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떤 영화 보셨어요?
더 차일드 (1disc) - 할인행사
쟝 피에르 다르덴 외 감독, 제레미 레니에 외 출연 / AltoDVD (알토미디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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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유학까지 했으나 끝내 영화 전공 학도가 될 수 없었던 스스로에 대한 작은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짐작하고 있지만, 평소에 일상의 작은 여유라도 생길 때에는 시네마떼끄에 들르기 위해 애를 쓰는 편이다. 그건 에즈라 파운드가 ‘시론’에서 말한, '시인이 되려면 적어도 피아노 레슨 강사가 건반에 쏟는 정도의 시간을 단어들에 할애해야만 하네.'같은 문구 앞에서 얼굴 붉어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의무 방어이기도 하다.

80년대 영화를 공부했다는 아저씨들. 졸아붙어가는 전골 불판같이 지글거리는 화질의 복사판 비디오테이프를 농익은 와인을 대하듯 음미하고, 열렬히 감응하며, 끝내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들만의 전설. 졸라 구린 화질의 영상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었겠지만, 이름 몇 자만 슬쩍 흘려도 예술의 판테옹의 상석에 앉아 발가락 닦아주는 시녀까지도 둘 수 있다는, 머나먼 구라파 거장 감독의 존재 자체가 그들을 감동케 하였으니. 발터 벤야민도 기겁할 그 아우라의 본연은, 아시아 변방에서도 끄트머리에 위치한 가난한 소국의 슬픈 근대사와 다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복 받은 나날 속의 정군과 우리 세대 영화학도들은 어떠한가? 단돈 몇 천원에 우리는 천재들과 직접 연애할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한다. 물론 지적 스노비즘마저 그리워지는 생각 없는 오늘에 와서는, 씨네마떼끄야 시들해진 소주판과 다름없어진 느낌이지만. 달랑 여섯 명의 관객이 객석 시트에 가라앉아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알코올 한 방울 없이 대한민국 서울에서 가장 더럽게 취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취기는 딥키스만큼이나 달콤하다.

어제의 술판에서 고다르, 브뉴엘, 타르코프스키, 파스빈더,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이들이 그 주인공이었다면. 오늘 씨네마떼끄에선 다르덴 형제가 노련한 바텐더의 자세로 동공에 필름을 따르고 있다. 절대 먼저 질문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가 느낄만할 무렵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살아있다는 것에 대하여 말을 꺼내는 감독 형제의 (바텐더적)장인성은, 노른자가 한가운데에 위치한 삶은 달걀과 같이 완숙하다. 스크린 앞의 우리는 두어 시간 남짓이나마 벨기에 출신 감독 형제의 생의 윤리학에 도취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예술적 과음에서 비롯된 숙취는 짧은 감상의 수십 배가 넘는 시간동안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누르며 괴롭힐 것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인간은 무엇을 행동해야 하는가?’ 도대체 요런 근원적 질문 앞에서 팔짱을 낀 채로 툭툭 답변을 던질 수 있는 슬기로운 이십대가 얼마나 있겠는가. 단순 몽매한 정군의 대응법은 이렇다. 카메라가 생을 응시하는 순간 함께 관조하는 척 하고, 주인공이 생을 성찰하는 순간 함께 반성하는 척 하며, 터져 나오는 오열에 맞추어 몇 줄기 눈물을 흘린다. 이게 무슨 쥐똥 같은 감상법이냐고? ‘L'Enfant (The Child)’을 보시게 된다면 이렇게 한번 해보시길 권유한다. 저급한 센티멘털리즘에 기댄 감상에서도 부단히 인간을 ‘정화’시키는 거장의 아우라를 느끼실 수 있을 터이니.
해보셔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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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떤 영화 보셨어요?
남과 여 - 일반 킵케이스
끌로드 를루슈 감독, 장 루이 트랭트냥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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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Jean의 차 안)

Jean-Louis Trintignant : 남편은 독특한 분이신가요?

Anouk Aimee : 예, 제게는요...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예요.
모든 사물, 사람, 이데올로기 그리고 지구 상의 수백개의 국가들에 대해서 열정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죠.

Jean-Louis Trintignant : 뭐... 거의 신이나 다름 없군요...

Anouk Aimee : 예, 저에게는 그런 느낌이예요.
...... 예를 들어, 우리는 브라질에서 처음 한주를 같이 보냈어요. 남편이 거기서 촬영을 했거든요. 프랑스로 돌아온 후에 일주일 내내 Samba 이야기 뿐이었어요. Samba가 우리들의 삶으로 들어온 것이예요.

