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스테스 한길그레이트북스 42
플라톤 지음, 김태경 옮김 / 한길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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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알라딘에 돌아와서 쓰는 두번째 서평이다. 내가 쓴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대한 리뷰가 꾸준히 thanks to를 가져다 준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플라톤 대화편에 대한 리뷰를 추가한다.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겠다.

옮긴이는 소피스테스(흔히 영어식으로 소피스트라고 알고 있는데, 이 시리즈는 그리스어 발음을 그대로 제목에 쓰고 있다)가 어려운 후기 대화편들 중에서도 "가장 읽기 어려운 대화편에 속한다"고 말하고 있다. 역자는 50쪽에 달하는, 아마도 본인 논문에 기초한 서론을 본문에 앞서 달아놨는데, 여기서부터 읽기 시작한다면 많은 일반독자들은 오히려 질려서 나가 떨어질 것이다. (역자의 "서론"은 사실상 읽어볼 만한 좋은 글이다). 아리스토텔레스식의 논문이 아니라, 대화편이기에 플라톤에 접근하기에 더 좋은 것이다.

후기 대화편들 중에, 내가 느끼기로는, late antiquity에서 중세를 거쳐 가장 영향력 있었던 "티마에오스"가 가장 난해한 작품이었다. 작년 여름 방학부터 가을 학기 내내 이 대화편을 공부했지만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지만 동시에 플라톤에 대한 나의 이해를 완전히 바꿔놓은 대화편이기도 하다). "필레보스"도 쉽지 않다. "법률"은 "국가"보다도 두껍다!  

이들에 비해 "소피스테스"는 논지를 따라가기 그리 어렵지 않다. 이에 더불어, 내가 이 책을 일반독자에게 추천할만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소크라테스의 원숙함을 엿볼 수 있는 대화편이라면, 소피스테스는 플라톤의 원숙한 철학을 맛보기에 좋은, 게다가 분량도 많지 않은 대화편이다. 역자가 논하는 철학적인 개념들도 중요하지만, 내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소피스트 내지 소피스트로 대변되는 학문/삶의 방식에 대한 플라톤의 입장이다.  예를 들면:  

"자네는 배움(지식)을 사서 나라에서 나라로 다니며 [그걸] 현금으로 교환하는 자도 같은 이름[도매상]으로 부르지 않을까?" (224b).  

플라톤의 눈으로 본 소피스트와 "실제" 소피스트의 차이점을 차치하고라도, 소피스트들이 지식을 팔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수업료 받는 게 뭐가 문제냐 할 수 있겠지만서도). 지금도 한국의 많은 "학자"들이 외국에서 지식을 수입해와서 국내에서 알아주는 이름과 조직(학교 브랜드 등)을 통해 지식을 유통시키고 있는 게 사실 아닌가?  

본인의 원숙한 철학개념과 이런 비판의식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대화편이 바로 소피스테스이다 (대화편 자체가 플라톤식 변증술의 훌륭한 예시이기도 하다). 근저에 있는 철학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겠다는 마음 보다도, 대화의 맥을 따라가는 독서 자체를 즐기게 된다면 일반 독자들에게도 기쁨과 보람을 줄 수 있는 좋은 대화편으로 소피스테스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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