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 -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미시마 유키오.기무라 오사무 외 지음, 김항 옮김 / 새물결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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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도 길지도 않은 2시간 30분가량의 시간. 1 대 800의 절대 불균형한 토론에선 무슨 말들이 오갔을까.

전후 일본의 경제부흥 과도기인 1969년 5월 13일 도쿄대학 교양학부 900번 강의실. 당대 전성기를 누리던 문학가이자 투철한 극우파인 미시마 유키오와 좌파의 대명사 동경대(원제를 살리는 의미에서 일어발음을 배제했다)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위원회)' 패널 7명이 강단에 섰다. 미시마는 혼자였고 상대는 800명을 등에 업은 7명이었다. 일본 역사의 한 획을 긋는 논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토론은 당시 휴교령이 내려진 동경대 전공투 학생들이 미시마를 초청해 이뤄졌다. 단신으로 동경대 교양학부 강당에 들어선 미시마는 의미를 담뿍 함축하면서도 균형을 잡으려는 듯 입을 연다. "이렇게 나를 세우는 것이 반동적이라는 의견이 있었다고요?"

1 대 800의 끝장 토론, 차이만 확인한 채 마무리

토론은 시간이 흐를수록 불꽃 튀는 논쟁으로 번진다. 쏟아내는 언어의 지평이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자아와 육체, 자연 대 인간, 계급투쟁과 자연으로 돌아가는 투쟁, 게임 또는 유희의 시간과 공간, 천황과 프리섹스와 신인(神人) 분리사상, 사물과 말과 예술의 세계, 관념과 현실에서의 미(美) 그리고 천황·미시마·전공투하는 이름에 대해서 까지.

신격의 천황을 지키고 부활시키려는 미시마와 '욕구불만의 비참한 육체'를 가진 인격체로 전락한 '천왕'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전공투 사이에서 발견되는 간극은 극우와 극좌의 이념적 좌표가 사사분면 대척점에 위치해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논쟁은 그러나 '스스로 적을 논리적인 형태로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적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토론한다'라는 기본 명제에 충실하면서 전공투의 문제제기와 미시마의 대응과 반격, 둘 사이의 겹쳐질 수 없는 평행선을 발견하면서 마무리로 치닫는다.

미시마는 전공투를 향해 끊임없이 천황의 개념과 권위를 인정하기를 요구했고 그것이 가능하다면 공투(공동투쟁)에 기꺼이 응하겠다며 분위기를 정리한다. 그러나 전공투는 천황의 개념은 이미 그를 회자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미시마에게 공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받아쳤다.

"지금 제안은 아주 묘한 꼬드김이라 매우 유혹적이지만, 나는 공투를 거부합니다"

논쟁에 숨은 약속...이듬해 비합법 투쟁 후 할복자살

논쟁은 끝났다. 그러나 논쟁의 정점에서 미시마가 뿜어냈던 한 호흡이 목에 생선가시처럼 걸린다.

"나는 한 사람의 민간인입니다. 내가 행동을 벌일 때는 결국 제군과 똑같이 비합법적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합법적으로 결투의 사상으로 사람을 죽이면 살인범이니까, 포돌이에게 잡혀가기 전에 자결이든 뭐든지 해서 죽어버릴 겁니다. 그런 때가 언제 올지 모르지만 그때를 대비해서 몸을 단련시키고, '근대 고릴라'로서 훌륭한 고릴라가 되고 싶습니다"

실제로 미시마는 이듬해 11월 육상 자위대 동부방면 총감부실을 점거, 헌법의 나약함을 외치며 동경대 강당에서 흘렸던 '자결'을 실행한다. 그것도 가장 고통스럽게 할복으로 풍미한 한때를 마감한다.

'인간'과 '역사'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미시마와 '인간'과 '역사'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전공투의 치열한 공방. 이 공방은 1969년에 끝나 1970년 미시마의 자결로 종지부를 찍나 했지만 30년 후인 1999년 미시마가 궐석인 채로 또다시 진행된다.

