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처방해드립니다
카를로 프라베티 지음, 김민숙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노부인이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더니 창백한 남자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침에 열 쪽, 정오에 또 열 쪽, 그리고 자기 전에 스무 쪽 읽으세요."
 
 
 
위는 서점 약국이라는 정신병원 도서관에서 약사가 환자에게 내린 처방전이다. 
한밤중에 집을 털기 위해 담장을 넘은 도둑 루크레시오는 잠들지 않은 한 아이와 마주치게 된다. 그 아이는 도둑에게 머리를 밀고 자기 아빠 행세를 해준다면 넘어가겠다고 말한다. 어쩔 수 없이 루크레시오는 머리를 밀고, 아이와 아주 특별한 도서관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곳에는 자신을 책 속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거나 자기가 작품 자체라고 생각하는 정신이 이상한 몽상가들이 모여있는 정신병원 도서관이다. '용감한 제단사'는 자기가 책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책 내용에 걸맞은 모습으로 옷을 입혀주고(제본을 해 주고), 실버 선장은 진짜 다리 위 나무 의족을 차고 있다. 서점 약국에서는 책을 마치 약처럼 처방한다.

 
 
"책을 읽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곳 환자들과 똑같이 행동해요. 특정 등장인물과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들의 모험을 재현하지요. 이게 당신이 말한 대로 잠시나마 우리의 일상에서 스스로를 멀어지게 하는 거죠. 하지만 만약 그 책이 좋은 책이라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생각하게 만들고, 새로운 질문을 하게 만든다면, 나중에 우리가 현실세계로 돌아왔을 때 우리를 좀더 강하고 지혜롭게 만들어줄 거예요." (p.56)
 

 

 표지만 보고 바로 선택한 이 책『책을 처방해드립니다』은 흡사 애니메이션 영화 [유령 신부]처럼 발랄함이 살아있는 책이었다. 한 시간만에 다 읽어버린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책의 원제는 '칼비나CALVINA'로, 책 표지의 작은 여자(남자?) 주인공의 이름을 딴 것이다. 다 읽고 보니 이 책이 스페인 아동·청소년 문학에서 가장 중요하고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엘 바르코 데 바포르 상'(상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테지만, 엄청 대단하다고 알려진) 대상 수상작이란다. 내가 청소년 문학책에 빠져드는 수준이라는 건가? 그러다 [어린 왕자]는 전 연령대에게 사랑받는 책인데 하며 혼자 정당화했다. 정신병원에서 실제로 이 책에 나오는 방법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책은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정말 돈키호테가 책 때문에 미쳤을 거라고 생각해요? 야비하고 잔인한 세상에서는 한시라도 더 살 수 없어서 미쳐버린 게 아닐까요? 전 그나마 돈키호테가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비참하게 늙지는 않았다고 보는데요.. 정의가 없는 세상을 체념한 채 사는 사람과 이를 바꾸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 중 누가 더 미친 걸까요? 그게 비록 풍차를 상대로 싸우는 것일지라도 말이에요." (p.56)
 
 
 
 책에 너무 빠져들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말을 가끔 듣을 때가 있는데, 현실과 살짝 거리를 두어도, 이성이라는 정신줄을 놓아도 좋다고 말하는 이 책. 역자의 마지막 말이 용기를 준다.
 
 
 
 
상상하는 것에 주저하지 말고, 미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대를 위한 처방전이 존재하나니!
 
 
 
오늘 나에게 아침『원더보이』삼십 쪽, 점심 『법은 왜 부조리한가』이십 쪽, 저녁『원더보이』오십 쪽을 처방해본다.
당신은 어떤 책을 처방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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