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크 일공일삼 5
윌리엄 스타이그 지음, 김영진 옮김 / 비룡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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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도미니크>. <도미니크>는 이렇게 시작한다: "넘치는 기운을 주체하지 못해 늘 무슨 일을 벌여야 직성이 풀리는 개가 있었다." 도미니크는 무엇을 찾아 떠나는지도 모르면서, 자신이 무엇을 찾는지를 알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 모험을 시작한다. 꼭 다시 돌아오겠다는 메모를 남겨놓고. 도미니크에게는 마법을 부리는 능력도, 남들보다 더 강한 힘도 없다. 하지만 악한 일을 미워하고 정의를 사랑하는 것만큼은 도미니크를 따라 올 동물 친구들이 없다. 이런 도미니크의 모험은 순전한 우연들, 그리고 다른 동물 친구들을 만나는 일에 의해 이어진다.


 

 

 

 

 

책의 초반부에서 안 가보면 안 될 것 같은 집을 발견한 도미니크는 그 집에 살고 있는 돼지 배저를 만난다. 도미니크의 피콜로 연주, 그리고 조건 없이 베풀어 준 친절에 마음이 움직인 배저는 자신의 유산을 도미니크에게 물려준다. 동화 속에서 죽음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할까? 동화 속에서 죽음이 다루어져도 되나? 그런 의문을 갖고 책을 다시 들여다봤다. 배저의 죽음으로 도미니크는 잠시 여정을 멈춘다. 멈춰선 도미니크는 삶의 필멸성에 대해, 새로운 세대가 생겨나는 것에 대해, 이 아름다운 세상에 있는 슬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한다.


 

 

 

 

 

[갑자기 사는 게 너무 서글퍼졌다.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슬픔이 밀려들자 그 아름다움도 빛을 잃었다. 슬픔이 물러가면 아름다운 세상이 다시 얼굴을 드러내겠지. 아름다움과 슬픔은 서로 아주 다르면서도 어쩌면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듯했다.]


 

 

 

 

 

충분한 애도를 마치고 나서 도미니크는 슬픔의 자리에서 떠나 다시 한 번 아름다운 세상으로 뛰어든다. 갑자기 어마어마한 재산이 생겼으니 그 곳에서 모험을 중단해도 될 법도 한데, 도미니크는 계속해서 길을 걸으며 자신이 거저 받은 유산을 길에서 만난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에게 거저 나누어 준다. 나누어 주는 것, 함께 기쁨을 향유하는 게 이 책의 핵심에 놓인 가치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 책은 돈=기쁨이라는 도식에서 탈피하려는 시도를 한다. 가령 도미니크가 이 모든 보물을 짊어지기 어려워서 길에서 만난 당나귀 엘리야에게 짐을 부탁하는데, 짐을 조금 옮겨 보던 당나귀는 자신이 보석을 얻어 부자 되는 것에는 일말의 관심이 없음을 깨닫고 게으름을 부리기 위해 일을 포기한다. 도미니크도 보석을 잃어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지키는 일에는 전혀 마음을 쓰지 않는다.


 

 

 

 

 

짐을 옮기기 위해 또 다른 동물 친구 레뮤엘을 만난 도미니크는 거북이 레뮤엘의 삶과 그 삶의 속도를 지켜보며 삶이란 것이 서로 서로에게 얼마나 다를 수 있는 건지 체감하기도 한다.


 

"때로 레뮤엘은 한 자리에 하루 꼬박 가만히 머물러 있기도 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아무 의문도 품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있기만 했다." 도미니크는 때로는 오리 가족을 만나며 살아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향유하는 법을 알게 되기도 한다. 걷기, 헤엄치기, 날기가 한 존재에게 얼마나 다른 의미를 갖는지. 그러면서 도미니크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애정을 느껴"간다.


 

 

 

 

 

 

 

["생각할 일이 있을 때는 걷는 게 좋아요.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갖가지 걸음걸이가 있지요. 예를 들어, 걱정거리가 있을 때는 좁은 데서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게 좋아요. (...)나는 테니스 치는 것도 좋아해요. 물론 그건 발을 써서 하는 운동이지요. 뜰에서 일하는 것도 좋아해요. 그밖에도 땅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어요.


 

물은 느낌이 좋아요. 심지어 차가울 때도 좋아요. 당신도 아시겠지만, 헤엄을 치면 참 기분이 좋아져요. 다리가 없는 곳에서 물을 건너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고요. (...)"


 

"깊이 생각할 일이 있을 때는 걷는 것이 헤엄을 치는 것보다 더 좋아요. 하지만 하릴없이 공상에 잠길 때는 헤엄을 치는 것이 더없이 멋지답니다. 나는 물살에 몸을 내맡기고 물결이 부드럽게 물가를 때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꿈을 꾸며 떠있기를 좋아해요. 어떤 꿈을 꾸든지 상관없어요. 물 위에 떠 있으면 마음이 참 평화로워져요. 신경이 날카롭거나 여러 가지 일로 걱정이 많아질 때, 낙심하거나 화가 날 때면, 어디서든 물을 찾아가서 헤엄을 쳐요. 그러면 마음에 위로가 되지요. (...) 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아요. (...)"


 

"하늘을 날 때는 순수한 기쁨을 느낄 수 있어요. 새를 잡아먹는 맹금에게 쫓기지만 않는 다면요. 하늘을 날 때는 리듬이 있어요. 우주의 리듬에 내 몸을 맞추는 것이지요. 하늘에서는 나 자신이 우주에 속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까마득히 높은 곳까지 날아 올라가면, 나를 창조한 분께 가까이 간 것 같기도 하고요. 내가 영원히 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지요. 그리고 죽은 우리 남편을, 고이 잠든 그 영혼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게 돼요.(...)"]


 

 

 

 

 

이렇게 도미니크는 마음 좋은 동물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악당과 맞서 싸우기도 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기가 원했던 삶을 찾아 나선다. 물론 <도미니크>는 완벽한 모험담은 아니다. 결말부분에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 의 테마를 빌려온, 여름만 있는 낙원에서 잠자고 있는 다른 (여성) 강아지를 깨우는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는 건 아쉽다. 그렇지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일이 있다면 이 둘은 이 낙원에 머물지 않고, 동료로써 또 다른 모험을 향해 낙원을 떠난다는 사실이다.


 

 

 

 

 

<도미니크>를 읽고 나서는 걸으며 새로운 장소를 만나는 게 모험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사람(동물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이 누군지 깊게 이해해가는 과정이 모험이 될 수도 있겠구나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도미니크>는 정신으로 향해 떠나는 사색적인 모험담인 동시에, 한 자아가 홀로 성장하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자비를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관계의 성숙을 다룬 모험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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