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벨 Alfred Bernhard Nobel : 1833 - 1896

스웨덴의 발명가이며, 화학자. 노벨상의 설정자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등교육을 받고, 1850년 미국으로 유학하여 4년 동안 기계공학을 배웠다. 크림전쟁 후 스웨덴에서 폭약의 제조와 그 응용에 종사하고 있던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 폭약의 개량에 몰두하였다. 1863년 니트로글리세린과 흑색 화약을 혼합한 폭약을 발명하고, 그 이듬해 뇌홍(雷汞)을 기폭제로 사용하는 방법을 고안하여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이의 공업화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공장이 폭파되어 동생과 종업원이 희생되었다. 여기서 그는 니트로글리세린이 바로 액체라는 점에 위험의 원인이 있다고 인정하고, 1867년 이것을 규조토(硅藻土)에 스며들게 하여 안전하게 만든 고형(固型) 폭약을 완성하여 이에 다이너마이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 1887년 니트로글리세린, 콜로디온면(綿), 장뇌(樟腦)의 혼합물을 주체로 하는 혼합 무연화약(無煙火藥)을 완성하였다. 노벨의 공장은 스웨덴, 독일, 영국 등에서 연이어 건설되어, 1886년 세계 최초의 국제적인 회사 '노벨다이너마이트트러스트사'가 창설되기도 하였다. 이 동안 그의 형인 로베르트와 루트비히는 카스피해(海)의 서안에 있는 바쿠의 유전(油田)개발에 성공하여 대규모의 정유소를 건설하고 세계 최초의 유조선 조로아스타호(1877년 취항)를 사용하여 세계 최초의 파이프라인(1876)을 채용함으로써 노벨가(家)는 유럽 최대의 부호가 되었다. 과학의 진보와 세계의 평화를 염원한 그의 유언에 따라 스웨덴 과학아카데미에 기부한 유산을 기금으로 1901년부터 노벨상 제도가 실시되었다.

노벨상 (Nobel Prize) :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적인 문화상으로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자이며, 이것을 기업화하여 거부가 된 A. B. 노벨은 1895년 11월 27일 유언장을 남겨, '인류복지에 가장 구체적으로 공헌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그의 유산 약 3100만 크로네를 스웨덴의 왕립과학아카데미에 기부하였다. 이에 따라 아카데미에서는 이 유산을 기금으로 하여 노벨재단을 설립하고, 기금에서 나오는 이자를 해마다 상금에 충당하는 방식을 택하여 1901년부터 노벨상을 수여하였다. 노벨상은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및 평화의 다섯 부문으로 나누어, 해마다 각 선출기관이 결정한 사람에게 상금을 수여한다. 노벨재단은 스웨덴 정부가 임명하는 이사장이 관장하는 이사회에서 관리하며, 수상자 심사는 물리학과 화학상은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 생리·의학상은 스톡홀름에 있는 카롤린의학연구소, 문학상은 스웨덴·프랑스·에스파냐의 세 아카데미, 평화상은 노르웨이 국회가 선출한 5인위원회가 분담한다. 1969년부터는 새로 경제학상이 추가되었는데, 이것은 노벨기금과는 별도로 1968년 스웨덴국립은행의 창립 300주년념사업의 일환으로서 제정된 것으로, 수상자는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에서 선출한다. 각 선출단체는 소속 의원, 과거의 노벨상 수상자, 각국의 학자·작가에게 후보자 추천을 의뢰하고, 추천서를 접수한 각 단체는 극비리에 몇 사람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심사한 후 지명 공시한다. 수상식은 매년 12월 10일(노벨 사망일) 스톡홀름에서 거행되는데, 소개사는 수상자의 모국어로, 추천사는 스웨덴어로 하며, 보통 스웨덴 국왕이 임석하여 시상하도록 되어 있다. 단, 평화상은 같은 날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시상된다. 수상자는 그 후 6개월 이내에 수상업적에 관한 강연을 할 의무가 있으며, 강연 내용의 저작권은 노벨재단에 귀속된다. 상은 금메달·상장·상금으로 구성되는데, 상금은 이자율의 변동, 수상 해당자가 없었을 때의 기금의 증가 등으로 매년 그 금액이 다소 다르다. 또, 한 부문의 수상자가 2명 이상일 경우 해당 부문에 돌아온 상금을 나누어 주도록 되어 있다. 과거의 유명한 수상자로는 물리학상과 화학상의 두 부문을 수상한 M. 퀴리(프랑스), 부부가 함께 화학상을 수상한 퀴리 부처(프랑스 : P. 퀴리와 M. S. 퀴리) 및 졸리오 부처(프랑스 : J. F. 졸리오와 I. 졸리오퀴리), 문학의 E. 헤밍웨이(미국), 평화상의 A. 슈바이처(프랑스) 등이 있는데, M. S. 퀴리와 I. 졸리오퀴리는 모녀간이어서 더욱 이채롭다. 2000년 노벨평화상은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그리고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한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최초로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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