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제페, 사로잡힌 남자 이야기
이시이 신지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우출판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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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의 가슴은 차가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신은 차가운 가슴을 덥히기 위해 밖에서 뜨거운 것을 열심히 찾아다니는 게 아닐까요.”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하나에 몰두하는 성질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 꼼지락거린다.

사로잡힌다는 말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어린왕자의 친구인 여우가 말하는 ‘길들여짐’이나, 한용운이 노래하는 ‘복종’과 비슷한 말인 듯싶다. 무언가에 사로잡힌다는 말은 내가 온전히 그것과 같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같다. 이는 곧 무언가에 길들여지고 결국 복종하게 되는 일. 내가 진정으로 바라서 하게 되는 복종이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도 많고 신경써야 할 일도 많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에 사로잡혀 지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염려해야 하는 이들이 보기에는 바보나 하는 짓거리임에 틀림없겠지만, 나는 차라리 그런 바보가 되고 싶다. 하지만 바보가 되기엔 나는 너무 걱정이 많다.

사로잡힌 남자의 이야기라고 했을 때 마지막에는 결국 한 사람에게 사로잡힐 것이라고 예견은 했다. 또한 실용서로 각인된 일본서에 대한 불신 때문에 혹시나 하는 염려는 했다. 하지만 꽤나 ‘쿨’했다. 여러 일본서에서 그들의 편집증적인 특성을 발견하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로잡힌다는 것도 편집증에 가깝지만, 이 책은 약간 거리가 있다. 작가는 아랫단계의 편집증에서 한 단계 뛰어넘어 사로잡힘의 행복을 보여주고 있다. 고개를 외로 약간 틀고 보면 급박하고 기능을 따지는 이 시대에 대한 냉소, 혹은 충고로 보이기도 한다.

아, 나도 무언가에 사로잡히고 싶다. 설사 차가운 가슴을 덥히기 위해 끝없이 뜨거운 것을 찾아 헤맬지라도 지치지 말고. 결국 아주 뜨거운 것에 사로잡혀서 이 가슴 타버릴지라도. 바보가 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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