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빛나는 삶의 비밀
스에모리 지에코 지음, 최현영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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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빛나는 삶의 비밀.........

'언어' 라는 것이 어떻게 빛나는 삶의 비밀이 되는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언어 자체가 빛나는 삶의 비밀을 품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어내는 것 자체가 저자와 우리 삶의 빛나는 비밀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간결하면서 따뜻해서,

덤덤하지 못할 상황을 덤덤하게 풀어내서,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는다.

우리 삶의 비밀이란 게 이런 것이지.

위로해주러 가서 위로받고 오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받는 선물같은 것.


 

뭘 가르치려 드는 책에 반감을 갖게 된 건 유명한 스님이 쓴 책을 본 후였다.

한창 전업주부로 육아에 치일 때,

엄마니까, 그게 엄마니까 참고 견디면 된다는 스님의 어줍잖은 충고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났었다.

애를 낳고 키워보지도 않은 사람이 누구를 가르쳐?!!?!?


위로에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험하지 못한 일을 넘겨짚어 교과서같이 틀에 박힌 말을 던질 바에야 입을 닫는 쪽이 낫다.

말없이 손 한 번 잡아주는 쪽이 낫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스님이 쓴 책이 자꾸 생각났다.

몸으로 경험하지 않고 머리로만 생각한 공허한 충고...........

는 찾을 수 없다.

이른 나이에 남편을 돌연사로 잃고 두 아이를 키운 사람.

난치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가 사고로 하반신을 쓰지 못하게 된 상황.

50이 넘어 재혼한 남편마저 병으로 앓아누운 지금.

'너무 불쌍해, 어쩜 좋아' 라는 생각을 자꾸만 하는 내가 부끄럽도록,

덤덤하게 자신의 삶을 말한다.


'시작합시다' 라는 말을 마음 깊이 새긴 적이 있습니다. (58쪽)

로 시작한 글은 아들이 재활전문 병원에서 간호사와 첫 대면한 날의 기억을 썼는데,

그 날 있었던 일을 쭈욱 서술만 하지

마지막까지 감상이나 교훈, 깨달음, 충고 따위는 내비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할테니 무언가를 얻을테면 얻고 아니어도 읽어줘서 고맙다는 자세랄까.

한 글자 한 글자가 그녀의 삶이다.

독백처럼 쏟아내는 말은 충고가 아닌데 내 삶으로 들어온다.

내게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힘.

징징대지 않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배웠던 너무 소중한 책, 언어 빛나는 삶의 비밀.

읽으면서 이미 한 사람에게 선물했다.

추천하고픈 책이 아니라 선물하고픈 책.


< Tip >

천주교 신자인 저자가 종교색채가 강한 출판사를 통해 출간한 책이라 그런지.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

성경을 인용한 부분도 많으니 참고해서 읽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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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나침반 에프 그래픽 컬렉션
스테판 멜시오르 지음, 클레망 우브르리 그림, 조고은 옮김, 필립 풀먼 원작 / F(에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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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노블.

말하자면 그림으로 그린 소설.

만화책이긴 한데 일반적인 만화책보다 글이 많은 것이 특징.

소설로 쓰인 작품을 만화로 재구성하려면

'내가?', '윽!!!!', '뭐?', '켁' 처럼 짧은 단어로 상황을 전달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일게다.

그래서겠지.

그림과 서사를 한 번에 전달하려니 글자가 너무 작다.


매번 작은 글자에 눈물 쏟으며 괴로워하면서 왜 그래픽 노블에 손을 대는 것일까. ㅠㅠ

이번에도 침침한 눈 비벼가며 읽는다.


매번 침침한 눈 비벼가며 에프의 그래픽 노블을 읽는 건 재미있어서다. ㅎㅎㅎ

황금 나침반같은 경우는 이미 소설로 인정받은 작품을 재구성했으니

재미와 읽는 속도가 동시에 보장되는 작품.

판타지와 미스터리가 오묘하게 뒤섞여 가독성 최고.


황금 나침반(책에서 '진실 측정기'라고 부르는 그것으로 여겨짐)과 그것을 지닌 리라를 둘러싼 이야기.

리라의 삼촌을 죽이려 했던 리라의 보호자가 황금 나침반을 건네주며 잘 지키라고 하는데,

삼촌을 죽이려 했던 자가 왜 그것을 건네줬는지 모르겠고,

리라가 목숨을 걸고 아빠를 찾아와 황금 나침반을 건넸더니 너도 그것도 필요없다 하고,

오히려 리라의 엄마는 황금 나침반을 빼앗으려 한다.

리라는 세상을 바꿀 특별한 아이지만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몰라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모험이 시작된다.


1편, 2편으로 나뉘어 있지 않는 걸 보면

각각 다른 제목으로 책이 출간될 것 같다.

황금 나침반은 특별한 운명의 아이 리라가 곰 전사와 마녀, 집시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엄마, 아빠의 존재를 알게 되

납치된 아이들을 구한 후 다른 세상으로 이동하는 것에서 끝이 난다.