사실 이 책 읽기의 쏠쏠함은 30년 후에 모인 당시 전공투 주역들의 '복기(復碁)'에 있다. 당시를 회상하면서 평가와 반성, 그리고 논쟁에서 놓쳤던 부분을 현재라는 공간 속에서 '시뮬레이션'하는 모습은 현대 일본 지식인이 어떻게 탈근대화를 이뤘는지를 보여주는 표본 같다.

30년 후 모임은 비교적 비평에 가까운 논리로 펼쳐진다. 파리 5월 혁명, 민족적 시간과 혁명공간, 스탈린주의, 무정부주의, 국어의 성립, 일본과 유럽의 근대과학, 세계 경제 시스템과 일본, 과학기술과 존재론, 인구 문제 등 주제의 지평은 무한하리만큼 넓어졌고 분석은 평자의 연륜만큼 깊어졌다.

좌우의 이념적 대립이 사회 시스템 전 분야에 미친 영향을 곱씹는 자리에서 평자들은 청년시절의 순간적 불꽃이 아닌 용광로 같은 지식을 쏟아내고 있다.

다시 미시마로 돌아가 보자. 미시마는 동경대 방문을 대체로 유쾌한 경험이었다고 후기에 쓰고 있다. 미시마 역시 동경대 법대 졸업생인 만큼 낯설지는 않았지만 패널 토론을 하는 2시간 30분 동안은 편안하고 부드럽지만 않았다고 했다. 그것을 미시마는 몇 가지 짜증 나는 관념의 상호모색이라고 표현했다.(사실 책 내용이 관념어의 나열이 심하다.)

양해 불가능한 질문과 사막과 같은 관념어의 나열 속에서 미시마는 정신과 육체의 극심한 피로를 겪었고 시간 때문에 충분한 문제 전개를 못했다고 술회했다. 전공투와의 토론 결과에 대해서는 논리성은 인정하되 그들이 노리는 권력이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자기부정의 논리...변증법의 안티테제

이는 당시 동경대 전공투가 내세웠던 '자기부정의 논리'와 상통하고 있다. 자기부정이란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전공투의 행동강령이 대변하는 논리다. 동경대생들이 자기부정 논리를 투쟁주체로 삼은 것은 지성의 중심인 동경대를 지켜야 한다는 학교와 반학생운동 진영 분위기를 해체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적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소속집단(동경대)의 좌표와 자아(동경대생)의 윤리적 좌표가 공교롭게도 한 점에서 충돌함에 따라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기부정 논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종국에는 일본 학생운동의 한계를 스스로 지운 업보로 작용했지만.

미시마는 이런 자기부정 논리 속에 폭력혁명을 갈망하던 전공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이 책 저변을 흐르는 변증법적 안티테제인 것이다.

"평화주의의 미명 뒤에 언제나 단 하나의 옳은 전쟁, 즉 인민 전쟁을 긍정하는 논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위험스럽게 여겨왔다. 이것이 내가 평화주의에 대해 커다란 증오를 품어 온 이유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나의 폭력 긍정은 당연히 국가 긍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므로, 평화주의의 가면 뒤에 숨은 인민 전쟁의 긍정이 국가 초극을 목적으로 하는 양하는 기만에 대해서 싸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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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사랑이야기
알베르토 모라비아 지음, 이현경 옮김 / 열림원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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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탈리아의 문학 거장 알베르트 모라비아(1907~1990)의 <선사시대 사랑이야기>는 일단 시대 배경이 평범치 않은 우화집이다. 세상이 이기적인 인간들에 의해 피폐해지기 이전인 선사시대를 배경으로 동물들 사이에 이루어진, 혹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야기를 통해 신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좌충우돌 공존'을 그렸다.

