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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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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의 독특한 헌책 문화를 알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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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 - 장 지글러의 ‘대량 살상, 기아의 지정학’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다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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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읽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에서 기아의 근본 원인에 대해 알게 되었다면, 이번 책은 제목부터가 그 원인에 대한 대책이 제시되어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하지만 짐작과는 다르게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지난 책에서 다루었던 기아의 원인을 더욱 상세히 분석하고 제시하고 있다. 물론 원인을 자세히 알게 되면 해결책은 저절로 떠오르겠지만, 무언가 대단한 것을 기대했기에 약간의 실망감은 어쩔 수 없다.

  저자 '장 지글러'는 이 책을 자신이 지금까지 낸 책들을 아우르는 완결판으로 펴낸 듯하다. 나름 상당히 신경을 써서 집필했음이 느껴진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오로지 힘의 논리와 소수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돌아가는 세상을 계속 확인하게 될 뿐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세상에 대해 분노하게 되고 안타까운 마음이 컸지만, 책장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는 굶주리는 세계를 구할 방법은 없는 듯이 느껴진다. 전에 읽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내용과 중복되는 내용이 많은듯 하지만, 재탕의 느낌은 아니다. 저자는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기아에 대해서 알리고자 구구절절이 호소하는 듯하다.

  전 세계가 힘을 한데 모아야만, 겨우 해결될 기아에 대해서 일단은 많은 이들이 알게 되는 것이 기아의 효율적이고 빠른 해결을 위한 첫걸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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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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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감상문은 줄거리(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현 시대에서 전세계에 가장 인기있는 작가라 해도 과언이 아닌, 파울로 코엘료의 신간은 자연스럽고도 당연하게 나의 손을 뻗치게 만들었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을 읽을 때면 어떠한 몽환적 매력에 이끌려 이야기 속에 빠져들고, 그 속에서 어떠한 교훈을 얻게 된다. 더불어 마음 속 깊은 곳의 자아를 간지럽히는 느낌을 받는다. 내 안을 성찰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위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의 이번 신간을 펼쳐보았다.



 

소설 '알레프' 는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작가 '파울로 코엘료' 본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펼쳐진다. 2006년에 작가의 오랜 꿈인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여행여정을 그린 자전 소설이다. 특이하게도 에세이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시베리아 횡단 여행의 여정 속에서 전생(前生)을 드나드는 그의 이야기는 진실인지 허구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의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졌으며, 나의 머리가 모든 이야기를 담아 내기 벅찰 정도로,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어느 날 저자는 삶속에서의 자신이 더 이상의 발전을 이룰 수 없다고 느끼게 된다. 때문에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을 한다. 저자가 마스터라 부르는 J.는 그러한 저자에게 인간이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한다. 하지만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저자에게 자신의 왕국(현재의 삶)에서 벗어나 경험을 통해 몸소 체득하길 권하게 된다.

(p23.) "그러니까, 지금 바로 여기서 자네의 의문은 시작되는 걸세. 정말 무언가 잘못되었는가? 그렇다. 잘못됐다. 하지만 지금 이순간 자네는 과거를 현재로 가져옴으로써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어. 과거와 미래는 오직 우리 기억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야. 하지만 현재의 순간은 시간을 초월해 존재하지.~ (중략)~ 자네가 전생에 한 일이 자네의 현생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네. 자네가 현재에 하는 행동이 과거를 속죄하고, 따라서 미래를 바꾸는 것이야."

J.가 저자에게 전하는 위 대사에서 나는 "나의 삶은 지금 이 순간에 이루어 진다!!" 라는 현재에 충실하고자 명심하고 있는 나의 신조에 대해서 다시금 자신감과 어떠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뜻에 공감하지 못하는 저자는 여행을 떠나라는 권유를 받게 된다. 다시말해 과거와 미래를 벗어나 현재로 돌아오는 여행을 권유받은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지난날의 충분한 여행을 떠올리며 더 이상의 여행은 지루할 뿐이라고 생각하고 그 여행을 벗어날 구실을 모색한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알게 된 어느 '예지자'의 예언을 듣게 된다.

(p.37) "터키의 영혼이 당신 남편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사랑을 바칠 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밝혀내기 전에 그가 피를 흘리게 할 겁니다."

