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라시보 > 가족

뭐가 옳은 것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내 동생처럼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을 지언정 인간으로 도리는 다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처럼 스트레스 따위는 전혀 받지 않지만 인간의 도리라고는 하지 않고 사는게 옳은 것인지

언제나 그런것 처럼 내 동생은 명절에는 바쁘다. 첫번째로는 언니인 내 집에 한번 들려야 하고 그 다음에는 엄마집. 그 다음에는 아빠 집이다. 여러 친척집을 돌아다녀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게 뭐가 피곤하냐고 말 하겠지만 이건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쉽게 설명하자면 보통은 하나의 덩어리로 존재하는 가족이 내 동생에게는 세 개의 덩어리로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는 여동생을 제외한 나머지 식구들은 절대로 서로 연락을 하거나 만나지 않으며 아직까지도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있다. 그러니까 동생은 엄마에게 가면 아빠와 내 욕을 들어야 하고 아빠에게 가면 역시 엄마와 내 욕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엄마는 여러번 결혼과 이혼을 거쳐 지금은 혼자이다. 아빠는 엄마와 이혼 한 직후부터 살기 시작한 여자가 있고 거긴 얼추 가족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배다른 형제들 따위는 없지만 나는 엄마도 아빠도 왠지 맘에 들질 않아서 집을 나온 이후 부터는 연락을 딱 끊고 살고 있다. 원하지도 않는 이들과 신경써 가며 산 것은 내가 독립이 불가능했던 미성년자 였을때 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아주 행복하다. 여동생을 제외한 그 누구와도 집안식구와는 거의 왕래를 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하지만 여동생의 경우는 다르다.

그애는 어느 날 울면서 말했다. 너무 피곤하다고. 전부 각자 자기에게 전화를 해서 왜 그렇게 연락을 하지 않냐며 괴롭히고 엄마에게는 아빠와 왕래하지 않는 척을 해야 하며 아빠에게는 엄마집 보다 아빠집을 먼저 들르는 척 해야 하고 언제나 전할 소식이 있어도 나를 포함해서 총 세 군대에다 전화를 해야 하며 혹시나 자기가 알리지 않은 뭔가에 있어서는 필요 이상으로 서운해하고 어떤 문제라도 말 할라치면 서로 경쟁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 해 주겠답시고 설치는 것이 너무 피곤하다고 말이다.  얼마 전 까지 백수였던 내 동생은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다만 나한테만은 말을 하고 약간의 돈을 빌려 썼다. 그나마 그애를 가장 덜 괴롭히는 것이 나 인가보다. 그애는 아파도 결코 말하지 않는다. 모든게 너무 피곤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에서 부터 일찌감치 물러나 있는 나로서는 그냥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나는 정이 없는 인간인가 보다. 가족과 10년째 떨어져서 나 혼자 지내지만 정말로 단 한번도 가족이 있었으면 했다던가 명절날 처량했다던가 해 본적이 없다. 그 모든 복잡한 일들을 명절 단 하루를 위해 참아내고 싶지도 않고 내 주변에 걱정하거나 축하하거나 해결하거나 해 줘야 할 일들이 북적거리는 것도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다. 나는 가족을 벗어나고 부터 진짜로 행복해 졌다. 나는 엄마건 아빠건 어떤쪽과 함께 가족을 이룰때도 행복하지 않았다. (물론 그 모두 함께 가족을 이룰때도 마찬가지 였다.)가족은 서로에게 너무 지나친 스트레스를 준다. 나는 그걸 견디고 싶지 않았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기다렸다.

엄마가 또다시 재혼을 하지 않는다면 여동생은 엄마가 명을 다 할때 까지 돌봐 드려야 한다. 그애는 엄마로 부터 지난 10년간 내가 받지 않은 혜택까지 포함해서 모두 받았기 때문이다. 엄마로서는 당연히 여동생을 맘대로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신다. 여동생이 서울에 가서 일을 하는 이유는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아직 엄마가 많이 늙거나 아프지 않은 순간 만이라도 엄마를 벗어나 있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에 비해 현저하게 가난한 아빠쪽도 여동생이 돌봐야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가진 재산을 엄마에게 다 빼앗기고 원래부터 돈을 모은다든지 하는 것에는 신통치 않았던 아빠는 거의 비슷한 부류의 여자를 만나고 부터 저축따위는 모르고 살고 있다. 지금은 그다지 늙지 않았기 때문에 여동생에게 기대지 않지만 내 생각에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그들은 금전적으로 여동생에게 기댈 것이다. 그들 역시 나에게 해 줄것 까지 다 포함해서 여동생에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혜택이란 혜택은 다 포기했었다. 대학 입학금을 끝으로 나는 그들에게 어떤 금전적 도움도 받지 않았다. 먹고 사는 것은 온전히 다 내 몫이었다. 물론 평범하게 주는 밥 먹고 산 나로서는 진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스무살 짜리가 어느날 갑자기 자기 자신을 혼자 책임 진다는 것은 녹록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상황이 안좋아져서 일주일 넘게 굶을 망정 절대 손을 뻗어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요 없을때는 연락을 끊다가 내가 아쉬울때 연락하는 엿같은 짓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시간들을 전부 내가 해결했기 때문에 나는 가족들로 부터 완벽하게 떨어져 나올 수 있었다. 이제는 그들에게 아무런 감정이 남아있지 않다. 그들은 어렵거나 힘들어도 나에게 손을 뻗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러지 않았듯이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가족인데 어쩌고 하지만 모르면 입 다물라고 말 하고 싶다. 나는 가족이 없어도 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가족 같은 불편한 울타리를 만들 생각은 없다. 지금으로 충분하게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헤깔리기도 한다. 여동생처럼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양 쪽 다 찾아다니면서 자식 노릇을 해야 하는건지... 이렇게 정말 연락 딱 끊고 모른척 하며 살아도 괜찮은 건지. 내 마음은 이래도 괜찮다고 하지만 내가 배운 모든 것들은 나에게 나쁜년이라고 말하고 있다. 잔인하고 정없고 독한년. 모두들 땡긴다는 그 핏줄에 늬년이 뭐라서 그렇게 쿨할 수 있냐고. 앞으로 더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일까? 올해도 여동생은 나머지 두군데에 거짓말을 하고 내 집에 왔다가 엄마에게 갔다. 그리고 또 엄마에게 올라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아빠에게 갈 것이다. 어쩌면 가기 전에 그 두집에서 받은 스트레스에 관해 말하기 위해 나를 한번 더 찾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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