우화를 읽기 전에 먼저 모라비아가 누군지 궁금하다. 모라비아는 이탈리아 출신 소설가로 문학사에서 그의 위치는 단단하다. 그는 22살 때 이탈리아 중산층의 부패와 무기력한 삶을 그린 <무관심한 사람들>로 문단에 나왔다. 이후 파시스트 정권하에서 <가장무도회> 등을 발표하지만 발매를 금지당하는 정치적 탄압을 받기도 했다.

그 때문일까. 이후 발표되는 <로마의 여인> <고독한 청년> <권태> 등은 도발적이고 악의적 비극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그의 글을 한번쯤 접한 독자라면 이번 우화집에서 드러난 '뜻밖의' 변화에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치열한 리얼리스트인 그가 한갓지게 우화라니.

<선사시대 사랑이야기>는 1982년에 발표됐다. 모라비아가 1990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으니 그의 나이 75세에 쓴 글이다. 말년 작품인 셈이다. 도발과 악의적 비극으로 천착했던 작품세계를 우화로 마무리한 것이다. 거장다운 발상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책은 거장의 마지막 내공을 펜 끝에 모아 날린 듯, 가벼운 우화 속에 묵직한 교훈의 무게가 느껴진다.

가볍게 읽혀지는 우화, 느껴지는 묵직한 교훈

모라비아는 가만히 앉아서 물고기를 한입에 잡아먹으려는 게으른 악어, 그릇된 신념을 고집하는 펭귄, 황새를 사랑한 올빼미, 자기가 어떤 동물인지 모르는 기린, 벼룩에게 당해 자멸하는 디노사우루스 등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등장시킨다.

어미 품속에서 온실의 화초처럼 자라서 홀로 먹이를 잡을 수 없는 게으른 악어에게 공생관계의 악어새는 멋진 이벤트를 준비한다. 악어의 커다란 입 속에서 물고기들의 무도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벤트는 계획대로 진행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실패한다.

악어의 입속으로 물고기를 불러 모으기는 성공했다. 하지만 악어가 끝내 군침을 억제하지 못해 침을 뚝뚝 흘리는 것을 눈치 빠른 철갑상어에게 들켜버린 것이다. 물고기들은 악어의 입을 모두 빠져나갔고 악어는 오랫동안 입을 벌리기 위해 괴어 둔 주먹만한 바윗돌을 애꿎게 씹었지만 자기 손해였다.

이후 악어가 무도회를 연다는 말에 누구도 속지 않았고 배고픈 악어는 나일강변 모래위에서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악어의 눈물이 된 것이다. 악어와 더 이상 공생할 수 없는 악어새는 떠났고 무도회에 참석했던 도요새가 지나면서 말했다. 욕심이 과했다고.

동물들의 이야기, 인간 군상의 세상을 대변하다

단번에 그간의 배고픔을 만회할 수 있는 '한방'을 노린 악어의 얼굴 너머로 로또의 대박을 기다리는 우리네 모습이 설핏 스친다. 우화는 이처럼 우리에게 동물들의 탈을 씌우고 우스꽝스러운 삶을 반성하는 교훈을 느끼게 한다.

일반적으로 우화는 인간과 친숙한 동물들을 등장시켜 이들의 몸을 빌려 이야기하고 그것을 인간에게 되돌려주는 구조로 돼 있다. 때문에 소재의 제약을 받지 않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

다만 인간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이 없거나 도덕적 기반이 없이 쓰일 경우에는 화자(話者)인 동물이 필자가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우회적으로 쉽게 쓸 수는 있지만 자신의 삶을 투영시키기에 역부족인 사람이 써서는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는 의미다.

우화는 작가의 오롯한 삶에서 나오는 우회 문학

과거 이솝이 들려주었던 인간의 도덕 재무장, 라퐁텐의 군주제 비판 등 우화는 여러 가지 교훈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모라비아가 이 책을 통해 들려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주제파악 하면서 사는 인간이 아름답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같은 기린 무리에 있으면서도 자기가 기린일 줄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자신이 너무 작다며 푸념하는 기린. 그 모습에서 아집으로 똘똘 뭉쳐 공동체와 융화하지 못하는 불쌍한 인간군상이 오버랩 되는 것을 모라비아도 경험했을 것이고 이제는 그것을 우리에게 묻고 있다. 혹시 당신도 그렇게 사냐고.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축선으로 따라오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창조주'다. 선사시대 사랑 이전부터 존재했고 현재와 미래까지도 무한히 영속하는 창조주의 손바닥에서 인간의 탄생과 소멸을 거듭한다. 우화도 마찬가지다.

