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을 위한 변론
리처드 에번스 지음, 이영석 옮김 / 소나무 / 1999년 2월
평점 :
절판


작년 여름에 출처가 불확실한(?) 돈을 받고 그 돈으로 몽창 역사학 관련 책들로 써버린 적이 있다. 덕분에 <치즈와 구더기>와 같은 명작들을 읽으며 그 해 가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들중에 아직도 읽겠다고 작심만 하고 다 읽기 못한 책들이 산적해 있는데. 에반스의 책이 그중 하나였다.(아직 <고양이 대학살>도 다 못보고 있단 말이지...)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제목이 잘 나타내주듯 일군의 포스트모던 역사학에 대한 저자의 반론이라고 할수 있다. 에반스는 엘튼과 에드워드 카로 대표되는 기존의 역사이론과 포스트모더니즘 양측을 공략하고 있지만 역자의 지적대로 그 무게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학부 1학년 때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마치 종교경전을 읽은 것처럼 하나의 답을 얻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그 뒤 젠킨스의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를 읽을 때는 머릿속이 어지러워 미칠 것 만 같았다.(이 두 책은 역사학 전공자라면 반드시 정돗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에반스의 책은... 지금은 더 혼란 스럽다.

재밌게도 이 세 사람은 모두 영국 사람이고 이 책들은 모두 영국 사학계를 배경으로 삼곡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첨엔 누가 누군지 모르는 인간들도, 계속 읽으니 아는 양반들도 나와서 해매는 게 좀 덜하니 좋긴 하다. 이젠 국내 저작도 좀 봐야 하는건데... 쩝.

여하간 이 두 책을 읽고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에반스의 책은 열독할 가치가 있다. 다만 위 두 책을 먼저 읽지 않았다면, 먼저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래도 누군가의 학설에 대한 비판의 논조가 강한 책일수록 상대측의 논지를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저자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공격은 신랄하고 통쾌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많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을 비판하는 기존 사학계의 논지가 자꾸 역사학에 대한 변명조로 흐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역사학의 해체를 외치는 것은 근대성이 가져다 주는 사회적 페혜에 대한 지적이라면, 이들의 반발은 역사학이라는 분과학문의 수호의 경향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이는 밥그릇싸움이 아닐까 하는 인상이 짙다. 그러고 보면 위 책에서 예를 든 대부분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대학에서 역사학 전공 교수가 아닌 것도 흥미롭다.(이해는 충분히 되는데, 역사학이 해체되면 이들은 뭐 먹고 살것인가! 뭐 나야 상관 없지만~)

포스트모더니즘, 그것도 포스트모던 역사학에 대한 체계적인 반론은 찾기 힘들다. 때문에 이 책이 더욱 그 값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사학전공자들은  의외로 역사이론에 대해서 무지한 감이 있다. 17세기 도자기제작 양식을 연구하는 것도 좋은데, 연구의 방법론과 스스로의 작업에 대한 철학적 고민은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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