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를 읽는 순간 - 2022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도서 ㅣ 푸른도서관 83
진희 지음 / 푸른책들 / 2020년 4월
평점 :
옴니버스 소설같다.
중학교 3학년 여학생 '주영서'라는 아이를 두고 주변 사람들이 풀어놓는 이야기.
주영서는 어쩌다(?) 고모네 집에서 며칠 지내게 된다.
동갑내기 사촌의 방에서 기거하다 반지하 단칸방 이모네로 옮기지만
이모네 부부가 지방으로 내려갈 때 따라나서지 않는다.
홀로 지내기 위해 편의점 알바를 알아보고
도서관을 들락거리다 사서 선생님과 친해지지만
마음을 터놓고 지낼 친구 한 명을 제대로 사귀지 못한다.
이야기는 주인공 주영서가 아니라 주영서가 마주친 이들에 의해 진행된다.
자신의 방 절반을 내어준 사촌의 입장에서
괜한 오기로 고모네서 영서를 데리고 나온 이모의 입장에서
영서가 노리는(?) 일자리 편의점 알바생의 입장에서
도서관 사서 선생님 입장에서
주영서인지 조영서인지 헷갈렸던 잠깐의 친구 김소란의 입장에서.
그들은 모두 주영서가 아닌 자신의 입장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안도하거나 염려만 하거나 회피하며
본인의 삶을 살아간다.
마음 한구석에 부채의식이 남아있음은 확실한데 어디에서도 구질구질한 변명은 찾을 수 없다.
걱정스럽지만 내가 떠안지 않은 안도감은 돈봉투에서 드러나고
모른척 할 수 없어 어쩌지 못했던 마음은 돈 10만 원과 굴비 두 마리와 딸 아이의 전화로 사라지며
내게 위로가 되어주었던 그 아이의 과거는 '몰라' 한 마디로 지워버릴 수 있는 사람들.
우리는 그 속에서 주영서가 얼마나 힘들고 외롭고 고통스러웠는지 알 수 없다.
주변인들의 서술로 그저 미뤄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프다.
홀로 살아가는 16세 소녀의 맘을 내 맘에 비춰 짐작하니 그 고통은 내 고통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주변인의 서술을 읽고 있으니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어 함부로 비난할 수도 없다.
작가가 쳐놓은 덧에 갇혀버린 기분.
이것이야말로 제대로 너를 읽는 순간이구나.
문장은 또 왜 이리 이쁜가.
미사여구없이 할 말만 하는데 직설적이지 않고 따듯하다.
나는 함께 웃지 못했다. 오늘 제일 좋았던 일, 행복했던 작은 순간이 영서에게 없을까 봐 조바심이 났다. 영서의 세계에서 오늘이 빈 페이지로 남을까 봐 걱정됐다. 아니, 우리 집에 온 날부터 하얀 여백으로만 남겨져 있을까 봐 두려웠다. (31쪽)
귀찮아도 함부로 지워 버리지 않는 것, 눈에 보이지 않아도 금세 잊어버리지 않는 것, 잊지 않게 자꾸만 생각하는 것, 중요한 건 그런 일들이 아닐까, 하고 진교는 생각했다. (87쪽)
너를 읽는 순간의 "너"는 우리 모두였다.
주영서를 이해하는 순간이면서 등장인물 각각을 읽는 순간,
소설 속 인물을 통해 나를 읽는 순간.
작가는 부정적인 결말이 아니라고 하지만 도저히 긍정적으로 읽을 수 없는 결말 앞에
내가 미안하고 부끄러워지는 것은 소설을 통해 나를 읽었기 때문이리라.
간만에 감성 충만 소설이었던, 너를 읽는 순간.
나와 코드가 비스무레한 사람에겐 강력추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