모라비아는 생의 마감이 끝날 무렵 우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신에 대한 경외심을 이 책에 담았다. 서툴게 인간 세계를 비판하기보다 창조주의 산물인 인간을 사랑하는 게 우선이란 것을 다시금 깨우치게 하는 책이다. 모라비아의 이 작품은 1994년 '동화의 노벨상'인 안데르센 동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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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자격시험문제 - 우리 아이 마음을 알 수 있는
한효석 지음, 홍승우 그림 / 옹기장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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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일간 부모자격을 따기 위해 시험을 치렀다. 아침 조회 시간에 담임인 한효석 선생님으로부터 ‘부모자격 시험문제를 풀어야 하는 까닭’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시험에 돌입했다. 시험은 장장 6시간짜리. 이미 오래전 부모자격을 얻었는데 뒤늦게 무슨 시험이냐고 아내는 눈을 흘긴다. 아내는 그러면서 이내 시험 감독처럼 옆에 서서 1교시 생활탐구영역을 함께 풀어간다.


만약 부모자격에 대한 시험이 진짜로 존재한다면 합격률은 얼마나 될까. 발칙한 상상이다. 대부분이 과락을 면치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떨어질 것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정해진 시험문제의 답처럼 정답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험이 있다면 일정정도 자녀 기르는데 많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


1교시 시험문제를 훑어본다.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문제로 엮었다. 답이 알쏭달쏭한 5번 문제를 짚어본다. 독자 여러분도 한번 풀어 보시라.


‘이번에 다른 곳으로 멀리 다녀오면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돌아옵니다. 당신의 자녀는 중고생으로 사춘기와 입시 준비 등 아주 예민한 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①파견근무를 포기한다 ②가족을 다 데리고 간다 ③내가 먼저가고 얼마 뒤 가족을 부른다 ④친구나 친척에게 가족을 부탁한다 ⑤소식을 자주 전하거나 집에 자주 온다 ⑥상의하여 결정한다


당신이라면 몇 번을 정답으로 고르시겠는가. 한 성생님은 ⑥번을 정답이라고 했다. 가족들의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상의해서 결정하는 것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가장 현명한 의사결정이라는 해답 설명과 함께.


승진도 좋지만 헤어지지 않는 방법을 찾거나 헤어졌을 때의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가족간 상의를 통해 찾는다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답이란 표현은 적합지 않다. 가정마다 상황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니 모범답안 정도로 참고할 순 있겠다.


시험은 2교시부터 어려워진다. 대한민국 부모들의 절대화두인 자녀들의 학교와 교육 문제(3교시)를 다루기 때문이다. ‘당신은 아이를 왜 학교에 보냅니까’라는 첫 문제부터 답안 작성을 주춤거리게 만든다. 다행이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객관식 답이 있기 망정이지 주관식 문제였다면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고민의 근본 이유는 교육은 학교 이전에 가정이 먼저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교육자 페스탈로치(1746~1827)는 ‘가정은 도덕상의 학교’라고 정의하며 인성교육의 원천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가족집단에서 어머니와 자녀의 인격관계를 중요시하고 모든 교육의 기저라고 했다.


일평생 교육에 헌신한 그가 가정을 교육의 맨 꼭대기에 위치시킨 것은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면 자연히 시민으로서의 자질이 높아지고 국민으로서의 자각이 강화돼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정신까지 발전할 수 있다고 본데 따른 것이다. 다시 말해 학교에 왜 보내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주저하는 수험생 부모는 가정교육을 먼저 되돌아봄직하다. 


