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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평점 :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알고도 읽고 싶지 않았다. 제목만 보고는 세월호를 이용해 돈벌이나 하려는 속셈 정도로 여기고
무시했다.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잊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들과 이를 보도하는 자극적인 뉴스들로 인해 더 이상 세월호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알라딘 신간평가단에서 이 책이 리뷰도서로 선정되었고, 집에
도착한 책을 받아보고서야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의 육성 기록을 담았다. ‘우리 아들은 이런 아이였어요, 우리 딸이랑은
사이가 어땠어요’ 하는 엄마 아빠들의 이야기. 그런데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로 그 예쁜 아이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려야 했고, 그런데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유가족들은 오히려 벼랑 끝으로 몰렸고, 그렇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잊어가고 있는 이야기. 그래서 더 미안하고 미안했다.
나의 섣부른 오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었나, 잘못된 무관심이 얼마나 잔인한 것이었나, 나와 같은 이들의 오해와 무관심이 유가족의 가슴에 두 번 상처를 입혔다는 것을 깨닫고 내내 후회하고 반성했다.
P.211
부모로서, 신앙인으로서, 시민으로서
끝도 보이지 않는 고통과 혼란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철이 지났다며 부랴부랴
짐을 싸는 이들이 보여준 애도의 깊이가, 잊지 않겠다던 약속의 호흡이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나 돌아보게
된다.
P.342
피할 수 있고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인데 미안해하는 책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허락도
구하지 않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언론과,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가족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정보경찰은 있었으나, 아무도 상황에 대한 신중하고 신속한 정보를 가족들에게 전하지 않았다. 침몰의
원인을 되짚기 위한 항적도도 완성되지 않았고, 교묘하게도 침몰 시점에 즈음해 멎은 각종 기록장치들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이제 밝혀야 할 진실도 물어야 할 책임도 더는 없는 듯 세상이 굴러간다. 그러나 4월 16일은
떠나온 과거가 아니다. 시간은 흘러가다가도 다시 그날로 붙들려간다.
아직도 그날 아침이 또렷이 기억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 준비를
하며 뉴스를 틀어 놓았는데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속보가 나왔다. 출근해서는 걱정되는 마음에 시시각각
핸드폰으로 뉴스를 확인하다가 ‘전원 구조’라는 소식을 접한 뒤 안도의 숨을 내쉬고 다시 업무를
보는데, 이럴 수가, ‘전원 구조’가
오보였다니.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 수와 실종자 수는 점점 늘어났다.
그때의 충격과 슬픔이란. 문득,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내가 막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내가 살고 있는 포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구에서 지하철 화재 참사가 일어났을 때가 떠올랐다. 어떤 이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떠올렸다. 수많은 생명을 잃고 나서 10년, 20년이 더 지났지만 우리는 그때로부터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P.206 / 2학년 4반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종대 씨 이야기
지금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라는 게, 사실은 부처를 저기서 빼다가 여기에
갖다붙이는 수준이잖아요. 그게 어디 모양새만 바꾼 거지, 씨스템을
고쳤다고 할 수 있나요? 그럼 이런 참사가 생겨나도 결과는 똑같을 거예요. 공청회도 열어서 뭐가 문제였는지 이야기도 좀 들어보고, 이원화돼
있는 것이 문제라면 일원화하고, 교육·훈련이 필요하다면 정부가 나서서 좀 도와주고, 뭔가 종합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잖아요. 근데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아요. 5월 19일에 대통령 대국민담화에서 해경 해체라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때, 제가 CBS랑 인터뷰하면서 문패 바꿔달기로
끝나는 거 아니냐고 한 적이 있었거든요. 지금도 생각이 똑같습니다. 근원적인
문제 해결이 안 된 건, 진상규명이 허술했기 때문이에요.
P.273-276 / 2학년 9반 임세희
학생의 아버지 임종호 씨 이야기
내가 서해 페리호 사고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에요. 그런데 21년 후 세월호 사건을 또 겪은 거지, 내가. 그 얘기를 하는 건 지금이나 그때나 바뀐 게 없어서야. 아무 것도. (중략) 21년이 지났는데 사람 구조하는 면에서 바뀐 게 전혀 없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그때 만일 특별법이 제정됐더라면 세월호 참사가 났을까. 지금 와서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때는 특별법 요구는 안 했잖아요. 2003년 대구지하철 사고의 유가족들이 와서 그랬다고 하던데 ‘우리가 특별법을
못 만들어서 이런 사고가 난 것 같다고, 죄송하다’라고요. (중략) 누구는 진실을 밝히는 게 뭐 중요하냐. 앞으로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지라고 하는데. 썩은 데가
있으면 그곳을 파내고 새 살이 돋아나게 해야 하는데 그냥 두고 새 살이 돋길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돼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못하고 의문만 남기는 법이라면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가 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어요. 그때 가서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냐고. 안전에 대해서도 자기들 일이라고 생각을 못하는 거야. 내 자식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 못해. 간담회 가면, 내가 우리
자식 물에 빠져 죽지 않게 하려고 수영 가르쳤다고 그런 얘길 해요. 한데 그게 개인이 노력해서 수영
잘해서 될 게 아니잖아. 왜 법이 만들어져 하는지 말하는 거지.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자식 일이라고 생각 안 해요. 소를 잃어본 사람이 외양간을 고치지, 소가 멀쩡하게 있는 사람은 모르더라고.