Jean-Louis Trintignant : Samba가 당신들의 삶으로요...

Anouk Aimee : 네!

Anouk Aimee의 회상, 죽은 남편 Pierre Barouh가 'Samba Saravah'를 부르기 시작한다.


(Samba Saravah 가사)

행복은 모두가 원하는 것이지.
나는 행복을 찾아 쾌활하게 웃고 노래하네...

인생의 기쁨은 마음껏 즐기는 것,
난 웃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해...
그것은 행복한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지.

하지만 슬픔 없는 Samba라면 그것은 취하지 않는 와인과 같은 것,
취하지 않는 와인과 같은 것, 난 그런 Samba를 원하는 것이 아냐...

애수가 없는 Samba를 추는 것은,
얼굴만 예쁜 여자를 사랑하는 것.
바로 이 곡을 지은, Vinicius de Moraes의 말씀.
외교관이자 시인, 이 노래의 작사가인...

그는 스스로를 브라질에서 가장 까만 백인이라고 불렀어요.
그렇다면 아마 저는 가장 브라질인 같은 프랑스 남자일 거예요...
전 지금 Samba에 대한 열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Samba로 노래하네,
사랑하는 여인에게 고백을 못한 사나이가 그녀를 노래로서 찬양하네.

난 거북한 노래들을 알고있어.
그건 시대에 뒤떨어진 이들을 위한 것.
사랑없이 노래를 이용하지...

난 모든 세계를 헤메였고, 방랑을 거듭한다.
깊은 기쁨을, Samba를 노래하면서, 방랑자들의 뿌리를 찾아서...
가장 깊은 심연에 다다르기 위해선 Samba를 불러야만 하네...

Joao Gilberto, Carlos Lyra, Dorival Caymmi, Antonio Carlos Jobim
Vinicius de Moraes, Baden Powell...
이 노래를 비롯해서 명곡을 낳고 지은 분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잔을 들자! 취하도록 마셔 이 모든 것에 열광하고 싶네...

자! 건배! 위대한 작곡가들이여...
Samba가 점지한 아이, Saravah!!!
Pisindy, Noel Rosa, Doleres Duran, Ciro Monteiro 그리고 오늘밤 Edu Lobo와 여기 있는 친구들을 위해 건배!
Baden, Iko, Oswaldo, Oscar, Nicolinho, Milton, saravah!!!

그 모두가 단지 이름만으로도 내게 전율을 일으키는 인물들...
모든 이들이 손들고, 노래하게 하고, 열광시키는 바로 Samba!

Samba는 Bahia의 항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수세기를 거쳐온 춤과 고통의 Samba리듬, 그리고 시가 있다네...

Samba가 그 무엇을 표현하든지,
Samba의 형태와 각운은 백인적이다.
그 형태와 각운은 백인적이다...
하지만 Samba의 심연은 흑인적이다...

Samba가 그 무엇을 표현하든지,
Samba의 형태와 각운은 백인적이다.
그 형태와 각운은 백인적이다...
하지만 Samba의 심연은 흑인적이다...

하지만 Samba의 심연은 흑인적이다......
하지만 Samba의 심연은 흑인적이다......


(다시 Jean의 차 안, 파리 시내에 도착했다.)

Jean-Louis Trintignant : 파리의 어느 구역에 내려드릴까요?

Anouk Aimee : 라마르크 거리요.

Jean-Louis Trintignant : 라마르크 거리... 정확히 위치가 어디죠?

Anouk Aimee : 몽마르트르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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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남과 여>는 칸에서 그랑프리를 받았다. 클로드 를르슈 감독은 당시로는 최연소, 약관 스물 여덟에 최고의 영예와 전세계 모든 영화소년, 소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이 작품의 영상은 오늘날의 미적 관점으로도 너무나 경이롭고 아름답다.

오늘, 누군가 나에게 "이제는 이 세계에서 멸종해 버린 멋진 남자라는 존재를 추억하고 싶어요..."라는 말을 건낸다면.  난 곧바로 'Jean'을 떠올릴 것이다. 이 세계에서 가장 멋진 프랑스인이며, 멋진 남자인...

'Samba Saravah'는 프렌시스 레이의 메인 스코어와 함께 내가 이 뮤지컬 형식의 영화에서 가장 사랑하는 곡이다. 당연히 나는 불어를 모른다. 위의 가사는 내가 찾은 두가지의 번역본을 내 나름의 방법으로 정리한 것이다. 어렴풋하게나마 진정한 Romanticism을 느껴보고 싶었다.

