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 지음 / 푸른역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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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가를 살피는 까닭은...
 

우리 나라 명문가들의 고택을 찾아다니며 고택이 자리한 풍수와 그 가문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종갓집을 두고 풍수와 가문의 내력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곧 어떻게 명문가가 되었는지 살펴보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인위적인 범주와 운명적인 범주를 같이 다룬다는 것이 사뭇 불편해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히려 지루하지 않게 적절히 섞여 흥미롭게 읽힌다. 저자의 처음 의도는 아마 풍수에 더 초점을 맞추지 않았나 싶다. 물론 편집자의 후일담을 듣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비율을 어림잡아 봐도 풍수에 대한 분량이 더 많다. 또한 마지막 강릉 선교장 편에서는 가문의 내력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한다. 선교장의 아름다움만 극찬하고 있다.

풍수에 대해서는 아무리 읽어도 그러려니 하고 말밖에 다른 수가 없다. 그러니 명문가 이야기를 할 때 꼭 골치가 아픈, 명문가의 기준이 뭔가 하는 문제를 다시 짚어보자. 다시 짚는다고 한 것은 이전에 예전에 정신문화연구원에서 ‘조선시대 명가의 고문서’라는 전시회를 다녀와서 생각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명가의 기준을 몇 가지 꼽아봤었다. 역사성, 경제력, 도덕적 의무였다. 이는 이 책에서 보는 명문가의 기준과도 겹친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라고도 볼 수 있는 도덕적 의무는 가풍, 혹은 가훈과도 밀접하다. 이는 식구들의 정신에 영향을 주어 가문의 전통과 역사를 이어갈 수 있게 한다. 가문의 전통과 내력을 오랜 동안 지켜온 결과물이 바로 명문가의 종택으로 볼 수 있겠다. 지배층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종택을 지켜오기 위해서는 주변에 덕망이 쌓여 있어야 했을 것이다. 어지러운 때 피지배층이 가장 먼저 타도하는 곳은 인심 사나운 지주의 집이었을 것이다. 덕망은 곧 도덕적 의무감이다. 그러므로 종택의 유무가 중요한 기준이 되는 셈이다.

이 책을 통해 몇 가지 더 덧붙인다. 인물과 풍수이다. 위의 세 가지는 꾸준히 지켜 쌓인 바탕이 되어야 하고, 꾸준히 지켜가야 할 것들이다. 그러나 명문가로 알려지기 위해서는 人, 地, 時가 맞아야 한다. 먼저 뛰어난 인물이 나타나 물이 고여 충만한 상태를 밖으로 터뜨려야 한다. 그 인물의 명망은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가문의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인물도 지리, 즉 풍수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는 때를 잘 타고 나야 한다. 이창호가 조선에 태어났다면 바둑천재로 출세할 수 있었을까.

오늘날 갈수록 대가족의 개념이 희미해지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명문가는 나오기 힘들지도 모른다. 남아 있는 명문가도 지키기 힘들겠다. 핵가족화에다 ‘무자녀 혁명’이라는 말까지 나오니 가문이라는 의미를 꺼내는 게 시대에 뒤떨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무의 뿌리가 깊어야 가지가 흐드러질 수 있고, 샘의 근원이 깊어야 마르지 않는다. 제 집이 굳건하고 걱정이 없다면 어찌 밖에 나와서 잔 세파에 흔들리겠는가. 명문가의 기준을 따지는 것은 알려진 명문가들의 시비를 가리는 일도 있겠지만, 스스로 명문가라고 할 만한 가족을 꾸리는 기준으로 삼을 만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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