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백운동 별서정원 - 동백 숲길 맑은 그늘 물 끝난 곳 구름 이네
정민 지음, 김춘호 사진 / 글항아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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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들고 여행을 간 건 오랜만이었다. 오래된 원림과 책이 잘 어울렸다. 옛 사람들이 이 풍경을 보고 지은 글들을 읽으며 몇 백 년의 시간을 넘어 연결되는 느낌을 가졌다. 강진이 생각날 때마다 더불어 읽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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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그래픽스
레기나 히메네스 지음, 주하선 옮김 / 단추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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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단순하고 충분히 아름답다. 지구와 우주의 아름다움! 과학과 미술이 이렇게 멋지게 어울릴 수 있다니... 마음 담아 선물하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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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신비한 동물사전 - 우리가 모르고 싶었던 동물 이야기
긴수염.평화 지음 / 카카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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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처분 뉴스를 보면서 동물들에겐 안됐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안 신비한 동물사전>에서 살처분이 대량학살이며,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 공장식 축산의 한 요소임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관행적으로 반복되는 일임을 알았다. 몰랐던 게 정말 많구나. 읽고 또 읽을 책이다. 나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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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초상 건물의 초상
김은희 지음 / 단추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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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괴안동이라는 동네를 알지 못했다. 역곡역은 알고 있었다. 오래 전에 친하게 지냈던 후배 한 명이 소사역 근처에 살았다. 가끔 그 후배를 만나러 가는 길, 소사역의 전 역이 역곡역이었다. 역곡역에 멈췄던 차가 출발할 때면 조금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서너 번 취재를 가거나 다른 사람과 만나는 일로 역곡역에 내렸던 적도 있다. 그래도 그 정도 기억. 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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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안동은 역곡역을 가운데 두고 1호선 소사역과 온수역 사이의 중간 지점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동네다. 동네의 북쪽 경계는 1호선/경인선 선로를 따라 그어졌다. 그 선로와 꼭 나란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나란히 경인로가 지난다. 괴안동은 그 경인로 아래로 한참 더 펼쳐지지만, <건물의 초상>이 그리는 괴안동은 그 경인로에 면해 있거나 그 뒤편의 이면도로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로 제한된다. 책에 등장하는 여러 개의 주소를 카카오맵에서 검색해 로드뷰로 찾아보고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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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초상>은 보통 책들 구성과 달리 옆으로 긴 것을 위로 넘기며 보게 만들었다. 일반적인 책꼴을 90도로 돌려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쉽다. 사진으로 찰칵 찍듯 잡아낸 도시 모습, 건물의 초상을 표현하기 위해 그런 방식을 택했을 것이다. 책의 실질적인 첫 페이지에는 책 중에 가장 작은 그림이 실려 있다. 얼마나 작은가 하고 손을 대보았더니 딱 손바닥만 하다. 손바닥 크기야 다 다르겠지만, 대략 어른 손바닥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손을 들여다보자. 거기서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그림엔 아무런 소리도 담겨 있지 않은데 드르륵이나 후우-’ 정도 소리를 상상해도 좋다. 누군가의 뒷모습이고, 이제 막 가게의 셔터를 올리고 있는 중이다. 셔터는 그의 머리치를 넘어서 거진 다 올라갔고 가게 안에 뭔가가 많이 쌓여 있다. 무슨 파이프 같은 것들

뒷모습은 과장되게 그려졌다. 다리가 짧고, 몸통은 비대하고, 셔터를 들어 올리는 양팔과 양손이 가장 크게 그려졌다. 그림에서 제시된 비례로 받는 인상은 무슨 고릴라 같은 느낌이다. 상반신에 걸친 옷만 빼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검게 칠해져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림이 있는 페이지의 아래쪽 페이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매일 사람들은 자신의 우주를 들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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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사람들은 자신의 우주를 들어올린다. 16부작 드라마가 결정적 짤방 몇 개로 승부를 보듯 <건물의 초상>은 이 결정적 문장으로 승부를 다 보았다. <건물의 초상>의 모든 말과 그림은 계속 이 말로 돌아오리라

그 우주는 어떤 우주인가. “밥을 먹고 / 장을 보고 / 사람을 만나고 / 직장에 나가고 / 물건을 만들고 / 청소를 하고 / 요리를 하는 그런 우주. “철가루가 날리는 작업장에서 / 담금질을 하며 / 온갖 약품 속에서 도색을 하며 / 수백번 허리를 굽혔다가 펼치며 / 반복을 통해 앞으로 조금 나아가는 그런 우주. “반듯하지 않고 / 조금은 구부러지고 찌그러진 곳들에서 / 하루를 밀어올리며 들쳐올리며 / 다들 살고 있는 그런 우주. 그리고 자르고 접고 구부려서 쓸모를 만드는 그런 우주. 일상과 노동이 나란한 우주

일상과 노동이 나란하지 않은 세상은 얼마나 가짜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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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초상>은 일상과 노동이 나란한 괴안동의 한 풍경을 보여준다. 그래도 그림이 일상이나 노동을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그리고 있지는 않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찌개도 없고 신문지 깔고 먹는 짜장면도 없고 파이프나 공병 박스를 나르는 장면도 기계 선반에서 뭔가를 자르거나 만드는 장면도 없다. 사람들도 아주 가끔 등장할 뿐이다

