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폴라드에서 랍비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의 성적 학대와 노동 착취로 얼룩진 어린 시절. 열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경험한 낙태(낙태된 아이 역시 그녀의 첫사랑 피터, 흑인의 아이였다.)와 방황. 사회로부터의 차별과 편견의 냉혹한 시선을 개의치 않는 자유로운 영혼.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흔들릴지언정 주저앉지는 않는 강인한 정신력. 인종차별이 만연한 시절 흑인과 두 번 결혼하여 열두 명의 흑인 아이를 낳은 백인 여자. 두 명의 남편을 모두 사별하고 홀로 열두 명의 자식들을 훌륭하게 길러낸 어머니. 이 모든 수식어는 바로 저자 '제임스 맥브라이드(James McBride)'의 어머니인 '루스 맥브라이드 조던(Ruth McBride Jordan)'을 향하고 있다. 이 책은 에세이지만 서사 형식을 띠고 있어 소설처럼 느껴진다. 이야기는 감추어진 어머니의 행적을 찾기 위한 여덟 번째 아들, 제임스의 노력으로 물꼬를 튼다. 어머니의 감추어진 행적은 인종의 차별이 만연한 시절 흑인을 사랑하게 되었고 결혼까지 결심하게 되면서 고향과 가족들에게서 자연적으로 멀어짐으로써 시작되었다. 당시 백인과 흑인의 결혼은 목숨을 걸어야할 만큼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미국 남부에서 자란 어머니 루스의 이야기와 뉴욕에서 자란 아들의 이야기를 한 챕터(Chapter)씩 번갈아가며 들려준다. 두 이야기는 별개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것처럼 보여도 이미 예정된 것처럼 결국은 씨실과 날실로 만나 서로를 채워주고 보다듬어 준다. 책의 서문에서 그가 '이 책은 내게 들려준 어머니의 살 그대로이고 그 삶의 갈피에 나의 삶 또한 두서없이 담겨 있다.'고 밝힌 것처럼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피부색에 따른 정체성의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왔지만 어른이 된 제임스는 그때까지도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다. 결국 그는 어린 시절부터 질문 자체가 금기시 되어 온 어머니의 물기 어린 기억의 심층부와 마주하는 것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했고 그것이 이 책을 쓴 목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들려주고 있는 사회적 차별과 냉대가 마냥 어둡거나 암울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저자의 위트있는 필력 덕분인 것 같다. 실제로 책을 읽다가 소리내어 웃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의 열두 명의 형제자매들 역시 피부색으로 어린 시절 정체성에 혼란을 겪긴 했지만 모두 자존감이 높고 특유의 유머러스함을 겸비하고 있다. 이 한 편의 에세이에는 어머니와 아들, 두 편의 성장소설과 흑인과 유대인, 두 개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에 그 어떤 편견이나 차별도 없이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많은 외국인들─특히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 어떤 나라에서 겪는 인종차별보다 깊은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 민족성 자체가 배타적이거나 인종적 사대주의를 타고나서 그리된 것이 아니다. '세계 유일의 단일 민족국가'라는 글귀가 국정교과서에서 사라진 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글귀는 사라졌지만 오랜 세월동안 자부심으로 꼭꼭 눌러 쓴 '세계 유일의 단일 민족국가'란 글자 자욱은 아직도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 또렷이 새겨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임스가 말하고자 하는 '차별'은 비단 인종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한 집단이 만들어 낸 평균이란 범주를 벗어나는 사람들은 늘 드러내놓거나 은연 중에 '차별'을 받는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평균이란 대체 무엇일까? 정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모호한 평균을 좇으며 그 범주를 벗어난 사람들을 무조건 배척한다면 모두가 획일화된 죽은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은, 그 다양성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발전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 책의 주인공 '루스 맥브라이드 조던(Ruth McBride Jordan)'이 우리에게 그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진리를 몸소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