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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 - 5천 년 중국 역사 최고의 인재 활용 경전 ㅣ 중국인의 지혜 시리즈 2
렁청진 엮음, 김태성 옮김 / 더난출판사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중국인들에게는 다른 민족들이 가지지 못한 독특한 유산이 있다. 바로 수 천개에 이르는 고사들이다. 그들은 조상들의 경험을 고사라는 이야기 형태로 남겨서 자손들에게 전수했다. 중국인들의 머리 속에는 이 수천 개의 이야기들이 저장되어 있다. 중국인들은 삶 속에서 이 이야기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으며 사는 것 같다. 난 최근에 중국의 매끄러운 권력 이양을 보면서 매우 놀란 바 있다. 등소평에서 장쩌민으로, 장쩌민에서 후진따오로..... 그들의 권력이양은 놀랍도록 조용하면서도 원활하게 짧지 않은 시간을 거쳐서 이루어진다. 부작용도 거의 없어 보인다. 이러한 안정된 권력 이양도 역시 중국인들만이 가진 그 수천개에 달하는 이야기들 때문이 아닐까?
렁청진의 변경은 작가의 창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수천개의 고사 중에서 인재 변별에 관련된 것들만 따로 모아서 편집해 놓은 것에 다름 아니다. 수천 년에 걸친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담당했던 인재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정서나 사상면에서의 일체성이 그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거의 유사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것은 물론 공맹사상과 노장사상, 법가 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공산주의가 지배했던 냉전시대에도 이러한 그들의 문화적 사상적 일체성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들이 21세기의 중국을 이끌 지도자로 후진따오를 선택했다는 사실에서 확연하게 증명된다.
변경에 나오는 인재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다른 민족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중국인들만의 독특한 인재 선별 기준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중용의 미덕이다. 그것은 긴 역사를 통한 시행착오의 과정 끝에 중국인들이 찾아낸 나름대로의 인재 변별 기준이다. 공자와 맹자가 지지하는 요순시대의 인(仁)을 통한 통치는 도덕적으로는 훌륭하지만 많은 변방 민족들과 대치해야 했던 중국인들에게는 나라의 모든 역량을 짜임새 있게 조직화할 수 있는 방책은 아니었다. 반면에 나라의 기강 확립과 부국강병을 우선으로 생각했던 법가의 사상은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 진을 세우는 데 크게 기여하지만 진의 짧은 운명이 말해 주듯 엄정한 법 집행만으로는 안정된 통일 국가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중국인들은 이 두 사상의 중간 어느 지점에 그들이 찾던 정답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것을 그들은 '중용'이라고 표현한 듯 하다.
중국인들이 추구하던 중용의 미덕이 가장 잘 구현됐던 시기가 바로 당태종 이세민이 통치하던 때가 아닌가 한다. 이른바 '정관의 치'라고 일컬어졌던 그의 치세는 인재 등용에 있어 중용의 미덕이 가장 잘 지켜졌던 것에 연유한다. 변경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인재들이 대부분 그의 밑에서 재상을 지냈던 인물들이라는 사실은 변경 전체를 관통하는 인재 변별의 기준으로서 중용의 미덕이 가장 포괄적이고도 중요하게 적용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변경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중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들이 이 글을 보면 어설픈 분석이라고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변경을 제대로 읽었다면 그 수많은 이야기들이 놀랍도록 하나의 생명체처럼 유기적인 구성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변경에 나와있는 이야기들은 매우 재미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이 하나하나씩 펼쳐지는 과정에서 서로 연결되고 반응하여 생겨나는 전체적인 흐름을 발견하는 또하나의 재미가 있다. 이 재미를 놓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