위기탐구영역을 다루는 4교시에서는 2차 성징의 외적표현인 이성문제, 학교폭력, 음주, 음란물 등에 대한 부모들의 시각을 조심스레 묻고 5교시 대화탐구영역 시험에서는 아이들 마음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평가한다. 이 영역에서는 권위적인 부모의 역할대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 입장으로 문제를 풀어야 합격률(?)이 높다.


마지막 시험으로 미래탐구영역에서는 무조건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부모세대의 고정관념을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자식의 직업으로 부모의 귀천을 보상 받으려는 보상심리를 접도록 도와주는데, 예를 들어 아이가 사회적 지식도 낮고 보수도 형편없는 직업을 선택하겠다고 할 때 부모들의 가치판단 기준을 묻는다. 자신의 가치 기준으로 남을, 특히 자식을 재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6교시 시험을 마치면 마치 아이에게 더 없이 좋은 부모, 아니 그 이상의 성인군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가 아이의 행동이 정답과 다른 방향으로 나오면 어느새 야수(?)로 돌변하는 우리네 부모들. 비난할 수도, 비난 받을 이유도 없다. 그것이 우리의 가정과 교육의 현실이니까. 다만 <부모자격시험문제>를 통해 끊임없이 복습하고 예습한다면 ‘야수의 성질’을 조금은 버리지 않을까? 저자 역시 성인군자형 부모보다는 대화하는 부모를 원했으리라.   


이 책의 또 하나의 쏠쏠한 재미는 시험이 끝날 때 마다 덤으로 주어지는 정보에 있다.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 환경캠프, 문화유적답사, 체험학습에 관한 정보며, 전국의 대안학교, 홈스쿨링, 계절학교 목록, 지역별 청소년 상담기관, 독서지도, 독서토론, 독서치료에 대한 유용한 사이트를 총망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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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 세상에 파고든 유혹의 기술
월리 올린스 지음, 박미영 옮김 / 세미콜론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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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 벨기에에서 콜라를 마신 아이들이 집단 복통과 구토로 100여 명이 입원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콜라는 전 세계적으로 브랜드 가치가 가장 높은 코카콜라. 사고는 안트베르펜 공장에서 병을 밀봉할 때 '불량' 이산화탄소를 사용하는 바람에 콜라가 오염돼서 벌어졌다. 벨기에 정부는 제품 리콜과 판매금지 조치를 단행했지만 국민들은 한동안 콜라 공포증에 시달려야 했다.


사고가 발생하자 코카콜라는 부랴부랴 자사 제품은 안전하다고 사태를 무마시키기에 급급했다. 회사 고위관계자는 벨기에 보건당국자를 만나 제품에 이상이 없다는 설득을 하던 차에 또 사고가 발생했다. 비슷한 사고가 이웃 프랑스까지 번지자 끝내 코카콜라는 엄청난 물량을 자진회수하고 백기를 들었다. 113년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사고 7년이 지난 지금, 코카콜라 브랜드는 건재하다. 이는 코카콜라가 그동안 공격적인 브랜드로 내성을 키웠기 때문이다. 위기관리와 기업 커뮤니케이션이 모자란 부분을 브랜드로 극복한 것이다. 브랜드 가치 하락을 브랜드로 극복하는 모순 속에서 브랜드 파워의 중요성이 새삼 느껴지는 대목이다.


코카콜라의 초기 대응 미숙은 브랜드에 서비스 개념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추세는 제조업 브랜드 속에 서비스가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일례로 제약업은 영업사원으로 하여금 병원이나 약국 일선에서 약의 올바른 효능효과는 물론 의약계 현실을 전달함으로써 의사와 약사는 제품 판단의 기준을 갖는다. 이런 측면에서 제약업은 제조업이지만 동시에 서비스업 측면을 갖는다.