예지자의 위 짤막한 대사는 앞으로 저자가 겪게 될 여정을 가장 최대한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
북페어에 참석하게 위해 영국으로 떠난 저자는 호텔에서 우연히 잡지 한권을 보게 되고 거기서 중국대나무에 대한 글을 보게 된다. 나 역시 언젠가 들어봤던 대나무에 대한 이야기. '대나무는 씨를 뿌리고나서  거의 5년 동안은 아주 작은 순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땅 밑에서 종으로 횡으로 뿌리를 굳건하게 뻗치고 있다가 다섯번째 해가 끝날 무렵 갑자기 약 25미터에 달할 정도로 성장한다' 는 이야기는 내가 처음에 들었을때는 많은 용기와 힘을 얻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책속의 저자는 이 이야기를 읽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다가 곧이어 자기 자신이 중국 대나무이고 성장하기 위한 다섯번째 해가 임박했다고 느낀다. 그 후 북페어에서 각 국의 초청요구를 닥치는 대로 응하게 된다. 그러던 중 러시아출판사측의 사람들의 초청요구에도 응하면서 우연찮고도 갑작스러우면서 엉뚱하게도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을 제안한다.

러시아로 떠나기전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 간 저자는 독자 '사밀'을 만나 그의 안내로 오래전 한 남자가 자기 형제를 죽였고 형제의 아버지가 죽인 아들의 기억을 기리고자 학교를 세웠다는 건물에 가게 된다. 그 곳에서 저자는 전생의 데쟈뷰를 겪게 된다. 그 곳에서 보게 되었던 전생의 잘못과 상처를 마주하고 바로 잡을 때 자신이 삶이 한 걸음 더 앞에 나아가게 될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사밀의 도움을 받아 환생에 대한 코란의 몇몇 시편을 전해 들으며 '사람은 죽음으로 인하여 떠나게 되는 것이 아닌, 항상 우리 삶의 과거와 미래에 머물러 있음'을 되새기게 된다. 이때까지는 저자가 말하는 이말의 의미를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깨닫게 된다. 또한 저자가 기차여행을 떠나면서 알리고자 하는 주요한 메세지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출발지 모스크바에서 '힐랄'이라는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저자가 언젠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 찾아 왔다고 한다.

(p.74) "언젠가 내 삶에 찬바람이 불어오면 나를 위해 우정의 불을 지펴주겠다고 약속해줘."

책 제일 첫 페이지 작가의 인사와 함께 친필로 적혀있는 위 문장은 개인적으로도 책 전체에서 가장 멋진 문장으로 생각된다. 바로 그 문장이 나오는 전문(全文)을 힐랄이 저자에게 들고와서는 '예전에 선생님이 저를 위해 성스러운 불을 피워주었고, 언젠가 선생님에게 제가 그 호의에 답례를 해야 한다고 했어요.' 라는 말을 하며 저자와의 첫 만남을 이룬다.

터키출생에 러시아의 예카테린부르크로 바이올린을 공부하러 왔다는 '힐랄'이라는 여자의 성격은 집요하리만큼 고집스럽고도 집착이 강하며 결단력도 강하고, 자기중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의 내면에는 지난 과거 속에 상처가 남아있음을 알수 있다. 결국 힐랄 역시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끊임없는 현재에 머물러 있는 인물인 것이다. 힐랄은 저자와 함께 여행을 하기 위해 설득하는 과정에서 이런 말을 한다. 

(p.92)"나는 당신이 나를 치유해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당신이 고전하는 문제를 치유해줄 수 있다는 걸 알아요. 제가 옆 산에 불을 지폈어요. 저를 믿으면 돼요."

"인생은 제게 가혹하기 그지없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가르쳐줬어요. ~ 중략 ~ 괴로워하고 싸우면서, 싸우고 괴로워하면서,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끝나리라는 확신에 매달려 살고 있는 거에요. 제발, 저를 여기 혼자 내버려두지 마세요. 이 여행은 제게 구원이에요."

결국 힐랄은 9288킬로미터에 달하는 시베리아 횡단 기차여행에 동참하게된다.
과거와 미래에서 벗어나 현재로 돌아오기 위한, 과거 혹은 전생의 잘못과 상처를 마주하고 바로잡기 위한, 그로인해 치유되고 구원받기 위한 여행을...



 

시베리아 횡단 여행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젊은이들이 간다고도 들었고, 유럽의 배낭여행과 더불어 하나의 로망으로 여겨지는 여행이었다. 더불어 그 여행은 겉보기와 달리 매우 지루하고 힘든 여정이라고도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다. 헌데 이러한 여행이 저자의 오랜 꿈이 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의아스럽게도 생각되었다. 거리가 9288킬로미터에 일곱 개의 표준 시간대를 통과한다고 하니 그저 어마어마하게 긴 거리로 느껴질 뿐이다. 저자는 기차에 오르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황홀경을 느꼈다 말하며 이렇게 전한다.

(p.101) "나중에 남들에게 어떻게 말할 것인지 생각하지 마라. 시간은 지금 여기에 있다. 이 순간을 마음껏 누려라."

