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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주톈신 지음, 전남윤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9월
평점 :
나를 나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 자신을 자신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기반은 무엇인가? 주톈신은 단편 소설집 <고도>를 통해 이 해답으로 ‘기억’을 제시하고 있다. 이 모든 것, 어쩌면 지금 살아가고 있는 나보다도 더 중요한 것, 바로 이 기억에 대한 성찰은 <고도>의 가장 중요한 테마이다. 이 작품집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들은 제 각각의 서사와 문제의식을 통해 이 주제를 반영하고 있다. 주톈신의 성찰은 단순히 기억을 가다듬거나 기억 속으로 회귀해 머무르는 것에서 넘어서서, 기억의 맥락을 되짚어 보고 놓친 것을 찾아내며 정체성을 탐구하게 되는 긴 여정으로 이어진다.
먼저 <베니스의 죽음>을 살펴보자. 이 작품은 작품 속 화자인 ‘작가’가 베니스를 답파한 기억에서부터 진술을 시작한다. 베이후이(북회)선 철도가 지나는 어느 작은 역에서 생활해 본 기억 등으로 사소한 자신의 삶을 소개하는 내용을 거쳐, ‘작가’ 자신이 글을 쓰는 장소에 따라 글의 내용이 달라진다고 고백하며, 이 이유로 글을 쓰기 위한 최상의 환경을 갖춘 카페를 찾으러 다니는 모습이 그려진다. ‘작가’가 마지막으로 정착하게 되는 카페는 어느 백화점 3층 코너에 있는, 이 소설 제목의 일부이기도 한, <베니스>라는 카페이다. 소설의 내용은 이처럼 실제 장소인 베니스에 관한 작가 자신의 짧은 회고, 자신은 어떤 방식으로 소설을 써나 가는지, 심지어 소설의 전개에 맞춰 구상했던 내용을 써 내려가는 장면을 소설 안에서 중계해 주기도 한다. 소설의 말미에서, 죽음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까닭이 드러난다. 바로 카페 베니스가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완전히 바뀐 메뉴, 주인, 직원들은 ‘작가’에게 낯선 기분을 느끼게 하고, ‘작가’는 이 공간의 변화를 이전의 기억 속 공간의 죽음과 동일한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이 죽음에 맞닿아 드러나는 행위는 ‘작가’가 쓰던 단편소설 속 주인공을 베니스에서 자살 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세계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어린 시절 친구들이 오래 전에 나와 소식이 끊긴 것은, 죽음이라는 낯선 길에 접어든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라는 대목은 위의 개념을 더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인식론 적인 사고에서 판단할 때 기억에서 잊혀지고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끊어진 관계는 죽음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고 이는 곧 작품 전체의 주제과도 맞닿는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상실된 과거, 영영 돌아올 길 없는 그것들의 죽음을 그리워하며 애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주톈신 소설의 주요 주제 ‘기억의 성찰’이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작품은 다음 단편 <헝가리의 물>이다. ‘나’는 자신의 옷에 시트로넬라유 향이 베어 있던 것을 계기로, 안면이 없던 A와 냄새에 얽힌 기억에 관해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버튼을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처럼, 온갖 냄새들은 머리 속의 기억을 실어 나르고, ‘나’와 A는 기억들을 되살리는 일에 중독되어 냄새를 찾아 다닌다. 이들은 기억 속의 향과 향으로 기억해내고 싶은 사람 같은 시시콜콜한 얘기에서부터, 역시 시트로넬라유의 냄새를 통해 그들 앞으로 불러와진 외숙모의 죽음을 계기로 죽음에 관한 깊은 고민 속으로 빠지기도 한다.
