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쇄 살인범 X파일 - 살인범과 사형수, 그 불편한 진실
양원보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결혼하기 전 서울에서 여동생과 자취하고 있을 때, 나는 한시도 마음 편히 동생의 귀가를 기다려본 적이 없었다. 동생이 일을 마치고 집에 올 시간이 되면 버스를 내려서 집까지 잘 오고 있는지, 뒤에 따라오는 사람은 없는지, 어찌나 걱정을 했는지 동생이 귀찮아할 정도였다. 때마침 서울 강남 그것도 그 분주한 강남역 한복판에서도 장기 인신매매가 있었다는 소문을 들은 터라, 내가 사는 곳이 안전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게나 걱정을 했었다. 여자들이 살기 어려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범죄 피해자의 대부분은 여성으로 시작해 어린이, 노약자들이 줄을 이었고, 내가 주목했던 것은 희생자라는 이름 아래 제일 앞에는 언제나 여성들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2012년 사형존폐론에 관한 한 여론조사에서 69.6%가 사형제도 존속을 찬성한다는 결과가 있었다. 그렇다면 책의 비율은 어떠할까?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입장의 서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 과반수가 찬성하는 사형 존치 입장의 책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한시적으로 사형제를 찬성하는 비율이 조금 더 늘어났다고 하더라도, 과반수가 넘는 지지를 받는 입장인데 대놓고 주장하는 이의 입장을 듣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던 와중에 이 책처럼 사형제도의 찬성 입장을 지극히 직설적으로 풀어낸 책은 처음이었다. '살인범과 사형수, 그 불편한 진실'이란 부제를 달고, "이제는 사형을 집행할 때다"라는 강력한 프롤로그로 책의 시작을 알린다. 이 때문에 책을 출간해 줄 출판사 찾기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구나. 출판사에서 이 소재를 꺼려했기 때문이었구나를 아는 순간이다. 책 내용은 당대 주요 사건들을 모은 터라 예전에 읽었던 경찰 기자가 썼던 [과학수사로 보는 범죄의 흔적]에서 나왔던 사건 파일과 비슷하지만, 주요 형사사건 중에서도 사형 판결에 관한 사건들을 나열했다. 그리고 연쇄살인범만의 행각과 처벌, 그들이 받은 판결에 초점을 맞췄다. 사형수가 된 연쇄살인범들, 그리고 무기징역 또는 그 이하의 형량을 받은, 사형 판결을 받았어야 하는 연쇄살인범들까지.

 

 

 

 

 

 

책날개에 적인 작가의 말이 가장 인상적이다. "옛날부터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해선 안 된다'라는 말보다 '죄는 죄가 없고 사람이 문제'라는 말에 더 끌렸다. 사형을 반대해야 그럴싸한 지성인처럼 보이는 줄 아는 사람들을 불편해했다." 라는 돌직구. "이 책은 분노와 증오를 위한 기록이다. 관용과 화해 같은 건 없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궤변임을 보여줄 것이다."(p. 27)까지. 직선으로 날라와 시원하게 꽂힌다. 백지연의 TV 시사 [끝장토론]에서도 사형제도에 관한 방송분만큼은 챙겨봤었을 정도로 이 이분법은 토론하기에 흥미로운 소재임이 틀림없다.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사형집행이 없는 잠정 사형 폐지 국가이지만, 중간에 사형제가 부활될 뻔한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2010년 초 조두순-강호순 사건 등 잇단 강력 사건이 계속되자 분위기가 급속히 형 집행 재개로 기울었다. 아동 성폭행범-연쇄 살인범을 엄벌하라는 국민 여론이 고조되자 법무부는 일부 사형수에 대한 형 집행을 대통령에서 건의했다. 하지만 유렵연합이 "사형을 집행하면 협상은 없던 걸로 하겠다"고 협박해 오면서 막판에 무산됐다. p.285)


계속해서 밑줄 문장을 적어보자면,

(더 안타까운 건 정부의 법 집행이 작동을 멈추자 재판부의 법봉마저 솜방망이가 돼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사람을 1명 죽여도, 아니 안 죽여도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형을 남발하던 사법부가 이제는 사람을 1명 죽여도, 아니 3명을 죽여도 반성하거나 동종 전과가 없다면 무기수로 감형해 주고 있다. 살인마들에게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그러지 말라는데, 그렇게 못하겠다는데 판사들이 한없이 아량을 베풀고 있다. p.25)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성폭행을 저지른 형량보다 낮은 형량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p.25)