여행을 함께할 동반자들도 만나게 된다. 통역자 '야오' 는 앞으로 진행되는 여행에 있어 사람들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조정자의 역할을 하며 예리한 통찰력으로 저자를 도와주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야오 또한 부인과의 사별을 잊지 못한채 과거 속에 얽매여 현재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부수적 등장 인물로서는 남자 편집자와 여자 편집자가 나오는데 특히 여자 편집자는 힐랄의 동행을 처음부터 탐탁치 않게 생각하기에 여행하는 동안 많은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들과 함께(특히 힐랄과 함께) 저자는 영적인 깨달음을 얻기위해, 과거와 미래를 벗어나 현재로 돌아오기 위해, 자신의 왕국을 찾기 위해 여행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된다.

열차가 출발한지 하룻밤이 지나고 힐랄과 저자는 우연찮게도 아주 중요한 장소에 함께 하게 된다. 바로 '기차 바깥으로 나가는 문들과 다음 객차로 연결되는 또 하나의 문이 있는 네모난 공간' 이 곳에서 저자는 힐랄과의 대화 중에 힐랄의 눈을 통하여 '알레프'를 경험하게 된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이 책의 제목인 '알레프'에 대한 설명이 처음 나오게 된다.

(p.115) "나는 알레프에 있다. 모든 것이 한 시공간에 존재하는 지점.

열차가 예카테린부르크에 정차하여 저자는 통역자 야오와 함께 니콜라이 이파티예프라는 사람의 집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한 성당에 가게 되고 그 곳에서는 야오의 내면의 일부분을 들여다 보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야오와 저자와의 대화 중 나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누구든지 만난다면 제일 첫 번째로 하고 싶은 질문인데, 바로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한 질문이다. 여기서 야오는 저자에게 글을 쓰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고 저자는 그에 대한 답변을 한다.

(p.130) "나의 경우, 물론 독서가 무척 중요하기는 하지만 학술서적이나 문예창작 수업에 집착하는 이들은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이란 종이 위에 풀어놓은 인생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을 찾아나서야 해요."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펴내는 책들이 나오게 되는 배경에 대해 어느정도 공감이 가는 답변이었다. 야오와의 외출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와 로비에서 힐랄을 마주친 저자는 힐랄이 '갑자기 일어난 무슨 일 때문에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자신과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고 알레프를 경험한 것에 대한 서로의 느낌을 주고 받으며, 저자는 여행이 계속되는 동안 힐랄에게 알레프에 대해 이해 시키려 노력한다.

(p.179)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절대로 잃지 않아요. 그들은 우리와 함께 합니다. 그들은 우리 생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다만 우리는 다른 방에 머물고 있을 뿐이죠. 나는 옆 객차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곳에는 분명히 나와 당신과, 우리 모두와 같은 시간에 여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것, 다른 객차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들은 거기에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러 개의 객차로 이루어진 기차와도 같은 것입니다. 칸에 탔다가 때로는 저 칸에 타고, 꿈을 꾸거나 기이한 경험에 휩쓸리면 이 칸에서 저 칸으로 가로지르기도 하는 것이죠"

객차 안에서 죽음과 생에 대한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이다. 내가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부분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코란의 시편을 전해 들으며 깨우쳤던 것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이기도 하다. 생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잠시 머물다 또다른 생(방)으로 가는 것이라니, 문득 천상병 시인이 '귀천'에서  "아름다운 이 세상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라고 한 구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생과 생을 서로 다른 방으로 표현한 저 문장은 곱씹을 수록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시베리아의 시카고'로 불리는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만난 '타티아나'라는 여자와의 만남에서는 잘못된 기도에 대한 설명과 기도의 효용성(?)에 대한 가르침과 더불어 기도에 대해 왜곡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는 깨우침을 주기도 한다.

어느 날 알레프 속의 두려운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저자는 힐랄을 품에 안고 평화롭게 누워 전생으로 가는 고전적인 방법인 '불(빛)의 고리' 수련을 통하여 전생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곳에서 어느 한통의 편지를 보게 되며 그 편지의 내용으로 인해 그제서야 힐랄과 저자의 전생에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어렴풋이 감을 잡게 된다. 이러한 식으로 글쓴이 '파울로 코엘료'는 이야기의 진행이 뒤로 갈수록 조금씩 단서를 던져주며 전생의 사건에 대하여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다시 말하자면 여행의 여정이 목적지에 가까이 갈수록 수수께기가 풀리는 것이다.

