One Step를 몰래숨겨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러알사나 서구 사상에 대한 기본적인 학습과 이해가 결여된체 어떻게 그런 책들이 읽혔겠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읽었다고 한다. 그만큼 맑스-혹은 급진적 사상에 대한 열망과 관심이 대단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알튀세와 비판이론등 네오맑스주의를 수입하던 한국은 조금씩 종속이론을 들여오게 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실제로 들어온 것은 종속이론이 아니라 그것의 일본판임을 지적한다. (난 이러한 지적을 넘어서 저자가 한국의 사상사에서 일본이 미쳤던 영향에 대해서 서술해주는 것이 좋았다고 생각된다. 이는 제일한국인이라는 저자의 입장에서 볼때 대단히 유리한 연구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여하간... 종속이론은 사구체논쟁의 시작과 함께... 무진장 깨져버리구... 이후 한국의 변혁이론은... 원전! 원전! 원전! 이 되어버린다. 뭐 그 이후에는, 스탈린과 김일성만 남았다지...

한국에서 사회사상이 왜 이러한 우회로를 겪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보통 반공 일변도의 사회체제와 그 변화를 이야기 한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점들이 있다. 이를테면... 80년대 중반에 맑스원전이 본격적으로 읽히기 이전의 수입사상들은 모두 맑스를 비판적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사상들이다. 왜 이런 것들을 접한뒤에 그렇게 교조적으로 흘러갔는지... 그동안 읽었던건 모두 황이었단 말인지. 혹은 이전의 저작들을 읽었던게 아니라... 색인의 '마르크스'만 찾아서 발췌독을 했다는 건지.... 쩝. 여하간 저자가 이 부분에 대한 해명이 좀 더 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아무래도 외부에서 문헌들과 관련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씌여진 책인만큼 당대의 논쟁들에 대한 분위기 혹은 야사적 배경에 대해서 저자는 잘 알지 못하는 듯 싶다. 때문에 거론하는 사람들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고 때문에 어떤 국면에서 어떠한 이론을 전개했는가에 대한 설명이 결여되어 있다. 아쉬운 부분이지만, 아마 이런걸 속속들이 알고 있는 (한국)사람은 이런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아는 사람 욕하기는 참 어렵다. ㅋ

처음으로 80~90년대의 사상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그 어떤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을 것이다.(다소 횡설수설해보이는 전개도 다 이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책이 일본에서 먼저 나왔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우울하게 느껴진다. 한국의 학자들은 대체 뭘하고 있었단 말인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학을 위한 변론
리처드 에번스 지음, 이영석 옮김 / 소나무 / 1999년 2월
평점 :
절판


작년 여름에 출처가 불확실한(?) 돈을 받고 그 돈으로 몽창 역사학 관련 책들로 써버린 적이 있다. 덕분에 <치즈와 구더기>와 같은 명작들을 읽으며 그 해 가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들중에 아직도 읽겠다고 작심만 하고 다 읽기 못한 책들이 산적해 있는데. 에반스의 책이 그중 하나였다.(아직 <고양이 대학살>도 다 못보고 있단 말이지...)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제목이 잘 나타내주듯 일군의 포스트모던 역사학에 대한 저자의 반론이라고 할수 있다. 에반스는 엘튼과 에드워드 카로 대표되는 기존의 역사이론과 포스트모더니즘 양측을 공략하고 있지만 역자의 지적대로 그 무게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학부 1학년 때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마치 종교경전을 읽은 것처럼 하나의 답을 얻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그 뒤 젠킨스의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를 읽을 때는 머릿속이 어지러워 미칠 것 만 같았다.(이 두 책은 역사학 전공자라면 반드시 정돗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에반스의 책은... 지금은 더 혼란 스럽다.

재밌게도 이 세 사람은 모두 영국 사람이고 이 책들은 모두 영국 사학계를 배경으로 삼곡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첨엔 누가 누군지 모르는 인간들도, 계속 읽으니 아는 양반들도 나와서 해매는 게 좀 덜하니 좋긴 하다. 이젠 국내 저작도 좀 봐야 하는건데... 쩝.

여하간 이 두 책을 읽고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에반스의 책은 열독할 가치가 있다. 다만 위 두 책을 먼저 읽지 않았다면, 먼저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래도 누군가의 학설에 대한 비판의 논조가 강한 책일수록 상대측의 논지를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저자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공격은 신랄하고 통쾌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많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을 비판하는 기존 사학계의 논지가 자꾸 역사학에 대한 변명조로 흐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역사학의 해체를 외치는 것은 근대성이 가져다 주는 사회적 페혜에 대한 지적이라면, 이들의 반발은 역사학이라는 분과학문의 수호의 경향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이는 밥그릇싸움이 아닐까 하는 인상이 짙다. 그러고 보면 위 책에서 예를 든 대부분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대학에서 역사학 전공 교수가 아닌 것도 흥미롭다.(이해는 충분히 되는데, 역사학이 해체되면 이들은 뭐 먹고 살것인가! 뭐 나야 상관 없지만~)

포스트모더니즘, 그것도 포스트모던 역사학에 대한 체계적인 반론은 찾기 힘들다. 때문에 이 책이 더욱 그 값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사학전공자들은  의외로 역사이론에 대해서 무지한 감이 있다. 17세기 도자기제작 양식을 연구하는 것도 좋은데, 연구의 방법론과 스스로의 작업에 대한 철학적 고민은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