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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질리스크 코우가인법첩 1
야마다 후타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아주 오랜만에 만화책을 봤다.
사무라이, 닌자, 그런 류의 컨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평소에 대략 코믹 말랑말랑한 만화를 즐기는 나지만, 가끔 이런 심하게 터프하고 잔혹하고 비장하기까지 한 만화를 보고 나면 극장에서 걸작 영화를 보고 나온 것처럼 찌리릿한 느낌이 드는 것이 즐겁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계자를 정하는 일에 마치 장기말처럼 동원되는 닌자들. 수백년 간 숙적이었던 두 닌자 가문의 부전약정이 후계자 선정이라는 일종의 게임에 단지 '결과'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인해 풀리게 되는데, 그로 인해 두 가문의 역사가 급격히 뒤바뀌고,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모두 함께 몰락해 간다. 스토리는 특정 인물에게 집중된다기보다는 한 명 한 명 죽어 나가는 과정에 맞춰져 있다. 마치 레벨별로 풀어나가는 게임 같은 느낌이 짙다. 역사적 사실에 살짝 걸쳐 있기는 하지만, 그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시대극이라는 설정은 단지 인물들의 캐릭터가 지니는 정형성에 정당성을 부여할 뿐이다. 닌자들의 인법이라는 것이 마치 초능력 같고(다시 말하면 이성적인 사람이 보기에는 짜증날 정도로 비현실적일 수 있다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기괴하기 때문에 누구나의 입맛에 맞을 수는 없겠지만, 일본 만화를 어느 정도 접해 봤고, 하드고어적인 묘사에 책을 덮어버리는 사람만 아니라면 추천해줄만하다. '베르세르크'의 끝간 데 없는 절망보다는 훨씬 소프트하고, 5권으로 끝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다. 짧기 때문에 인물들의 개성이 좀 약한 느낌이 들고, 스토리도 남은 인물이 적어질수록 좀 허전해지는 것 같지만, 주말 오후 간식 타임용으로 딱 좋은 길이다. 중간중간 깜짝 놀랐던 부분들이 있는데, 그게 잔인한 묘사 때문이 아니라 기 막힌 타이밍의 장면 전환 때문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원작을 만화화한 거라고 하니, 관련된 다른 시리즈도 있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