P.310 / 2학년 10반 김다영
학생의 아버지 김현동 씨 이야기
돌이켜보면 내 삶은 우리 현대사의 급류에 휩쓸려왔고, 그 끝에서 참사의
당사자가 되어 이렇게 길거리에 앉아 있어요. 87년 6월항쟁부터
거의 30년이 지났는데도 세상은 그때하고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요. 어떻게
이렇게 변한 게 없을 수 있을까 싶어요. 오히려 더 나빠진 거 같아요.
사회의 모순은 더 고착되고 견고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허울만 좋은 민주주의에 국민들이
완전히 속았어요. 참담하죠. 내 딸을 잃고 나서야 그런 생각이
간절해졌어요. 우리가 꼭 진실을 밝힐 거예요. 이 문제를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30년 후에 나 같은 사람이 또 가족을 잃고 이 자리에 앉아 있지 않겠어요?
세월호 유족들이 참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애쓰는 이유. ‘처음엔
내 자식 일이라서 돌아다녔지만 이제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려서 포기가 안 된다’는, ‘억울하게
떠나보낸 아들에 대한 의리이자 스스로 하는 치유이며, 너무 많은 진실을 알아버린 한 인간의 저항’이라는, 책 속의 문장이 가슴을 때렸다. 아까운 생명을 잃어야 했던 수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났음에도 우리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데에는, 모든 것을 제대로 일하지 않는 정부의 탓으로
돌리고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쉽게 잊어버리는 국민들의 무관심이 더 큰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231 / 2학년 2반 길채원
학생의 어머니 허영무 씨 이야기
그래도 이 일을 겪고 나서 남의 일을 돌아보게 된 것 같아요. 밀양이든
쌍용자동차든 사회문제가 됐던 것들. 나는 그들의 외침에 하나도 관심 없었는데… 지금은 내가 사건의 한가운데 있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남들도 똑같이
그렇겠구나 싶어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데 변한 게 별로 없고.
P.329 / 2학년 8반 김제훈
학생의 어머니 이지연 씨 이야기
제가 한창 슬픔에 젖어 있던 무렵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딸과 아들을 잃은 부모를 만났어요. 그분이 고맙게도 위로를 해주시고 가시더라구요. ‘아, 그 당시에 나는 뭐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는 남의 얘기였고 나와 먼 얘기였는데 이렇게 내가 위로를 받는구나… 다른 사람의 아픔을 껴안는다는 거 그전에는 전혀 생각 못했어요.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모른 체하고 살았던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도 잘못한 게 있어요. 밀양 송전탑, 강정마을 주민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 휴, 그 사람들이 부르짖을 때 저희는
뭐 하고 있었나요? 전혀 생각을 안 했어, 그런 거에 대해서. 나만 보람있게 잘살면 된다는 그런 거였지. 다른 사람의 고충이나
힘든 것들을 우리가 보려고 하지 않았던 거예요. 의를 망각하고 있었던 거야. 그랬기 때문에 이런 이들이 여기서 터지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정치에 무관심한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플라톤)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 (윈스턴 처칠)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썩은 정치에 구역질 난다고
눈 감고 귀 막은 채 외면하며 살아가다 보니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 우리가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했던
대가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였고,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였고, 세월호
사고였다. 국민의 필요를 관철시키려면 국민이 나서야 했다.
P.184 / 2학년 1반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 문종택 씨 이야기
어떻게 보면 일반 시민들이 이런 데서 서명작업을 하고 저희 유가족들에게 서명해달라고, 함께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맞는 겁니다. 저희는 이미 죽은 자식들
돌아오지 못합니다. 산 자식들이 있는 일반 시민들이 ‘이런 사고 다시는
안 나게 해달라’고 서명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주변의 지인들에게 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더니 돌아오는 대부분의 대답은 ‘눈물 날
것 같아서 못 읽겠어’ 혹은 ‘세월호가 너무 정치적인 이슈가 되어 버려서, 이제 좀 피곤해’였다. 내가 그러했듯 그들도 비슷한 오해와
비슷한 무관심으로 세월호를 잊어가고 있었다. 개인 SNS 계정에
『금요일엔 돌아오렴』 표지 사진과 함께 짤막한 글을 올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사소하지만 영향력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벌써 일 년. 엉엉 울 것 같아서 못 읽겠다는
사람도, 세월호 얘기는 이제 그만 듣고 싶다는 사람도, 모두
다 읽어봤으면, 읽고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가 같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내가
바로 그러하듯이.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