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13 - 최후의 노력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3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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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무언가를 버릴 때가 있다. 그때만큼 우리에게 신중함이 요구되는 때는 없다. 버린다는 건 우리에게 있던 무언가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한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없어짐'은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삶이 된다. 이쯤되면 등골이 오싹하지 않은가? 따라서 우리는 무언가를 버릴 때 심사숙고해야 한다. 잘못 버리면 평생동안 후회할 일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는 기독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난 지금까지 그녀가 13권까지 탈고한 로마인이야기를 모두 읽었다. 그녀가 풀어놓은 그 기나긴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난 그녀가 기독교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일관된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로마 정신의 근원이 개방성을 바탕으로 한 다신교적 전통에 있다고 본다. 로마인에게 신은 인간을 도와주는 존재다. 따라서 로마인에게 신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게다가 로마인은 다른 민족이 믿는 신을 부정하지 않는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러한 문화적 개방성이 대제국 로마를 건설할 수 있었던 정신적 근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3세기 말에 이르러 콘스탄티누스가 단독황제가 되면서 로마의 다신교적 전통은 기독교로 대체되기에 이른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것이 로마다움이 퇴색하게 된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로마인이야기 12권과 13권을 읽어보면 그녀의 이러한 생각이 묻어나는 문장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물론 나는 그녀의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무려 800만이 넘는 우상이 존재한다는 일본열도 출신이 가질 수밖에 없는 시각적 한계일 가능성이 높지만 로마가 멸망하게 된 원인은 로마다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그녀의 통찰에는 경의를 표하고 싶다. 3세기의 혼란을 겪는 과정에서 로마는 서서히 로마다움을 잃어간다. 로마다움을 구성하고 있었던 요소들을 하나둘씩 버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치밀함은 없고 의욕만 앞섰던 세베루스황제가 로마시민권을 아무에게나 주는 가장 큰 사고를 친 이후 혼란을 수습하기에 급급했던 황제들은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너무나 중요한 것들을 버리기에 이른다. 로마의 인재풀이었던 원로원을 유명무실한 기관으로 만들고, 군대경력과 행정경력을 동시에 쌓을 수 없도록 만든다. 군사적 재능과 정치적 재능을 겸비한 인재의 배출을 원천봉쇄한 것이다. 황제들은 자신들이 버린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귀중한 것이 쓰레기 취급당하는 무단투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확립한 라인강과 도나우강을 경계로 한 방위선을 근간으로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설계했고 오현제에 의해 정착된 로마의 방위 시스템은 무려 300년 동안이나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방위선의 밖의 야만족들은 로마를 넘보지 못한다. 로마가 멸망한 원인은 야만족들이 더 강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자질이 떨어지는 후대 로마의 황제들이 300년의 세월을 통해 검증된 이 방위시스템을 아무 생각 없이 허물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무단투기가 야만족을 불러들인 셈이다.

로마인 이야기 13권 최후의 노력은 무단투기에 관한 이야기다.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이야기라 해도 좋다. 3세기의 혼란을 수습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도, 기독교를 공인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도 이 점에선 한결같이 어리석었다. 그들이 태어났던 시기가 워낙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과연 무엇이 로마다운 것인지 배우기 어려웠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선택이 로마의 멸망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것을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안된다.

로마는 로마다움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무단투기한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해 멸망했다. 이 교훈을 개인의 삶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나' 다움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겉은 번지르르한데 속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분명치 않은 연예인들의 스타일을 따라하는 것이 세련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이다. 그들을 톡톡튀는 개성의 소유자들이라고 추켜세우는 골빈 스포츠신문기자들의 말에 현혹되어 자신의 개성을 초라하게 여기기 쉬운 시대이기도 하다. 그런 시대 속에서 '나'다움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진정 우리 스스로를 위하는 길이 아닐까? 로마가 로마다울때 가장 강력했듯이 우리도 '우리'다울때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거창한 로마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런 개인적인 차원의 이야기를 하자니 좀 생뚱맞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역사적 교훈을 개인적 삶에 적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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