당연히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미칠 지경. ㅡㅡ;;

그래픽 노블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책을 찾아서 읽게 생겼다.     

 

 

출판사 '에프'의 그래픽 노블은 두툼한 양장의 고급진 외관을 자랑한다. (사진 좌측)

소장욕구를 자극하는 책.

주인공 리라(사진 우측)는 요렇게 생겼는데 내가 좋아하는 그림은 아니다. ^^;;

그러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수상한 작품이라니 예술성은 갖춘 그림인 듯. (나는 그림을 몰라서.......)

그림이 있어도 글자에만 집중하는 나는, 좋아하는 그림 스타일이 아니어도 문제없이 읽었다. ㅎㅎㅎ


알고보니 판타지 소설 엄청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는 나.

그랬던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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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디야! 평범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7
브래드 멜처 지음, 크리스토퍼 엘리오풀로스 그림, 마술연필 옮김 / 보물창고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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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입니다.

위인전입니다.

좋습니다, 나는 간디야.


솔직담백한 제목, 나는 간디야.

간디 이야기를 간디가 풀어나갑니다.

그림으로 그려진 간디가 참으로 유아틱하지만 그의 삶이 그닥 유아틱하지 않아

초등 저학년에게 추천하긴 조금 애매합니다.


그림에 나와 있는 저 할아버지 간디가 본인의 어린 시절도 전부 서술해요.

남이 서술하는 위인의 성장기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회상기같아서 저는 좋았습니다.

어차피 위인전이란 게 범접할 수 없는 사람들(저는 그리 느껴졌어요. ㅡㅡ;;)로 역경을 딛고

상상도 못할 훌륭한 일을 해내는 존재인데,

본인 스스로 '나는 이런 사람이었어' 라고 말해주니 좀 더 인간적으로 가까운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림책으로 짧고 간략하게 정리한 간디 일생이라 초등 저학년에게 추천하기 쉽겠지만

인도의 식민지 역사를 알아야 간디의 훌륭함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초등 고학년에게 추천.

인도의 면직물 산업을 망친 영국에 저항하기 위해 물레를 돌린다는 거나

왜 소금밭까지 걸어서 행진을 했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가 만만치 않으니까요.


책은 얇지만 독후활동할 게 많을 듯.

제국주의, 식민지, 영국과 인도의 관계, 일본과 우리의 관계,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과 비교...........

혼자 생각하며 신이 났습니다. ㅎㅎㅎㅎㅎㅎ

중학생 아들놈에게 던져주고 붙임딱지로 메모해서 붙여보라고 할 계획.


그림책이라 만만하게 보지 마시라,

얘기할 내용 한가득인데 그림도 귀엽고 빨리 읽히는 장점까지 갖춘, 나는 간디야.


중간에 번역체 문장이 살짝 아쉬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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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읽는 순간 - 2022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도서 푸른도서관 83
진희 지음 / 푸른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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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버스 소설같다.

중학교 3학년 여학생 '주영서'라는 아이를 두고 주변 사람들이 풀어놓는 이야기.


주영서는 어쩌다(?) 고모네 집에서 며칠 지내게 된다.

동갑내기 사촌의 방에서 기거하다 반지하 단칸방 이모네로 옮기지만

이모네 부부가 지방으로 내려갈 때 따라나서지 않는다.

홀로 지내기 위해 편의점 알바를 알아보고

도서관을 들락거리다 사서 선생님과 친해지지만

마음을 터놓고 지낼 친구 한 명을 제대로 사귀지 못한다.


이야기는 주인공 주영서가 아니라 주영서가 마주친 이들에 의해 진행된다.

자신의 방 절반을 내어준 사촌의 입장에서

괜한 오기로 고모네서 영서를 데리고 나온 이모의 입장에서

영서가 노리는(?) 일자리 편의점 알바생의 입장에서

도서관 사서 선생님 입장에서

주영서인지 조영서인지 헷갈렸던 잠깐의 친구 김소란의 입장에서.


그들은 모두 주영서가 아닌 자신의 입장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안도하거나 염려만 하거나 회피하며

본인의 삶을 살아간다.

마음 한구석에 부채의식이 남아있음은 확실한데 어디에서도 구질구질한 변명은 찾을 수 없다.

걱정스럽지만 내가 떠안지 않은 안도감은 돈봉투에서 드러나고

모른척 할 수 없어 어쩌지 못했던 마음은 돈 10만 원과 굴비 두 마리와 딸 아이의 전화로 사라지며

내게 위로가 되어주었던 그 아이의 과거는 '몰라' 한 마디로 지워버릴 수 있는 사람들.


우리는 그 속에서 주영서가 얼마나 힘들고 외롭고 고통스러웠는지 알 수 없다.

주변인들의 서술로 그저 미뤄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프다.

홀로 살아가는 16세 소녀의 맘을 내 맘에 비춰 짐작하니 그 고통은 내 고통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주변인의 서술을 읽고 있으니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어 함부로 비난할 수도 없다.

​작가가 쳐놓은 덧에 갇혀버린 기분.

