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끊임없이 솟아나는 기발한 이야기들,

읽는 내내 '즐거움'을 주는 문학의 세계,

꿈을 그리면서도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힘..

....과 같은 표현에서 가장 동떨어져 있는 작가, 코엘료.

위의 표현에 걸맞는 작가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미하엘 엔데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도 좋다. 코엘료는 <11분>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시작하고 끝맺고 있으니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2.

<모모>의 즐거운 이야기꾼 ‘기기’와 최고로 잘 들어줄 줄 아는 ‘모모’가 함께 있으면 언제나 즐겁다. 이야기 꽃이 핀다. 한편, ‘모모’가 ‘말하는 인형’과 노는 상황을 보자.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모모가 혼자서 말하고 대답하며 놀 수 있는데 이 인형은 자꾸 쓸데 없는 소리를 반복 하면서 이야기의 진행을 방해한다.

 

3.

<11분>의 본문은 세 가지 틀로 구성된다. 마리아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꾼의 진행, 인물간의 대화, 그리고 마리아의 일기이다.

그리고 그 본문 앞에는 헌사와 더불어 작가가 ‘저를 사로잡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의무’와 ‘작가가 자신에게 얼마나 정직하게 글을 쓰느냐 하는 문제’를 언급하였다.

본문 뒤에는 따로 작가노트가 있다. 여기엔 소설의 탄생과정과 더불어, 친절하게도 이게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를 적어놓았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그 내용을 매우 명확하게 강조해 주는 인용문들이 끼어 있다. 이런 구성과 친절한 배려는 이전에 본 적이 없다.

, 그리고, 본문 중에는 작가가 전에 쓴 소설(<연금술사>)의 의미도 단 두 줄로 요약해서 제공한다. 그 책을 먼저 읽은 게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읽을 필요가 없었을 테니.

 

4.

사건은 서술자의 진행과 대화로 진행된다. 가끔씩 서술자가 말하다가 갑자기 “나는”이라는 마리아의 시점이 끼어드는 신선한 모습도 눈에 띈다. 어쨌든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은 대충 알 수가 있다. 다만, 서술자는 각 에피소드의 중간중간에 사랑이란, 인간이란 어떤 것인지 등등에 대한 교훈을 누차 강조한다. 가끔은 ‘생각해볼 문제’도 던져준다. 비슷한 내용이 여러 곳에서 마리아의 일기 속에 반복된다.

 

 

 

5.

 

영화관에서 매5분마다 화면이 중단되고 감독의 의도를 잘 아는 평론가가 나와서 해설을 해준다. 그리고 다른 한 편에서는 배우가 똑같은 내용을 독백하고 있다. 

어쨌든, 감독을 직접 인터뷰하는 건 문학이 아니니까, 이야기로 전달해야 하는 까닭에 일기형식이 더 필요한 게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영화관이 생긴다면 얼마 안가서 파산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뛰어난 마케팅 전략 덕분인지, 자극적인 제목과 포스터 덕분인지 실제로는 어느 정도 흥행이 되고 있다! 게다가 잡지들은 칭찬일색의  서평을 내고 있단다.

 

 

6.

 

이야기는 남의 짐이나 실어주는 용달차가 아니다.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이다. 작가가 특별히 전할 말이 있어도, 작가는 설교문이 아닌 문학작품, 즉 이야기 세계로 말해야 한다. 작품의 앞뒤와 본문 곳곳에서 직설법으로 작품의 탄생배경부터 그 메시지까지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은 무개념의 극치이다. 영화 시작 전후에 감독이 자신의 문제의식과 의도를 늘어놓는다고 생각해보라.

<11>분이 독자를 또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데에 실패하는 이유는, 모모가 대화, 즉 이야기를 통해 상상의 놀이세계로 떠나는 것을 번번히 방해한 ‘말하는 인형’이 하는 짓과 비슷하다. 반복적으로, 직설법으로 하고 싶은 말만 하기.

 

 

7.

 

<11분>을 억지로 다 읽은 것은 그래야 비평할 자격이 생긴다고 생각해서 이다.  그 내용과 메시지에 대한 평가로도 리뷰할 수 있지만, 나를 더 화나게 한 것은  <11분>이 '이야기'를 모욕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지겨운 잔소리 주제에 이야기인 척 하고 있단 말이다. 모모처럼 짜증이 난다. 이런 것과는 대화를 할 여지도 없고, 이야기에 빠져보려한 노력들도 헛수고로 끝나버린다.

 

 

8. P.S.

<연금술사> 리뷰에서 나는 그 책이 이집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중동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중동에는 머물러 봤지만 창녀의 생활은 전혀 모르니 이번엔 확실치 않지만, <11분>도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느낌보다는 공상과 허황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