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변호사 - 붉은 집 살인사건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 1
도진기 지음 / 들녘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참 시니컬한 책이다. 책 서두나 말미에 '작가의 말'이나, 이 분야의 권위있는 자나 지인들이 쓴 '추천평'은커녕 그 흔한 한 줄짜리 추천글 조차 찾아볼 수 없다. 시중에 갖은 미사여구로 치장하고 나온 책들 사이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몸으로 독자들의 냉혹한 평가를 오롯이 기다리고 있는 도진기의 『어둠의 변호사 - 붉은집 살인사건』은 어찌 보면 굉장히 무모해 보이면서도 또 한편으론 강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도진기. 낯선 이름이다. 설마 지은이 소개도 없을까? 다행히 있다. 현직 판사로 재직 중인 그는『선택』이란 단편 소설로 추리작가로 데뷔했다는 대여섯 줄 되는 짧은 글로 묘사되어 있다. 역시… 작가의 사진 따윈 애초에 기대도 안 했다.

 판사직을 내던지고 법의 테두리 안팎을 넘나들며 암약하는 변호사, 고진. 사람들은 그를 '어둠의 변호사'라 부른다. '변호사 사무실도 개업하지 않고, 법정에 출석하지 않으며 오로지 뒷길에서 법률의뢰를 받아 자문과 해결을 되풀이하며' 떠도는 그에게 의뢰가 쏟아진다. 그와 호흡을 같이하는 파트너, 이유현 경위. 경찰대를 졸업했으면서도 편안한 관리직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제 발로 강력계에 발을 디딘 열혈 경찰(강력계 팀장)이다. 여느 때처럼 고진은 도움을 요청하는 여인의 전화를 받고 그녀의 집을 방문한다. 서울 외곽, 한적한 언덕 위의 붉은 집. '서태황', '남성룡'이라는 문패가 나란히 걸린 그 집에는 1층에 '투 스타' 출신의 전역 장군 서태황의 가족이, 2층에는 은퇴한 인문학 교수 남성룡의 일가가 살고 있다. 우연찮게 오빠가 유언을 녹음하는 것을 들은 남광자는 유산상속권리에 대해 상담하기 위해 고진을 부른 것이다. 고진이 유산상속 문제에 염증을 느끼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려 하자 남광자는 간단히 세속적인 문제로 결부시킬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바로 불행한 가족사와 연관이 있었던 것이다. 서씨 일가와 남씨 일가의 기묘한 동거의 효시는 선대로 올라간다. 선대인 서판곤과 이분희의 비극적인 사건, 광인의 범죄와 그 핏줄들, 연이은 살인, 상속, 실족사……. 유산 상속이 아닌 광기와 살인 DNA가 대물림 되고 있는 것일까? 괴이한 가족사로 얽힌 두 집안은 삼대에 걸쳐 네 번의 살인이 일어난다. 그리고 분명 범인은 두 일가의 가족 일원 중에 있다! 하지만 대체 누가, 왜, 이런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르는 것일까? 탄탄한 법률 지식에 정교한 트릭을 갖추고 인간의 광기와 본성을 집중 조명한다.  

  저자는 정식으로 문학수업을 받은 적도 학창시절 그 흔한 백일장에 나가 상을 타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런 그의 펜에서 그려지는 소설의 배경이나 인물·심리 묘사는 마치 비디오 영상을 마주보는 것처럼 섬세하고 활동적이다. 독자가 소설 속 인물로 당당히 한 자리 꿰차고 들어앉아 등장인물들과 직접 대면하고 있는 것처럼 용의선 상에 오른 인물들의 급격한 표정변화가 눈에 선하고 심장 뛰는 소리까지 귓가에 맴돌 지경이다. 입체감이 느껴지는 플롯 구성과 비교적 평이하지만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트릭 역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때, 거미줄처럼 촘촘했던 사건의 개연성이 살짝 일그러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 아쉬웠다. 또, 다른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는 각각의 색채가 뚜렷했던 반면 정작 주인공인 '고진'과 '이유현'은 비교적 밋밋하게 그려져 의아했다. 시리즈물이기 때문에 독자들과 '고진-이유현 콤비'의 정식적인 소개는 아직인 것인가? 독자들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될 수 있는 개성 넘치는 인물로 거듭나길 바란다.   

  사건을 해결하고 한강을 마주하고 앉은 고진. 극악한 범죄자들을 향한 법의 절차와 잣대는 한없이 번거롭고 너그럽기만 하다. 이런 법률의 궤도에서 훌훌 벗어나 스스로를 '선과 악의 그림자'라 칭하는 고진의 호젓한 뒷모습에서 어느 대한민국 현직 판사의 고뇌와 한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어쩌면 고진이 '절대선絶對善'과 '절대악絶對惡'이 공존하지 않는 인물이기에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뉴스와 신문 같은 보도매체에서 흘러나오는 기사 내용 자체가 스릴러인 요즈음, 저자도 독자도 '어둠의 변호사' 그를 통해 잠시라도 막힌 숨통을 틔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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