작품 내내 기억을 찾는 일과 씨름하다 보니, 기억을 잃는 것에 대한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 역시 나타난다. 그들에게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숨겨져 있거나 잠들어 있거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그 무언가가, 어느 날 꿀벌처럼 윙윙거리며 날아가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게 되면, 그땐 정말로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소설은 ‘나’와 A가 각각의 방법으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매개를 찾는 광고를 내고 그것을 기다리는 것으로 끝난다. 동시에 그들은 서로를 만나 나눈 향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소중하게 간직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토록 냄새를, 기억을 찾아서 헤매는 까닭은 무엇일까? "시대의 물결이 밀려오기 전에는 확고부동한 사물이란 예외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단지 일상의 모든 것이 뭔가 잘못되었다, 공포스러울 정도로 잘못되었다 라고만 느낄 뿐이다. ……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한 가닥 진실한, 가장 근본적인 것을 부여잡기 위해서는 아주 오래된 기억에 도움을 구하지 않을 수 없다.(장아이링)"-처럼, <헝가리의 물>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자신들의 존재를 잃지 않기 위해 기억이라는 실체 아닌 실체를 찾는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고도> 속 중편 <고도>는 20년 전의 고도와 지금 현재의 타이베이가 ‘너’의 기억 속에서 단단한 직조물처럼 얽혀 있다. ‘나’는 현상의 이면을 해부하여 알고 있는 것처럼 어디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놓치지 않게 붙들고 20년 전 고도의 모습을 훤히 보고 있다.
소설은 ‘그때’로 시작하는 하늘, 땀과 눈물, 사람들, 나무, 카페, 여름 밤, 배경음악 등을 구체적으로 소환하여 기억의 포문을 열고 있다. 기억하고자 하는 ‘그때’가 언제의 어느 때라는 정보를 자신의 개인적인 추억과, 당시 유행했던 대중매체- 영화, 음악, 드라마 등-를 함께 섞어내어 드러내고 있다. ‘너’가 돌아가고 싶은 이 시간은 또한 그때 그 고도의 공간에 변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장소 속의 풍경이기도 하다. 성, 칭수이 거리, 훙러우, 미야노시타역, 위안산, 칭광시장 등 타이완의 실제 지명이 소설 속으로 밀려들어와 보는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의 구체성을 더하게 한다. 마치 지도를 펼쳐 놓고 ‘너’가 제시한 그 추억의 공간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은 ‘너’가 사랑했던 A의 존재이다. A는 ‘너’의 그 모든 감정으로 매일 매일이 뒤흔들리던 아름다운 시절을 늘 함께했던 사람이다. 처음 제시되는 것은 A의 외양에 대한 서술(‘1미터 70센티의 키에, 수영 선수의 평평한 어깨와 긴 팔다리를 가졌고(…)’)이지만, 결국 후반부에 이르러 제시되는 A의 모습은 ‘너’가 은밀하게 간직해 온 개인적인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그녀는 산센 도로의 중양목을 닮았고, 사카모토 큐의 은은한 휘파람 소리를 닮았으며, 지나간 수많은 여름을 닮았다.’)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 나는 이 고도에 관한 은유적 실체가 A의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몇 번 더 읽고 나니, 소설 전체가 오히려 고도에 관한 기억이 A로 특징지어지는 과정으로 읽혀졌다. 이처럼 소중한 A는 ‘나’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화양연화를 함께했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너희 둘이서만 이곳을 찾았다. 보랏빛 꽃이 넓게 깔려 있는 땅의 끝은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바다는 밝은 회색빛이었으며, 바다와 하늘이 서로 만나는 곳은 습기로 인해 흐릿하게 보였다. 너희들은 일찌감치 축축하게 젖어 버린 어깨를 기대고 모래사장을 걸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는 각자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각자가 좋아하는 영화의 비슷한 장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 여름날 백사장, 특히 해가 진 뒤 소금기 가득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면 사람들은 무언 가에 홀린 듯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열기가 남아있는 모래사장은 너를 따뜻하게 감싸주었고, 사방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또한 그 속에서 ‘너’는 A를 성애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지만, 사랑을 느끼고 A의 또 다른 친구를 질투한다. (‘너는 문득 A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그저 단순하게 그녀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못 견디게 그리운 것은, 네가 너무나 사랑했던, 열다섯 살 무렵 너에게 있어 부모님이나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했던 친구 A였다.’) (‘너와 A역시 영원히 헤어 지지도 말고 결혼도 하지 말자고 맹세를 했었다.’) (‘그러다 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너는 축축하고 차가운 옷이 등에 달라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럴 때면 심장이 아기의 꼭 쥔 주먹처럼 조여들어 작아지고 작아져서 그 자리에 쓸쓸히 매달려 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도 도와줄 수 없었다.’)
