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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사회와 그 적들 - 김소진 첫번째 소설집
김소진 지음 / 솔출판사 / 1999년 5월
평점 :
절판
"기거이 바로 사람이야"
처음으로 읽은 김소진의 소설집이다. 낯선 우리말을 많이 써서 텍스트로 삼은 적이 있다던 어느 국문학도의 짧은 기억을 선입견으로 하고 펼쳤다. 역시나 낯선 말들이 쉼없이 튀어나왔고, 때문에 눈에 가시가 박히는 듯 거북스러운 면이 있었다. 몇 개의 문장을 읽고 나서야 각각의 문장들의 정확한 뜻은 모르고 대충 흐름을 알게 될 정도이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이런 말들을 일부러 찾아내어 쓸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그 낯선 말들은 대부분 동작이나 꼴을 묘사하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다른 말로 대체가 가능할 것도 같지만 그렇게 해놓으면 천편일률이 될 터. 비슷한 뜻을 지녔지만 상황에 따라 약간씩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말의 묘미를 살리고, 그에 맞는 표현을 찾아주기 위해서는 일부러라도 낯선 말을 뒤질 필요가 있겠다. 발그레하다, 빨갛다, 붉다, 새빨갛다, 벌겋다 등등처럼 말이다.
대개 ‘나’를 화자로 하는 경우 ‘나’가 보는 외부에 대한 서술과 ‘나’가 생각하는 내부에 대한 서술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3인칭 시점에서도 있겠지만 특히나 1인칭 시점에서는 내부의 관념에 대한 서술이 많은 듯하다. 소설에서 말이다. 딱히 어떠해야 한다는 형식이 없는 게 소설이지만 이야깃거리 없이 주절주절 제 생각만 남의 입을 빌어 늘어놓는다면 무슨 재미일까. 차라리 수필로 엮는 편이 더 정직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점에서 보자면 이 한 권에서 실린 소설들은 관념적이거나 설명조가 아니어서 좋다. 작가의 다른 소설들에서는 어떤 형식일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닥 재미있다고는 말 못하겠다.
“웬 쥐였나고? 글쎄 모르지. 그러다 보니 맹랑 헷것이 눈에 끼었는지두.” 김윤식 선생의 해설을 얻어다가 이해하자면 〈쥐잡기〉에 나온 아버지의 이 말이 당시 작가의 고민의 실마리가 아니었을까.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오히려 적은 최하층민들이 되고야 마는 딜레마가 열린 사회의 불편함이 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적들을 위한 것이 더 이상 이데올로기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 그리하여 또 다른 권력을 만드는 이데올로기야말로 남이냐 북이냐의 갈림길에 선 아버지에게는 헷것에 다름이 아니었을 것이다. 인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이데올로기가 실상 모든 인간을 위할 수는 없다는 뼈아픈 결론. 과학조차도 해명하기 힘든. 그래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뇌까림. “기거이 바로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