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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충실할 수 있었나
사랑의 정열은 상대방이 사랑을 받아 마땅한 사람인지 묻지 않고,
또 어떤 핑계나 도피도 용납하지 않는다.
일단 시작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끝을 맺으라고 명령한다.
이것은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라고 요구하는,
거역할 수 없는 존재의 명령, ‘세상과 오성의 법칙보다 강한 명령’이다.
헝가리 작가, 우리에겐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20세기 유럽 문단의 귀중한 발견이라고 칭송되는 산도르 마라이의 작품이다. 이에 앞서 『열정』이 출간되어 있다. 『유언』은 『열정』에 앞서 쓰여진 작품으로, 인간 본성에 관한 깊은 통찰과 성찰을 바탕으로 하여 심도 깊은 고민을 제시하고 있다. 『열정』에 비해 『유언』은 끝까지 읽는데 다소 인내심이 필요하다.
난 이제껏 누군가를 좇아다녀본 적이 없다. 누가 좋다고 치근덕거려본 적도 없다. 그러나 최근에 딱 한 번 있다. 아마도 내게 삶을 즐기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아무리 여유를 가질 수 있다고 해도, 이루어지지 않은 관계에 대해서까지 즐거운 기분이 들리는 만무하다.
처음이야 삶의 여유이고, 또한 내 감정을 이제는 솔직히 드러내보자고 결심한 저의가 있었지만 두번째까지야 여유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것은 바로 직업상 이 책 [유언]을 몇 번이고 되읽으면서 새로운 고민을 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앞서 제사글로도 쓴 바로 '세상과 오성의 법칙보다 강한 명령' 때문이다. 이것은 이성과는 아주 대별되는 그 무엇이 아닐까. 열정, 감정 등등의 이리저리 재서 행동하는 그 무엇과는 확연히 다른 무엇이 아닐까.
그랬다. 나는 여전히 남아 있는 내 감정의 찌꺼기를 말끔히 소진해버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내 생활이 더 이상 이러 저리 휘둘리는 걸 원치 않았는지 모른다. 결국은 ‘일단 시작했으면 끝을 보아야만 한다’는 명제에 충실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남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나는 내 감정에 충실했고, 또한 진실했으므로 나는 내 할 일을 다한 것이나 다름없다.
‘내 감정에 충실한 것이 가장 진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