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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황진이
김탁환 지음, 백범영 그림 / 푸른역사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述而不作
절세의 미모로 선비와 승려까지도 무릎 꿇게 했던 황진이. 연리지連理枝로만 그려졌던 황진이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여준다. 회한을 품고 끊임없이 성찰하며 자유를 찾은 화담학파의 대모, 서경덕의 제자로 그렸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전의 황진이 모습은 역사적 오류이자 편견이 된다. 저자의 분석과 추론은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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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저자가 쓴 소설은 주석판만 있었다 한다. 그러나 주석이 달린 소설은 가독성이 효율적이지 못하다 하여 출판사에서 주석을 없애버린 대중판을 기획했던 것이다. 저자가 구상한 소설의 형식을 완전하게 담은 것은 주석판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달아놓은 주석은 소설의 부차적 요소가 아니라 소설의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주석은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어떠한 사건에 대한 정황을 부연 설명하는 역할이 있다. 또 하나는 황진이가 인용한 수많은 고려가요, 향가, 시조에 대한 출전이다. 실은 저자가 쓴 한시이지만 황진이가 인용한 것처럼 본문을 썼다. 그리고 주석을 달고 누구의 시조를 ‘염두에 둔 듯하다’라고 하여 황진이의 생각을 추론한 것처럼 해놓았다. 처음에는 상당히 헷갈렸지만 나중에는 주석 또한 이 소설의 중요한 장치라는 걸 알고는 무릎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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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중심의 서술을 거부하고 있다. 단순한 사건의 서술이 아니라 황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글로 쓴 형식이다. 때문에 소설을 이끌어가는 화자는 황진이 바로 자신이다. 당시 16세기의 글쓰기를 드러내 보이는 듯한 의도이다. 자연히 읽기가 불편한 면이 있다. 또한 이야기 전개에 의한 흥미가 다소 적다. “소설의 원형질인 이야기는 단순히 흥미를 유발하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삶과 세계의 원리를 담론화하는 데까지 이어져 있다.” 해설에 있는 이 문구를 보니 혼란스러워진다. 그러면 이야기 자체가 흥미 없어도 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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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역사이자 시이고 소설인 작품을 쓰고 싶었습니다.” 또한 “본문보다 많은 각주가 붙은 책의 출간을 고집한 것은 역사소설도 이제는 야사 위주의 짜깁기로부터 탈피하여 철저한 고증과 문체 미학을 추구하여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새겨두어야 할 말이다. ‘술이부작述而不作’ 저술할 뿐 지어내지 않는다. 역사를 다룬 소설에서 늘 염두에 두어야 할 명제이다. 저자는 참고한 문헌들을 자랑스레 몇 장에 걸쳐 열거하고 있다. 그 방대한 자료 조사의 범위에 그 앞에 엎디지 않을 수 없다. 본보기로 삼을 만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