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를 봤다 - 작가정신 소설향 8 작가정신 소설향 23
성석제 지음 / 작가정신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거지, 뭐.
 

                                    나를 아는 사람은 제목만 보고도 ‘저 인간은 맨날 저래’ 하며 혀를 끌끌 찰 게다. 그래, 또 그 타령이다. ‘다 그런 거지’ 타령이 또 나오기 시작한다. 사는 게 뻔하지 뭐, 유별난 게 있겠어? 그걸 뻔히 알면서도 퇴근 시간만 되면 하품처럼 내뱉는 말이 있다. 아으, 뭐 재미있는 일 좀 없을까? 죽이는 일 없어? 사는 게 즐거운 때에는 이런 하품소리도 잘 안 나온다. 꼭 지겹고 모든 게 똑같을 때, 나아지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을 때 엑스터시는 못 되도 멘솔 담배 같은 기분전환이 필요하기는 하겠다. 그래도 돌고 도는 게 인생인 것을. 네 이야긴지 내 이야긴지 아리까리한 얘기들을 이리저리 짜 맞추어 놓은 소설에서도 그런다. 염소를 잡는다, 아기족을 판다, 발모제를 판다, 모양만 틀리지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이 말이야. 그래도 대박 맞아서 인생 역전 한 번 해 보는 걸 소설에서나마 보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만, 그래서 확률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한 방이면 된다고 본보기로 삼으려는지도 모르겠다만 그래도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겠어? 배고프면 뭐 넣어줘야지, 마려우면 까고 싸야지, 아프면 울어야지, 무서우면 도망쳐야지 돈 있고 배운 거 많다고 이런 거 안 하고 살 수 있어? 안 죽으려고 용을 써봐, 죽을 때 되면 다 죽지. 소싯적에 산에서 좀 쉬겠다고 딴에는 두꺼운 책 하나 끼고 들어간 콧구멍만한 절간의 스님이 그러더라. 어떤 놈이 짱돌을 집어 들고 니 대가리를 겨누고 치켜들면, 그냥 니 대가리를 들이밀어. 거기서 뒤질 팔자면 대가리 깨질 거고, 살 팔자면 살어. 이게 인연이여. 이놈과 저년이 만나는 것만 인연이 아니라, 저 세상 가고 안 가고 하는 것도 다 인연이여. 용 쓰면서 욕심 챙기려고 하지 말어. 재미나게 살어. 말하는 건 땡중인데 뭔가가 묵직하니 남더란 말이야. 지금까지 설 푼 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 원리에 저해되는 반동적인 사상이라고 몰아붙이는 인간이 다섯에 꼭 하나씩은 있더라. 그 놈은 죽을 때까지 뭐든 돈만 있으면 된다고 믿는 단순한 족속일 거다. 때로는 단순한 게 좋기는 하다만. 인연이나 윤회가 돌고 도는 것이긴 하지만, 산에 박혀서 이 인연의 사슬을 끊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세우지 못할 바에야 그냥 턱 인정하고 재미나게 살자니깐. 이거 인정하면 더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근데 왜 당신은 그 모양으로 사냐구? 인정만 한다고 다 되는 줄 알아? 자유롭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든데. 여하간 그렇단 얘기야. 그런데 소설 속 나그네는 호랑이를 보고 왜 울었대? 아마 이런 게 아니었을까? 딴에는 인간이 대단한 존재인지 알았겠지. 가슴에 맺힌 사랑을 찾아 죽기를 각오하고 헤매다녔겠지. 배고픈 것도 참고, 밤에 산길도 겁 없이 들어섰겠지. 죽기를 작정했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겠어? 그런데 산에서 호랑이를 본 거지. 걸음아 날 좀 살려라 나뭇가지가 얼굴을 때리든, 돌에 걸려 데굴데굴데굴데굴데굴덱데굴 구르든 일단 내빼고 보는 거지. 그러다 산을 내려와 어느 노인네를 만났어. 아 글쎄 그 노인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좌르륵 쏟아지더란 말이야. 눈물 속에 자존심이고 기운이고 정신이고 다 섞여 나왔을 것이야. 이게 뭔가 싶지, 죽기를 작정했는데 도망치다니 한심해지지 않겠어? 그런데 자살하려고 지하철 플랫폼에 서 있는 사람을 갑자기 뒤에서 놀래키면서 등을 탁하고 치면 움찔할까? 그 사람 기분이 되게 상할까? 놀래킨 사람한테 막 화를 낼까? 궁금하다. 성석제의 글은 참 능청스럽다. 좌중을 재미있게 이끌어가려면 적당한 거짓말도 좀 보태고 해야 하는데 나는 참 순진하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뜻도 모르면서 읽기만 해도 재미를 느낄 문체다. 진지한 내용을 진지하게 쓰는 건 쉽다. 그런데 진지한 내용을 재미있게 쓰는 건 어렵다. 내용도 제대로 모르면서 재미있게 쓰려고만 하면 방정맞기만 하다. 아, 실컷 방정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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