선명하게... 이제 더 이상 그런 것이 세상에 없다고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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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떤 영화 보셨어요?
솔라리스 (2Disc)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니콜라이 그린코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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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i Tarkovsky, <Solyaris>, U.S.S.R, 1972

희생을 전제로 한 사랑만이 인간의 인간다움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일까? 물론 모호하고 목적이 불투명한 질문이다. 인간은 그 스스로의 문명과 문화, 관념에 근거해 가시적 세계를 통찰하고 가치판단의 준거로 삼는다. 하지만 비물질적(비가시적) 영역에 대한 인간의 의지를 결정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체계화된 관습과 규범 혹은 도덕, 이성....... 우리는 작지만 위대하고 강한 존재를 지향한다. 평화로운 공동체를 추구하는 우리의 가치는 고결함과 이상적 이데아를 열망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역사가 반증하듯 인간적 조건들로 접근하는 길은 험난하며, 도정의 끝은 불확실하게 흔들린다.

인간의 의지나 이성이 가진 나약성과 한계 때문일까? 우리는 때로 자신들의 본성이라고까지 여기는 휴머니티에 대해 회의적 태도와 의혹적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혹성 솔라리스 같은 곳에서라면 인간다움의 절대적 당위성은 부유하는 수초와 같이 흐느적거리는 대상이다. 본능적 욕망과 사회적 단계에서의 이기적 욕구, 사랑에 대한 갈구 앞에서 우리는 인간의 가치를 흔하게 배반한다. 물론 고뇌와 번민이 수반되는 현실적 선택이라고 긍정해 버리지만, 그에 따른 인과적 상처의 크기는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이성적 세계는 너무 쉽게도 다른 세계에 대해 배타적이고 위협적인 방식으로 대응한다.

심리학자 ‘크리스 켈빈’은 사유하는 바다, 혹성 솔라리스의 우주정거장에서 10년 전에 자살한 아내 ‘하리’와 재면한다. (아! 나탈리아 본다르츄크의 초현실적 아름다움이란...) 원자가 아닌 중성립자로 구성된 방문객. 정거장의 확고한 이성으로 무장한 과학자들은 그녀와 그들의 괴물들을 부정한다. 솔라리스의 살아있는 바다는 인간 무의식의 일면을 선택적으로 재생하여 그 주체들과 조우하도록 끊임없이 방문객을 보낸다. ‘하리’는 인간보다 더 사랑을 갈망하는 존재지만, 이성적 인간들은 그녀의 실존을 회의한다. 그녀의 얼개를 관찰하고, 그녀의 학습을 조롱하며, 그녀의 판단을 멸시한다. 하지만 ‘하리’가 아닌 무의식의 산물로서 주체를 인식하고, 스스로의 미래를 과단하게 선택하는 것은 방문객인 그녀뿐이다. 소멸기를 향해 걸음을 내딛는 그녀의 모습을 스크린은 감히 담지 못한다. 납득할만한 전개이다. 나에겐 시지프스적 존재로서 인간을 온전하게 표현하는 행위는 너무나 잔인할 뿐더러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느껴진다. (그렇지만 지혜로운 카뮈의 문장을 통해 우리는 어렴풋하게나마 상처투성이의 의지를, 그 눈동자에 대해 사색할 수 있다.)
그리고 라스트 시퀀스....... 지구로 귀환한 켈빈이 고요한 호숫가 옆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아버지의 품에 안긴다. 아니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보듬었다. 하지만 그 역시 솔라리스의 바다 가운데, 무의식의 섬에서의 반복적 행위임이 드러나는 순간. 불완전한 개체로서 인간의 한계를 헤아리는 감독의 인식은, 인지적 측면에서 너무나 냉정하고 예리하며, 감내할 수 없는 부조리에 대한 자각이었다.
(나는 존재론적 관점에서 영구 순환적 관계로 이 시퀀스의 의미를 파악했다. 부디 오독이 아니기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세상을 인식하는 철학적 도구로서 영화를 선택했다. 그러한 까닭에 그의 작품들과 관념은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솔라리스’는 가장 대중적인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이다. 그래도 미욱한 나에게는 쉽지 않은 감상이었다. 그러나 오해와 편견을 거두고 (노력하고) 관조한 ‘솔라리스’에서 찾은 것은 ‘별이 빛나는 창공이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였다. 감독은 인간의 오랜 사유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원초적 물음과 그 귀결에 대한 현명한 잠언을 동시에 던지고 있었다. 한계를 지닌 우리가 사람이기 위해서 치러야만 하는 대가. 희생의 의미에 대해서. 인간은 사랑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고, 사랑은 희생의 흔적 위에서만 잎사귀를 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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