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가가믿지 > 김수영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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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전집 1 - 시 ㅣ 김수영 전집 1
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 민음사 / 2018년 2월
평점 :
어느덧 여름이 다가왔다. 세상은 온통 푸르른 녹음으로 가득하고 짙은 풀내음들이 코를 찌른다. 이러한 아름다움들을 시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냥 바라보며 느끼는 아름다움보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보다, 더 깊고 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시 속에 빠져들어 마치 거울을 처음 보듯 나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는 나를 발견한다 또 그 시의 내용이 즐겁건 슬프건 간에 감동하게 되고 나 나름대로의 해석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얼마 전 김수영 전집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보는 순간 무엇을 말하는지 느낌이 확 오는 시들도 있었지만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시들도 있었다.
김수영의 '풀'. 느낌이 오는, 마음에 왠지 모르게 와 닿는 시였다. 이미 예전에 많이 들어 알고 있던 시이긴 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더 감탄하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풀은 일반적으로 민중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바람은 민중에 대한 억압으로 해석된다. 나는 이 비유에 놀랐다. 실제로 그렇다. 바람은 풀을 쉽게 쓰러뜨리지만 그 뿌리를 뽑지는 못한다. 결국 풀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것이다. 아마도 이 시는 그 시대의 민중들에게 희망의 시였을 것이다. 잠시 쓰러지고 고통받더라도 언젠가 우리는 다시 일어나 또 대항하겠다는 신념으로 살아간 사람들. 아마도 그들은 커다란 폭풍우가 몰아쳐도 곧 다시 일어 날, 풀보다 훨씬 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아마 여기서 풀은 일반적 민중이 아닌 자기 자신을 상징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생애에 대한 여러 글을 읽어보았지만 그의 생애는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 시가 그의 인생에 없었다면 더욱 더 그러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시와 하나가 되어 자신의 시련을 스스로 이겨낸 것이 아닐까?
또 그 시대의 '바람'이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민중들이 받는 억압과 고통.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민주화하려는 민중들의 노력에 대한 억압일 것이다. 나는 좀더 다른 생각을 해 보았다. 만약 민중들의 끝없는 노력이 바람에 해당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그 노력을 막으려는 거대한 억압은 큰 나무에 해당할 것이다. 작은 바람에는 끄떡도 없는 나무이지만 점점 더 그 노력의 바람이 커져 폭풍이 되면 나무는 뿌리 채 뽑혀버릴 것이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우리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나는 '푸른 하늘을'을 읽고도 나만의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것 역시 많이 들었던 시였고 짧았지만 너무나도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시였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자유'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유란 무엇인가? 우리는 국어사전 등을 통해 그것을 간단히 정의 내리곤 하지만 자유가 그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다고 김수영은 말했다. 아마도 어느 시인이 말한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아름답다'는 말은 국어 사전에 쓰여지듯 표현을 통한 자유를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이에 반대로 피의 냄새가 섞인 김수영의 자유. 그것은 진정한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피이고 그렇게 얻어낸 자유야말로 행동이 수반된 현실적 자유일 것이다.
'시골 선물'과 '거리'도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김수영과 마찬가지로 나도 도시에서 태어나 계속 도시에서 자랐다. 늘 살고 있어서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김수영에게 도시는 아마도 세속적인 욕망과 문명이 가득한, 번잡한 공간이었나 보다. 도회의 소음과 광증과 속도와 허위가 그를 슬프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사랑을 듣고, 사랑의 기운을 느꼈던 것 같다. 이러한 것에 나는 가장 큰 감명을 느꼈던 것 같다. 시 속에서 도시는 더 이상 이기심과 문명의 피로가 가득한 소외의 공간이 아니라 무한한 사랑의 가능성을 잉태한 '사랑의 위대한 도시'가 되어있는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고 그렇게 생각한다. 도시는 사랑이 없는 장소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조그만 사랑과 가능성이 너무도 많아 오히려 안 느껴진다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때 진짜 사랑이 가득한 우리 도시가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내가 가장 감동 받은 시는 위의 네 편이지만 다른 여러 시들을 읽으면서도 나는 계속 감탄했다. 마치 그 시대의 역사의 장면들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그는 참여시를 썼다. 참여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런 것 같다. 그 시대와 동떨어진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 않고 그 시대의 현실을 시에 반영하면서도, 그대로 나타내기보다는 작가와 독자가 직접 참여하여 새롭게 창조하는 시. 이것이 참여시이고 김수영의 시가 아닐까?
김수영. 그는 그 시대를 가장 잘 표현했던 인물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냥 단순히 나타낸 것이 아니라 자신과 민중들의 바램과 소망을 담아 현실보다 한층 더 높은 수준의 시를 썼던 것이다.
오랜만에 시를 읽고 나니 머리가 오히려 맑아진 느낌이 든다. 깊은 생각을 하고 많이 생각했으면서도 오히려 뿌듯함 같은 감정들이 생긴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오늘 하루 너무나도 높은 태양 아래 계속 찌는 듯한 더위가 이어지더니 살랑살랑 예쁘게도 바람이 분다. 나도 나의 감정과 소망을 담아 오늘의 이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한 편의 시를 써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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