둘의 공통점은 이 섬을 벗어나고 싶어했고, 더 넓은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너’는 원주민과 본성인과도 유리된 외성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부유했고, 타이완은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도시였다. ('너는 수시로 이 도시의 어느 부분이나 구역, 거리의 풍경 같은 것들을 네가 가 본 적이 있거나 혹은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다른 도시의 어딘가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래야지만 겨우 견뎌 낼 수가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틈만 나면 네가 이곳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시험하려 했다. 심지어 너희들이 이곳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장 떠나라고 까지 하던 시절이었다.') A는 본성인인지 외성인인지 언급되지는 않으나, 비슷한 욕망을 가지고 함께 비행장으로 향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너희들은 무척이나 들떠서 들판 끝에 분명 비행장이 있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는 만장일치로 그곳에 가 보기로 결심했다. 그 당시 딱 하나밖에 없는 비행장까지 갔다는 것은, 출국을 하게 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서로 다른 남자친구를 만들고 대학을 진학하고, 졸업하는 과정 속에서 A와 ‘너’는 판이하게 다른 길을 걷게된다. ‘너’는 타이베이의 호텔 겸 쇼핑몰에서 결혼식을 올리지만, A의 청첩장 속 적혀 있는 장소는 뉴저지 카운티의 교회이다. ‘너’는 잠깐 교토에 거주하는 것 외에는 타이완에서 가정을 이루고 계속해서 살아가지만, A는 20년동안 타이완에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A와 20년만에 재회약속을 한다는 것은 ‘너’가 지난시간동안 지니고 살았던 추억들과, 고도의 옛 모습들을 한꺼번에 대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작품 후반부에 이르러 A는 결국 오지 않는다. 한번 지나친 시간이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A는 떠났고, ‘너’는 그 자리에 기억을 끌어안고 남아있게 된 것이다.
이를 확장시켜 생각하면, ‘너’가 느끼는 더 이상 추억할 거리라고는 남아있지 않게 계속해서 변화하는 타이완과, 이에 맞서 아직도 옛 모습을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하려고 노력해 아무리 시간이 흐른 뒤에 가도 어색함을 느끼지 않고 예전에 느꼈던 추억의 모습이 남아있어 그것을 그대로 지켜볼 수 있는 도시 교토를 비유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너는 예전 습관대로, 우선 신쿄고쿠 토오리 거리에 있는 니시키 텐만구 신사에 가서 합장을 하고 기도를 올렸다.’)(‘너는 곧장 다케다이치라는 작은 가게로 가서,(…) 주인부부의 손녀는 부쩍 커서, 계산대에 틀어박혀 텔레비전을 보면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타이완이라는 공간이 ‘너’에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길래, 왜 ‘너’는 늘 변화하는 한 가운데에 있고, 이에 낯설음을 느끼고야 마는 타이완에 남아있게 된 것일까? 앞서 ‘너’는 공간과 보존에 대한 다소 독특한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이 있는 장소를 보존하지 않는다면, 낯선 도시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런 낯선 도시를 구태여 특별히 사람들에게 귀히 여기고, 아끼고, 보호하고, 인정하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 더 이상 기억할 거리가 없이 사라지고 변화하게 된다면 지리적으로 같은 곳이라고 할지라도 같은 공간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태도이다. ‘너’는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아마도 현실적인 문제와 ('이 땅에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아서 사람들을 붙들어 놓을 수도 없겠지만, 사람들은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남을 수밖에 없다....) 애증의 양상을 띠는 타이완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서 타이완에 계속해서 거주하고 있게 된 것이다.