(이쯤 되면 사형의 의미에 대한 시각 교정이 필요하다. 사형은 나와 당신, 우리가 맺은 약속이다. 나나 당신 둘 중 한 사람이 어느 미치광이에 의해 살해되면 살아남은 쪽이 그자를 응징해 억울함을 풀어 주겠다는 것이다. p.26)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만큼의 죄를 지어야 사형을 당하게 되는지 알지도 못한채 무조건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부르짖죠. p.258)

(사형을 받아야 할 극형범들이 무기징역을 받고 있다. 범죄피해자의 가족들은 관대한 법원의 판결에 분을 참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복수하겠다는 차원을 넘어 흉악 범죄는 단죄된다는 선례를 남겨야 다른 사건의 유족들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 p.69)


(사형수를 먹고 재우는 데 나라돈을 쓰는 건 언제나 뜨거운 논쟁거리다. 더 황당한 건 그러 사형수 대부분이 무위도식하고 지낸다는 사실이다. 사형수에게 나랏돈 쓰는 게 문제인 건 돈이 아까워서이기도 하지만 그 매커니즘이 너무 몰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살인 피해자 유족들에게서 돈을 거둬 살인 가해자를 먹여 살리는 꼴이다. 엄연히 법으로 정한 사형 집행도 회피하는 국가가 가족을 죽인 살인자를 먹여 살린다고 세금까지 걷어 가는 건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다. 270) 

 

 

 

 

 

 

 

 

 

또한 생각할 거리도 주는데, 술에 의한 심신미약, 전과 없는 초범, 깊은 반성, 불우한 가정환경 작량감경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술이나 마약에 의한 심신미약을 더 강력히 처벌하는 나라도 있는 반면,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감경사유이다. 2013년 6월 시행된 성폭력 특례법 개정으로 성폭력만큼은 '음주 또는 약물에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성범죄를 한 경우 형법상 감경 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라는 조항을 신설하긴 했지만 영 퍼뜩치 않다.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라는 작량 감경 사유이기에 이제껏 솜방망아질 해왔던 판결이 이에 따를지, 이 조항 이외에 다른 죄목에까지 더 확대 적용될 수 있을지 영 미덥찮기만 하다. 음주에 따른 심신 미약은 감경 사유가 아닌 엄연한 가중사유이다!   


아래는 번외로 적어놓고 싶었던 부분이다. 우리나라에는 생활고를 비난하여 자식과 동반자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에 관한 저자의 시각을 옮겨놓는다.  
('동반 자살'이라는 표현의 옳지 않음이다. 언론에선 부모와 자식이 같이 죽는 걸 두고 습관적으로 동반 자살이라고 부르는데, 원치 않게 세상과 작별해야 하는 자식들 입장에선 기가 찰 일이다. 그들은 죽음을 선택한 적이 없다. 그들 입장에선 어디까지나 살해를 '당한' 것이다. 단지 살인자가 부모였을 뿐이다. (...) 아무리 부모가 죽인다 한들 죽음을 선뜻 받아들이는 자식은 없다. "고아로 자라면 불행할 것"이라는 것도 부모들의 착각일 뿐이다. 범죄학에서는 이를 '이타적 비속살해'라고 부르는데, 서구보다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에서 훨씬 발생빈도가 높다고 한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와 달리 가족주의가 강하고 부모가 자녀를 별개의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자기 부속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p.92)  

송혜교 주연의 영화 [오늘], 전도연 주연의 [밀양]이 생각나는 대목도 있었다. 사형수의 거의 대부분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감옥에 온 뒤로 대부분 종교에 귀의했다. 다른 수형수도 아닌 오직 사형수만이 귀의하는 확률이 높고 교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감형을 바란 목적 있는 시작이 아닌가? '속죄하면 모두 용서받는다'는 종교인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그들이 하는 속죄의 대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속죄는 그대들의 신이 아닌 피해자를 위해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용서는 피해자, 피해자의 가족에게만 받아야 하는 것이다. 평생 용서받지 못한다 해도.   



 
2008년 헌법재판소에 사형은 위헌이라며 위헌소송을 낸 사람이 사형수라는 사실을 아는가? 2007년 4명의 젊은이들을 바다로 집어넣고 1심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오종근은 자기에게도 인권이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냈다. 그 결과 2010년 2월 25일, 5:4로 사형은 여지없이 합헌이었다(2010.2.25 2008헌가23). 1996년 7대 2로 합헌 결정이 내려진 지 13년 만에 다시 합헌 결정이 났지만, 이를 제청한 이가 다른 이도 아닌 사형수라는 사실은 찝찝하게 남아있다.   



사형제도 존치를 찬성하면 무자비하고 감정적인 사람이고, 반대하면 인권을 생각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저 '죄는 죄가 없고 사람이 문제'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했을 뿐이다. 그리고 살인마라는 존재 자체부터 시작해 인간에 본질에 대해 의문을 가진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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