그동안 브랜드는 소비재를 앞세워 성장한 이유로 서비스 개념 도입에 인색했다. 그러나 월리 올린스(Wally Olins)는 브랜드 속에 서비스를 담아 호흡하라고 지적한다. 그는 40년간 기업이미지통합 작업과 브랜드 관리의 노하우를 담은 이 책을 통해 이제는 제품 브랜드에서 서비스 브랜드 시대를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핵심 규칙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조직을 브랜드 위주로 재편, 조직원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깨닫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조직원과 브랜드가 한 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브랜드의 소중함과 고객 존중이라는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지켜져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국가 브랜드 정립의 중요성을 역설한 대목이다. 88서울올림픽을 통해 국가 브랜드를 세계시장에 내놓고 2002월드컵에서 브랜드 가치를 키운 우리나라의 경우 올해 열렸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브랜드 가치를 확인했다. 국가야말로 거대한 브랜드 정체성을 먹고 사는 생물체와 같다. 따라서 국가도 생존을 위해서는 유혹의 전선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가 행간 사이에 배어 있다.


저자는 국가 브랜딩 작업의 대표적인 주자로 프랑스를 손꼽는다. 다섯 공화정과 두 제정, 그리고 네 왕정을 거친 프랑스는 건축, 궁전, 국기, 권력형태, 법제, 교육 등 체제가 변화될 때마다 시스템을 새롭게 브랜딩함으로써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 이같은 프랑스의 국가 브랜딩 작업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저자는 "브랜드는 정체성"이라고 단언한다. 국가, 기업, 제품을 나타내는 브랜드야말로 그것의 모체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국가, 기업, 제품은 세계 시장에서 당연히 도태될 수밖에 없다. 세계화의 조류에서 도태된다는 것은 소멸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이런 측면에서 생존을 위한 현대 비즈니스의 성공은 기능적 기술, 재정적 기술, 판매 기술(저자는 이를 '유혹'이라고 표현한다) 세 요소로 결정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세 요소의 적절한 조화가 국가, 기업, 제품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브랜드가 침투하지 않는 분야가 없으며 정부도 하나의 브랜드로 관리에 따라 국가의 성패까지 좌우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저자는 브랜드가 나아갈 길에 대해 인상적인 한마디를 남긴다.


"다소 심기가 불편할지는 모르나 이젠 브랜드를 자선사업과 예술, 대학, 스포츠, 문화영역 안으로 들여보내야 한다.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브랜드를 효율적이고 영향력 있는 존재로 키우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책이 주는 정보는 저자가 관련 전문가로 몸담았던 40년이란 세월만큼 두텁고 방대하다. 그러나 엄청난 지식과 정보를 한정된 지면에 펼치다 보니 다소 우겨넣은 듯 한 느낌이다. 두텁지만 깊이를 재기가 어렵다. 브랜드의 정의를 늘였다 줄였다 쥐락펴락하는 저자의 전문성을 따라잡기 힘든 탓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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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빛깔있는책들 - 한국의 자연 257
김철수 지음 / 대원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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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거제도다. 거제도는 해안선 길이가 386.6㎞(700리)에 달한다. 가장 큰 섬인 제주도(250여㎞)보다 100여㎞이상 길다. 그만큼 해안선이 꼬불꼬불하다. 거제도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남도 거제시에 속한다. 본섬과 69개의 유무인 부속도서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 대마도와는 32해리(60㎞) 거리에 있다.