이것이야말로 제대로 너를 읽는 순간이구나.


문장은 또 왜 이리 이쁜가.

미사여구없이 할 말만 하는데 직설적이지 않고 따듯하다.


나는 함께 웃지 못했다. 오늘 제일 좋았던 일, 행복했던 작은 순간이 영서에게 없을까 봐 조바심이 났다. 영서의 세계에서 오늘이 빈 페이지로 남을까 봐 걱정됐다. 아니, 우리 집에 온 날부터 하얀 여백으로만 남겨져 있을까 봐 두려웠다.  (31쪽)


귀찮아도 함부로 지워 버리지 않는 것, 눈에 보이지 않아도 금세 잊어버리지 않는 것, 잊지 않게 자꾸만 생각하는 것, 중요한 건 그런 일들이 아닐까, 하고 진교는 생각했다.  (87쪽)



 

너를 읽는 순간의 "너"는 우리 모두였다.

주영서를 이해하는 순간이면서 등장인물 각각을 읽는 순간,

소설 속 인물을 통해 나를 읽는 순간.

작가는 부정적인 결말이 아니라고 하지만 도저히 긍정적으로 읽을 수 없는 결말 앞에

내가 미안하고 부끄러워지는 것은 소설을 통해 나를 읽었기 때문이리라.

간만에 감성 충만 소설이었던, 너를 읽는 순간.

나와 코드가 비스무레한 사람에겐 강력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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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렬지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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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례('작렬'의 중국식 발음)라는 동네는 말 그대로 촌구석이다.

동네 사람이 이웃이자 친척이고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곳.

그곳에 황당한 일로 감옥에 다녀온 쿵씨 아버지가 네 아들과 살고 있다.

출옥한 후 그는 아들 넷을 앉혀놓고 지금부터 밖으로 나가 가장 먼저 마주친 그것을 갖고 돌아오라 명한다.

그것이 너희의 인생을 좌우할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덧붙이며.


쿵씨 아버지는 아들 넷을 내보낸 것도 모자라

친히 동네 사람들 꿈을 찾아다니며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걸어가 처음 마주치는 그것을 찾으라 하시니,

이분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신의 계시처럼 운명의 무언가를 만난 아들과 동네 사람들.

큰 아들은 선생님, 둘째는 정치가, 셋째는 군인, 넷째는 선량한 학생이 되며

자례는 "작렬(炸裂)"이라는 뜻 그대로 폭발해서 터지기 위해 꿈틀대기 시작한다.

쿵씨의 둘째 아들은 작은 동네 자례를 리 -> 읍,면 -> 군 -> 시 -> 광역시 (편의상 우리 행정구역으로 바꿨음)로 성장시키기 위해 온갖 불법도 마다하지 않고 불철주야 노력한다. 

달리는 기차에서 석탄을 훔쳐 파는 것을 시작으로

선거에 이기기 위해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선물을 뿌리는 것은 물론

정략결혼도 불사하고, 가정도 내팽개친다.

자례를 비롯해 그를 둘러싼 세상은 그가 내미는 돈, 여자, 술, 선물을 당연히 받고

그에게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역으로 제공하기도 하는데

653쪽에 달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이 그러하다보니

어느 순간 그것은 부도덕한 일이라기보다 당연한 절차라고 여겨진다.


독자인 나도 이러한데 자례 사람들은 어떠하겠는가.

형의 권력으로 요직에 앉은 막내가 자동차 없이 걸어서 출퇴근하는 모습은 온 동네의 구경거리가 될 지경이고

청탁을 위한 선물을 거부하자 정신병원 진료까지 받게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진다.

온갖 부정과 부패를 바탕으로 쑥쑥 자라는 자례.

한 인간의 야망은 지역의 역사를 바꾸고

다른 인간의 야망에 의해 무너진다.


중국 소설답게(?) 황당.

눈빛 하나로 꽃이 피고 지는 신화적 요소에

엉성한 인과관계는 전래동화같고

그래서 얕잡아보려면 가슴 철렁한 풍자가 등장하니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저자의 이야기를 보면 현실은 소설보다 더 황당하다고 하니

너무 극단적인 에피소드 아니냐는 판단은 보류하시길.


내가 좋아하는 B급 정서 풍자 소설.

"아큐정전"이 한 인간을 통해 중국을 들여다볼 수 있는 수작이었다면

"작렬지" 는 한 동네를 통해 중국을 들여다볼 수 있는 수작이라 하겠다.

단, 유치찬란, 황당무계를 기본으로 하니 진중함을 기대하면 절대 안 됨.

(사람들이 뱉은 침에 파묻혀 목숨을 잃는 설정이 가능하냐 말이다. ^^;;)


성실하고 열심히 맡은 바 책임을 다할 땐 인정받지 못하던 셋째 아들이

돈으로 명예를 얻은 후 세상을 돈 중심으로 보게 되는 과정이 가장 씁쓸했던, 작렬지.

오버랩되는 장면이 너무 많아 나중엔 생각하길 멈추고 글만 읽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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