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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서스와 올리브나무 1 - 세계화는 덫인가, 기회인가?
토머스 프리드만 / 창해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언젠가 벤에플렉이 주연한 '체인징 레인스'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나도 모르는 누군가가 클릭 한 번으로 내 운명을 바꾸어 버릴 수도 있는 현대 정보화 사회를 매우 리얼하게 보여주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정보화 사회에 대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지만 정작 우리들 대다수는 이를 의식하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그러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읽고 나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세계화가 얼마나 진행되었으며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 지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좀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먼저 그 제목에 사용된 은유부터가 좀 어설프다. 렉서스는 세계화 시스템의 산물로 세계화의 주도 세력을 상징한다. 렉서스는 첨단기술을 자랑하는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가 생산하는 고급 세단이다. 하지만 강력한 관료집단에 의해 세계화의 발목을 잡힌 일본의 자동차가 세계화 주도 세력을 상징할 수 있을지는 좀 의문스럽다.
또 올리브나무는 세계화를 거부하는 세력을 상징하고 있는데 이 역시 유대인인 저자의 문화적 편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제목 자체는 산뜻한 느낌이지만 범세계적인 세계화 세력과 반세계화 세력을 은유하기엔 보편성이 떨어진다. 또한 전체 내용 곳곳에서 엿보이는 세계화=미국화라는 공식도 거부감을 주기에 딱 알맞다. 과연 미국의 체제가 그렇게 지나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우수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더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말해주지 않을까?
이런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저자가 보여주는 통찰력에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것은 물론 저자의 직업적 이점에 힘입은 바 크다. 그는 뉴욕타임즈 컬럼니스트라는 신분을 십분 활용하여 전세계 곳곳을 돌아 다니며 각국의 요인들을 만나 직접 인터뷰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가 누빈 세계화의 무대에는 이 책의 내용을 채우고도 남을 소재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그것들을 다 주워다 모으기만 했어도 웬만한 책 한 권쯤은 쉽게 쓸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세계화의 혜택을 입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국가적 시스템을 황금 구속복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나 정보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못하는 국가나 단체가 보이는 증상을 정보면역결핍증(MIDS)이라고 표현한 것은 정말 뛰어난 언어센스라는 생각이 든다. 또 국경을 넘나드는 전자투자가들이 현재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음을 갈파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 전자투자가 집단이 미국인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들어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의 음모론이 부당한 것임을 지적하는 부분도 설득력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맥도날드 햄버거가 진출해 있는 국가들 사이에서는 전쟁이 없었다는 이른바 골든 아치 이론이라는 근거가 희박한 학설을 내놓기도 한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는 뚝배기보다는 장맛으로 승부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논리성면에서는 어설픈 맛이 없지 않지만 내용면에서는 세계화에 대해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 뒷표지에 씌여 있는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의 서평처럼 세계화에 대해 이렇게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도 드물다. 혹시 미국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 번쯤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금의 험악한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세계화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