과거의 타이완을 찾지 못한다고 결론 내린 ‘너’는, 또한 A와의 만남도 성사되지 못한 채로, 반세기 이상의 시간차를 둔 식민시절의 지도를 들고 타이완을 여행하는 이방인이 되어 보기로 결심한다. 이는 변화한 타이완을 모두 무시한 채로 지도를 들고 위치상으로만 같은 옛 타이완을 좇아 보겠다는 소극적인 저항의식의 발현이다. 그 여행에서 ‘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들과, 엉망이 되어버린 것들에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기분을 느낀다. 그러면서 자신의 외할아버지가 다니던 학교 근처의 풍경을 지금 같이 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한다. 또 이것은 ‘너’의 딸이 살아갈 타이완과 나란히 놓이며, 이러한 삼 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서로 다른 타이완 속에서의 생활로 이어진다. 보존되지 않은 타이완들은 다른 타이완들이고, ‘너’의 추억의 장소들-마을, 댄스클럽, 극장, 카페, 서점, 유치원들-이 모두 단절되고 사라졌기에 ‘너’는 딸에게 이 도시에서 살았던 흔적을 보여줄 방법이 없다.
이 타이완들이 공존 할 수 있는 것인지는 바로 정치적 입장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너’는 타이완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정작 타이베이에 하고 있는 일들, 가령, 남쪽에 마지막으로 남은 습지를 메워 중공업 용지를 이전시키는 그런 일들은 그럴듯해 보일지라도 결코 미래세대를 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억’의 가치가 동원되어서, (‘네가 생각하기에, 그들은 과거에 존재했던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빨리 좋든 나쁘든 새로운 것들과 사이 좋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소중한 것을 잊지 않고 지켜 나가는 것의 가치를 강조한다. 작가는 이 가치를 보존하고자 하는 맥락 속에서, 변화 이전을 아직 기억하는 ‘너’를 통해 이 정치인들이 말하고 있는 진보가 과연 진보인지, 그렇지 않으면 소중한 가치와 기억을 파괴하는 행위에 불과할 따름인지를 돌이켜 성찰해 볼 거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너’가 아무리 애타게 바란다고 하더라도 타이완은 달라지고 있다. 모든 것들이 일어났던 공간에 다시 간다 하더라도 도저히 남아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추억은 오로지 기억 속에서만 뚜렷한 색채와 촉감을 가지고 재생되고 있다는 것이 결론지어진다. 모든 작업이 끝난 뒤, 마치 죽은 도시에 바치는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처럼(‘너는 어째서 너를 있게 한 도시를 선택하지 않는 것인가?(…) 아마도, 그 도시에 있던 너에게 익숙하며 추억이 깃든 것들은 모두 너보다 먼저 죽어 버리고 말았다.’) ‘너’는 큰 소리로 울어버리고 만다.
안타깝게도 ‘너’는 이 속에서 더 나아가지 않고 정지하는 것을 선택한다. 새로운 과거와 추억이 생길 것을 미리 두려워하고, 또 다시 상실할 것들을 잠깐 누리는 것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너는 그것들과 아무런 관계도 맺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저 잡지를 사고 커피를 마시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은 또, 앞으로 새롭게 상실하게 될 것들의 시작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너’는 이미 단 한번의 인생을 다 살았고, 이제 쇠잔해져 있는 인간이다. (‘생사존망에 직면했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실제로 많지 않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너희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고도>를 읽으며, 무수한 기억들과 형용할 수 없이 깊고 막막한 감정들이 하나의 소설 속에서 단정히 적혀 전달되어와 느껴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했다. 결국 유한한 것의 유한성을 체감한 자만이, 주어져 있는 모든 것들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가치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또한 통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