그래도 컴컴한 저녁, ‘출장중입니다안내 종이가 내붙은 부일이엔씨의 환한 실내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면서, 검고 짙게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는 환한 실내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면서, 출장을 간 그이의 일상과 노동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일상과 노동이 부사의 세상(물끄러미)과 동사의 세상(들여다보다) 사이에 진을 쳤다. 환한 대낮을 묘사한 그림도, 맥도날드 앞의 배달 오토바이 그림도, 태경스틸산업 앞에 세워진 차의 열린 차 문 그림도, 모두 그러하다. 책 속의 모든 그림이 맹렬히 그 일상과 노동의 우주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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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괴안동이 아니어도 괜찮았을까. 괴안동은 경인산업벨트의 한 단면이었고, 그러니 그 산업벨트의 다른 곳을 보거나 혹은 또 아예 그 산업벨트가 아닌 다른 동네여도 좋았을지 모른다. 솜씨 좋은 작가니까 다른 곳을 그려도 잘 그렸겠지

그런데 그런 생각을 뭐 하러 해. 솜씨는 작가의 일부일 뿐인 걸. <건물의 초상>은 솜씨로 만든 책이 아니다. 작가는 괴안동의 가게와 공장, 현장들을 보고 다니며 거기서 자르고 접고 구부려서 쓸모를 만드는 시간들을 목격했다. 드르륵 셔터를 올리며 매일 자신의 우주를 들어올리는 그런 시간도. 목격이 거듭되며 작가도 그 풍경의 공모자가 되었다. 그리고 괴안동은 장소이자 시간에 붙여진 이름이 되었다. 여러 개의 진짜 주소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시간에 붙여진 주소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진짜 주소라는 말도, 하아, 의미가 없다.

누군가 담장 앞에 백일홍을 심었던 시간이 자르고 접고 구부려서 쓸모를 만드는 시간들과 함께 남았다. 그 시간들에 주소가 남았지만, 그리로는 편지를 보낼 수 없네

그렇지만, 마음은 알고 있다. 기억되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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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 생존과 저항에 관한 긴급 보고서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 열화당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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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의 부제는 '생존과 저항에 관한 긴급 보고서'이다. 출판사의 한 줄 정리를 따르면 이런 책. 오늘날 세계를 점령한 탐욕과 독재에 관하여, 이로 인한 고통에 관하여 써내려 간 열여섯 편의 글을 묶은 에세이집. 그중 특히 장벽 앞에서의 인내에 관한 열 가지 보고서가 좋았었는데, 오랜만에 그것을 다시 읽었다.


안드레이 플라타노프는 러시아 내전 당시 발생했던 빈곤과, 그후 1930년대 초에 있었던 소비에트 농업 부문의 강제 집단화에 의한 빈곤에 대해 썼다. 이 시기 러시아에 있었던 빈곤의 양상은, 희망이 완전히 파괴된 비참함 그 자체라는 점에서 지난 시기의 빈곤과 구별된다. 지쳐서 스러졌고, 다시 일어나 비틀거리며 걸었다. 배반당한 약속과 박살난 말들의, 지천으로 널린 파편 사이를 헤쳐 나아갔다. 플라타노프는 '두셰브니 베드냑dushevny bednyak'이라는 말을 자주 썼는데, 직역하면 '가난한 영혼'이란 뜻이다. 모든 것을 다 빼앗긴 사람들을 이르는 말로, 그들 속에는 공허함만이 가득했고, 영혼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여기서의 영혼이란, 이를테면 무언가를 느끼고 무언가에 고통받는 능력을 이른다. 그의 글은 그런 비통함을 더 심화시키지 않았고 무언가 구원을 이루어냈다. "우리의 이 추악한 상황으로부터 세계의 심장이 자라날 것"이라고 그는 1920년대초에 쓰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는 또 다른 형태의 현대적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다. 통계숫자를 인용할 필요가 없다. 이미 많이 알려졌고, 그 숫자를 되풀이하는 것은 통계학적 장벽을 하나 더 만들어낼 뿐이다.

세계 인구의 반 이상이 하루 2달러 이하의 돈으로 살아가고 있다. 개개의 고유문화들은 삶의 괴로움에 대응하는 그들 자신의 치유법-육체적 치유법과 정신적 치유법을 통틀어-을 포함하여, 체계적이고도 철저하게 파괴되고 공격당하고 있다. 새로운 통신기술과 수단, 자유시장경제, 과잉 생산, 의회민주주의는 적어도 가난한 사람들에 관한 한, 그 말들에 담긴 약속을 지키는 데 실패하고 있다. 단 하나 약속을 이행한 것이 있다면 싼값의 상품을 생산한 것이지만, 이런 상품 역시 가난한 사람들은 도둑질을 하지 않고는 구매할 수가 없다. 플라타노프는 내가 만난 어떤 작가보다 현대의 이 빈곤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처음 책을 읽을 때, 영혼이란 무언가를 느끼고 무언가에 고통받는 능력, 이라는 문장에서 한참 머물러 있었다. 지금 우리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은 바로 저 능력으로서의 영혼인 게 아닐까. 능력 혹은 자격으로서의, 그런 영혼. 그렇지만 플라타노프와 그를 인용/경유해 존 버거는 어쨌든 이 추악한 상황에서 세계의 심장이 자라날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 세기의 현자들은 구원을 믿었다. 세기가 바뀌어도 믿음은 여전해야 할까. 입만 혁명가들이 수천 수만인 세상에도 그런 구원이 찾아올까. 구원에 대한 믿음을 버리진 않았지만, 비통이 더해졌다는 걸 안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7년 전에 비해 나는 그저 더 비통해할 뿐이다. 하아, 옛 책을 다시 읽으며 슬픔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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