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경제를 다함께 혁신합시다!

 


Economy Innovation 제4호 2005.2.9.

 

꿈과 희망과 행복을 전해드리는 '행복의 대사' '평화의 외교관'인 행복박사 李 基準입니다.
모두가 새롭게 시작하는 설날입니다. 설날이면 모두가 모여 차례도 지내고 윷놀이도 하고 가족간의 대화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한번 더 자신을 돌아봅니다. 돌아오는 길에 겨울이어서 한산해진 칠포해수욕장도 들러고 흥해 신항만 공사 현장도 들러보았습니다. 항상 모든 것은 변해갑니다. 대한민국도 희망과 행복의 대흐름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읽은 김구 선생님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중의 일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 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라고
대한민국은 서서히 좋은 방향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설날인 오늘 축구에서 쿠웨이트를 2:0으로 승리한 것처럼, 주식시장이 서서히 상승하는 것처럼, 소비가 되살아 나는 것처럼 반드시 좋아질 것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장기적인 안목에서 미래를 대비해가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살다보면 항상 좋을 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좋을 때일수록 잘못된 것을 바로 하고 시장경제의 원리에 철저히 해 가야 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디슨을 통해 성공과 승리 그리고 행복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에디슨 - 20세기를 발명한 남자. 성공하기까지는 포기하지 말라!

에디슨이 발명한 것은 너무도 많습니다. 전등, 축음기, 영화, 필름, 전화, 전보, 타자기, 전신, 전지, 전기철도, 시멘트, X선 기계, 마이크로폰, 소켓, 스위치, 휴즈, 미터 등의 송전시스템.
에디슨이 발명한 것은 인류 사회를 일변시켰습니다. 그의 발명 없이 지금 우리들의 생활은 없습니다. 에디슨은 ‘발명계의 나폴레옹’으로 일컬어졌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학력은 제로에 가까웠습니다. 초등학교를 3개월 다녔을 뿐입니다. 여기에 중대한 의의가 있습니다. “학력 따위는 인생의 승리와 관계 없습니다. – 그는 이것을 훌륭하게 증명한 챔피언입니다.


더구나 에디슨은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이 행운이네. 잡음에 신경 쓰지 않고 생각할 수 있으며 언제나 조용한 환경에서 잘 수 있기 때문이야”라고 웃고 있었습니다.(하마다 가즈유키, <쾌인(快人) 에디슨>
달관입니다. 강합니다. 그에게는 언제나 투지가 있었습니다. 결코 약한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에디슨이 생애 이루어 낸 발명특허는 1천 93건(그 이상이라는 설(說)도). 개인으로는 ‘사상 최고’입니다.


에디슨의 성공비결은 무엇이었던가!
그는 말했습니다. “성공할 때까지는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것밖에 없다. 포기한다면 이미 졌다.”

그는 말했습니다. “다른 발명가의 약점은 아주 작은 한 번이나 두 번의 실험으로 그만두고 만다는 것이다. 나는 자신이 구하는 것을 손에 넣을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으면 ‘즉시 포기한다’는 것은 너무도 단락적입니다. 참으로 사람들을 위해 인류를 위한다고 생각하면 결코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겉모습’에 신경 쓰거나, 오로지 “유명해지고 싶다”, “돈을 벌고 싶다”는 얕은 마음이라면 즉시 꺾이고 맙니다. 그래서는 참된 학자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동료 연구가들을 많이 보아 왔지만, 벽에 부딪히면 모두 너무도 간단하게 포기하고 마는 일이 언제나 있다. 99번의 실패 뒤에 드디어 1번의 성공을 얻는 게 보통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차려 놓은 밥상이란 건 있을 수 없다. 노력도 하지 않고 성과가 있겠는가. ‘천재란 하늘이 부여하는 1퍼센트의 영감과 스스로 흘리는 99퍼센트의 땀으로 만들어진다’는 나의 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닐 볼드윈 저(著), <에디슨- 20세기를 발명한 남자>)


‘성공의 비결’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는 답했습니다.
“나는 하루에 18시간을 일합니다. 그러한 생활을 이미 45년간이나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건 보통 사람의 두 배가 되는 노동시간입니다. 말하자면 나는 90년 분의 일을 한 것으로 됩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20년간을 더하면 110년을 살고 살았던 것과 같습니다.
나는 지금도 매일 18시간을 일하고 있으며, 앞으로 20년은 이 생활을 계속할 마음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150년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기에 이만큼 일하면 남의 갑절되는 성공을 해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75세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나날의 노동시간을 조금 줄였습니다. 18시간을 16시간으로 줄였던 것입니다.


에디슨의 ‘성공 비결’ 두 번째는 ‘끙끙대며 괴로워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민해도 별 수 없는 것은 깨끗하게 잊었습니다.
에디슨이 67세 때의 일입니다. 연구소가 불타 모든 것이 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아직 67세밖에 되지 않았다, 내일부터 조속히 제로에서 다시 해낼 각오다. 그렇게 하면 지금보다도 더 크고 훌륭한 연구소를 만들 수 있다. 의기소침할 틈도 없다”고 말하고 일어섰습니다. 의기충천입니다.
그리고 계속 불타고 있는 연구소를 보면서 가족들을 불러들여 “이렇게 큰 화재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없으니 천천히 보아 두는 게 좋다”고 유유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반드시 또 할 수 있다!”는 자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투지가 있습니다. “재난이 뭐냐! 이전보다 더욱 커져 보일 테다!”라고

에디슨이 최후로 한 공적인 스피치는 1931년 84세 때였습니다. 미국의 대공황시대였습니다. 그의 외침은 “용기를 가져라!”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인생 결론이었습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장수했습니다. 역사가 몇 번이고 되풀이 되는 모습을 이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 동안 실업계에 때때로 불경기가 덮쳤습니다만, 그 때마다 미국은 더욱 강해져 위기를 벗어나 더 많은 번영을 이루어 왔던 것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도 선인(先人)들에게 지지 않는 용기를 가져 주세요. 자신의 신념 아래 곧바로 전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사회에서는 이러한 ‘용기’를 중시하는 기풍이 있습니다. 여기에 번영의 기반이 있습니다.
에디슨은 ‘생명의 무한한 파워’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실은 ‘1퍼센트의 1천만 분의 1도 알지 못한다’고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에디슨은 인류의 행복한 생활’을 바라며 발명을 거듭했습니다.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자신의 명예나 이익을 위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대목적을 위해 ‘결코 포기하지 않는’ 근성으로 일했습니다.


※ 상기 에디슨에 대한 내용은 池田SGI회장의 스피치 내용 중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우리들도 한 사람의 벗의 행복을 위해 ‘결코 포기하지 않는’ 집념으로 살아갔으면 합니다.
대한민국의 경제를 다함께 혁신합시다!


2005.2.9.

Cyber SERI 전략경영연구소(세계전략경영포럼 WSMF) 대표시삽/의장/기업가치평가사 李 基準 拜上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