전생의 꿈속에서 깨어난 저자는 이른 아침 호텔 근처의 정교회 성당을 힐랄과 함께 찾아간다. 그리고 그는 그 안에서 힐랄에게 용서를 구한다. 영혼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용서를 구한다. 이때 힐랄이 저자에게 말하는 용서의 시(詩)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에게 던지는 작가의 메세지와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p.234)
사람들이 내게 흘리게 했던 눈물을 용서합니다.
아픔과 실망을 용서합니다.
배신과 거짓말을 용서합니다.
중상과 임모를 용서합니다.
증오와 박해를 용서합니다.
내게 상처 입힌 폭력을 용서합니다.
짓밟힌 꿈들을 용서합니다. ...(중략)

이러한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용서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힐랄이 자신을 용서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하기 위해 다시 알레프를 찾는다. 이전보다 전생 속에 깊이 들어간 저자는 그 옛날 전생에서 그녀가 어려움에 처했을때 그녀와 다른 이들의 바램과 달리 외면하고 그녀를 배신했음을 보게 된다.
이 부분에서 저자의 현재의 발목을 잡고있는 전생의 이야기를 수많은 소재 중에 굳이 종교재판(마녀사냥)에 대하여 다루었나를 생각해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설의 군데군데에서 신에 대한 이야기, 생과 사에 대한 이야기,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데, 전생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 모든 것을 버무려 깨우침을 전하기 위해서인 듯 하다.

여정은 흐르고 흘러 바이칼 호수에 당도하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힐랄과 함께 산책을 하다가 눈앞에 흐르는 강을 보고는 화가인 아내가 그린 '황금빛 장미'의 그림을 떠올리게 되고 그 자리에서 아내를 사랑함을, 그리고 힐랄을 사랑함을 말하게 된다.
바이칼 호수에서 저자는 야오와 함께 샤먼을 찾아가 영적인 체험을 하기도 하는데, 이 부분에서 샤먼의 유래와 변천사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며 초기종교와 그것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시사한다. 그 옛날의 종교가 지도자와 샤먼에 대한 존경과 두려움을 이용해 사람들을 지배했다는 관점의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샤먼을 통한 영적인 체험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저자는 그 곳에서 힐랄도 역시 샤먼을 통한 체험으로 저자가 용서 받고자 했던 전생을 보고 온 것을 알게 된다. 때문에 저자는 전생의 일에 대해 힐랄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다시 한번 용서를 받는다. 저자가 이토록 힐랄의 용서를 구하는 것은 그 용서가 본인과 힐랄의 상처를 치유하고, 구원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것임을, 자신이 이 여행을 떠나온 막연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뒤 힐랄은 '쇼팽을 사랑하듯 당신을 사랑한다' 고 말하고 저자는 '흐르는 강물처럼 당신을 사랑한다' 고 말하며 영적인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결국 이 둘은 전생 혹은 과거와 미래라는 공간 속에 얽매여 있던 자신들을 구원하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여행의 마지막을 앞두고 저자는 야오와 함께 기차의 전체를 둘러본다. 그 기차 전체가 한 도시, 한 나라, 하나의 우주 안이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할릴의 품속에서 빛의 고리 수련을 통하여 전생을 경험하며 기차여행을 끝마친다.

이 소설 속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저자가 시베리아 횡단 여행을 통하여 현재의 자신을 찾아 자신의 세계의 왕이 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담고 있지만, 그 과정 속에서 쉰 아홉살의 저자와 스물한살의 젊은 여성과의 영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기혼자의 불륜과 같은 저속한 사랑의 이야기는 아니며, 그렇다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도 아닌듯 하다. 단지 전생에 이루지 못한 영적인 사랑과 조우하며 용서를 구하고 자신의 현재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특히 이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 내면의 모습, 부끄러운 과거, 감추고 싶은 잘못을 당당히 마주해야지만 이룰 수 있음을 명심할 것을 말해준다.

파울로 코엘료의 글은 문화와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독자 스스로 돌아보게 하여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듯하다. 소설 '알레프'는 나에게 수많은 가름침과 깨우침을 주었다. 이 책 속에서 얻은 그 모든 것을 소화하는 것이 버겁게 느껴질 정도이다.

위에서 적은 것들 외에 몇몇 가름침을 떠올려 보자면,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 의지와 용기의 차이, 고독한 삶의 부작용, 기억으로 부터 자유로워 지는 방법, 언어의 문제점등 정말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시해 준다. 더구나 소설 '알레프'는 이전에 나온 파울로 코엘료의 책들의 핵심정리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여러 소설에서 다루었던 깨우침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느낌도 있었다.

덕분에 나는 이 책을 읽음으로 인하여 파울로 코엘료 자신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서 몸으로 체득한 깨우침을 일부분이나마 글로서 편하게 깨닫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소설 '알레프' 는 분명 소설이지만, 요즘 시대에 넘쳐나는 어중간한 자기계발서 보다도 자신을 돌보는데 크게 일조해 주었다. 때문에 영적인 충만함을 느끼지 못하면 세상사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라 생각하며 많은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p.285) "우리는 언제나 적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어야 하고, 죽음의 눈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죽음이 우리의 길을 밝혀 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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