거제는 한자로 클 거(巨), 구제할 제(濟)로써 ‘크게 사람을 구하는 섬’이란 뜻이다. 또 바다 건너 많은 섬을 거느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1900년 이전에는 한산도를 포함한 통영 앞바다에 크고 작은 섬들이 거제도에 소속돼 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거제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놀랍게도 구석기시대로 추정된다. 이는 지역에서 출토된 당시 토기와 석기유물이 증명해준다. 또 청동기시대 대표적 유물인 고인돌(지석묘) 유적이 섬 전역에 분포돼 있어 이미 선사시대부터 거제도에는 원시조상들이 농경과 천렵을 하면서 살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선사 이후 기록물에 따르면 삼한시대 변한 12국 중 독로국(瀆盧國)의 일부로 추정되며 757년(신라 경덕왕16년)부터 거제군이라 하였다. 1914년 통영군에 폐합되었다가 1953년 거제군으로 환원되었으며, 1995년 거제시에 편입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같은 거제도의 역사는 물론 유물, 유적, 관광지, 문화와 섬사람들을 소개한 바다 색깔의 알싸한 책이 출간됐다. 현재 거제중앙고등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치고 있는 김철수 씨는 거제의 해안선 700리를 몇 바퀴쯤 돌았음직한 종합 기록물인 <거제도>를 선보이고 독자를 쪽빛 바다가 넘실거리는 곳으로 유혹한다.  


거제도의 이름이 국민의 뇌리에 각인돼 있는 것 중 하나는 한국전쟁 당시 세워졌던 포로수용소일 것이다. 전쟁 중 원래는 대전형무소 내에 설치됐던 포로수용소는 전황에 따라 대구, 부산 영도 등으로 이전된다.


그러나 14만 여명의 포로를 이동시키는 일이 쉽지 않음에 따라 제주도와 거제도가 새로운 장소로 거론됐으나 제주는 피난민과 공산주의자가 많고 식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제도가 최종 낙점됐다. 이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선택은 공산포로 폭동이라는 비극의 기록을 남긴다.


1970년대 들어서는 제3차 5개년 계획에 따른 중화학공업 육성책에 따라 옥포만에 옥포조선소가 들어선다. 그러나 오일쇼크와 사업변경 등 진통을 겪으면서 흐지부지 되다가 8년 뒤 대우가 새 주인이 되면서 옥포조선소가 활기를 띠면서 오늘에 이른다. 이후 삼성중공업 역시 거제조선소를 세움에 따라 명실상부한 조선(造船)전초기지가 된다.


그러나 개발에는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경작지와 야산이 집터로 변했고 식수 해결을 위해 댐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을이 수몰되는 등 실향민까지 양산했다. 대우조선이 들어서면서 사라진 아양골은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마을이고 거제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몽돌해변이 있었던 곳이라고 저자는 안타까워한다.


저자는 식물생태학 박사 출신으로 전문가 시각으로 동백림, 팔색조 도래지, 아열대 기후와 상록수림, 해양생물 등을 화보와 함께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또 섬 전체를 중부권을 포함해 4분할해서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과 문화를 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칠천도, 가조도, 이수도, 내도와 외도 등 부속 섬들을 드나들며 각각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뽑아내 ‘섬속의 섬’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거제도를 상징하는 노래도 있다. '거제의 노래'는 1956년 초대 거제교육감을 지낸 신용균 씨가 군민의 노래를 공모했는데 시조시인 무원(無園) 김기호 선생의 글이 당선돼 채택된 것이다. 노랫말은 충무공 기개와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지, 순박한 섬사람들의 인심을 잘 나타내고 있다.


거제의 노래


섬은 섬을 동아 연연 칠 백리

굽이굽이 스며 배인 충무공의 그 자취

반역의 무리에서 지켜온 강토

에야디야 우리 거제 영광의 고장


구천 삼거리 물 따라 골도 깊어

계룡산 기슭에 폭포도 장관인데

갈곶지 해금강은 고을의 절승

에야디야 우리 거제 금수의 고장


동백꽃 그늘 이지러진 바위 끝에

미역이랑 가시리랑 캐는 아이 꿈을랑

두둥실 갈매기의 등에다 싣고

에야디야 우리 거제 평화의 고장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왜구의 잦은 침입이 잦았고 이에 대비한 성곽이 유난히 많은 것이 특징인 거제가 서서히 관광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청마 유치진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고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해금강, 무엇보다 눈앞에 펼쳐진 한려수도가 유혹하는 섬 거제도. 저자에게 섬 가이드를 부탁하면 흔쾌히 받아 줄 것 같은 넉넉함이 전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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