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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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지난 해 11월부터 양양과 함께 읽고 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 스완네 집 쪽으로를 드디어 다 읽었다열 권도 넘지만 일 년에 한 권씩 읽으면 그래도 죽기 전까진 다 읽겠지 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읽으려고 한다독자들이 읽는데 걸리는 시간보다 프루스트가 이 책을 쓰는데 걸리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을 거고그런 생각을 하면 읽을 용기가 생긴다책을 읽으면서는 화자가 생을 살며 느꼈던 감각이 말도 안 되게 촘촘히 언어로 번역되어 옮겨졌단 생각이 들었다번역이라고 표현한 묘사의 과정에서 프루스트가 감각을 다시 떠올리며 들인 시간을 다시 생각하고광범위하고 긴 시간에 비해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지그 제한 안에서 얼마나 깊숙이 시간을 느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책에 마들렌이 등장하면 양양과 함께 마들렌을 먹으러 가고브리오슈가 등장할 때 또 브리오슈를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가까운 곳에 브리오슈를 파는 빵집이 없어서 실패했다기억해뒀다 언젠가 브리오슈를 또 먹어야지모든 식물 이름을 검색해 본 건 아니지만예쁘게 느껴지는 어떤 식물 이름은 검색해서 어떻게 생겼는지프루스트의 표현과 얼마나 닮게 느껴지는지 살펴봤다식물 세밀화나 식물 사진이 실려 있는 버전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아마도 이미지로 접하는 식물보다 프루스트의 표현이 더 풍성한 상상을 가능하게 해서 그렇겠지?

 

 

후반부에는 길게 다루어지지는 않지만 레즈비언들이 등장한다뱅퇴유 양과 그녀의 여자친구처음 나왔을 때부터 이 둘이 뭔가 심상치 않다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중엔 이 둘이 그냥 친구 사이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듯이 키스하는 부분이 나온다화자는 왜곡된 기준을 가지고 이 둘을 지켜보는데일반적인 헤테로 커플이 아닌 둘의 관계를 일종의 새디즘적 행위로 인식한다물론 현대의 독자인 나는 뱅퇴유 양은 아빠를 괴롭히고 싶어 하는 새디스트라서 여성을 좋아하는 게 아니고 그저 여자친구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지만당시의 성 소수자가 살았던 환경이 지금보다 훨씬 더 포빅할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는 동시에프루스트의 성 정체성이 성 소수자에 대한 왜곡된 묘사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쳤을지 궁금했다.

 

 

프루스트는 퀴어 만화의 고전인 <펀 홈>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고그 밖에도 여러 퀴어 컨텐츠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 같다어떤 사람들은 프루스트의 성적 지향을 게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어떤 사람들은 프루스트의 성 정체성을 트랜스젠더라고 생각하기도 한다작가의 성 지향성이나 성 정체성을 왜 궁금해 할까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그건 독자가 추측할 권리가 없는 작가의 사적 영역이기도 하니까그렇지만 작가의 실제 삶의 행적을 들여다보는 게 아닌텍스트 안에서 퀴어적인 요소를 발견하고 그 요소를 토대로 텍스트를 다시 읽는 작업은 이미 쓰인 텍스트를 새롭게 다시 읽을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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