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역사 - 페르세포네에서 뉴턴의 연대기까지
우베 토퍼 지음, 문은숙 옮김 / 생각하는백성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여기 조작된 역사가 있다. 물론 조작이라는 증거가 명백하다. 그러나 조작은 아이러니하게도 공식적인 역사로 인정받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유물을 조작해 팔아서 치부하려는 욕망 때문이 아니다. 뿌리 깊은 맹목적 이데올로기와 종교적 이유가 숨어 있다.

조작된 역사는 증거를 앞세워 복원하면 되지 않겠냐는 반문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지배자의 역사는 '잃어버린 고리'를 자기 것으로 채우고 자신들과 가치관이 다른 것은 부정하고 악으로 몰아세우게 마련이다. 따라서 조작된 역사를 되돌리는 것을 극도로 회피한다. 그래서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 하지 않았나.

기득권, 즉 역사를 조작한 무리들은 이러한 역사의 균열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혼돈이 두려워 과거의 조작 따위는 애써 무시한다. 그러는 사이에 역사 조작은 세대를 이어 교육되면서 역사관을 망쳐 놓는다.

조작된 역사는 비가역적이다

밀가루 반죽같이 멋대로 빚어진 그릇된 역사관으로 말미암아 세계사는 연대적 오차, 시각적 오독에 휘말리게 된다. 이는 곧 인간사의 왜곡이며 조작인 셈이다. 이를 되돌리기란 시간을 거스르는 타임머신이 없는 이상 어렵다. 저자도 대체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독일의 우베 토퍼는 30년간 모국은 물론 유럽의 역사 서술을 바꾸기 위해 조작된 역사를 파헤쳐 온 소위 재야 학자다. <조작된 역사>는 지난 1999년 펴낸 <만들어진 역사>의 연작인 셈이다. 우베는 비가역적일 것만 같았던 조작된 역사를 현장방문과 문헌을 통해 촘촘하게 세상에 드러냈다.

그렇다고 역사가 가역적으로 제자리를 찾지는 않는다. 우베의 한마디로 역사가 뒤바뀐다면 '세계사 연대기'는 매일 뜯어 고쳐도 모자랄 것이다. 다만 역사 조작이 우리의 상상을 초원할 정도로 버젓이 행해졌고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는데 목적을 다한다.

이 점에서 작자는 세상을 혼돈에 빠트리기보다는 엇박자라도 삐걱거리면서 돌아가는 역사가 그나마 낫다는 입장이다. 우베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조작된 유물들을 확실히 만천하에 드러내고 그와 관련된 문헌들이 믿지 못할 것임을 밝혀두자는 것이다.

'잃어버린 사슬' 선점에 따라 역사는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감시의 눈이 없으면 역사는 언제고 또다시 조작될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바로 '잃어버린 사슬' 때문이다. 누가 그럴 듯하게 이 사슬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사실 조작된 역사에 대한 비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1450년대에 역사 조작은 조직적으로 끊임없이, 그리고 더욱 거세게 행해졌으며 동시에 최초로 비판가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1650년대에 들어서서야 '역사 사기'에 대한 삭제 작업이 진지하게 이루어진다. 문제는 '반짝 관심'일 뿐 역사를 사기극에서 벗어나게 하기는 어려웠다. 역사바로세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온전치 못하다. 때론 사학자들의 실수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조직적 범죄도 많다. 차라리 책을 열지 말 것을. 머리가 지끈거리며 무거워 진다. 우베도 처음엔 같은 생각이었으리라. 조작이나 마나 그냥 스쳐갈 것을.

역자에 따르면 저자의 역사관 저변에는 우주빙하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학계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우주생성이론으로, 이로 인한 지구의 재난과 역사의 단절, 공백 때문에 역사 일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공백을 메우는 과정에서 인위적 사실, 즉 조작된 역사가 채워져서 잘못된 역사체계가 만들어 졌다는 것이 우베의 설명이다. 다분히 독특한 야사(野史)적 관점이다. 우주빙하설의 진위 이전에 저자가 조작의 근거로 내세우는 주장은 방대하다. 방대함이 때론 읽기 불편함을 주지만.

그나마 고고학에 관심이 있어서 역자 후기가 책 말미에 있는 것을 알았지 녹녹치 않은 책이다. 전문용어는 물론 지명, 인명 등 고유명사가 주는 딱딱함과 무료함, 그리고 방대한 참고문헌 인용이 유발하는 널뛰기 지식, 마지막으로 대중적이지 못한 소재에서 오는 난독증까지. 쉽게 손이 가는 책은 아니다. 추천 역시 마찬가지다.

조작된 '페르세포네' 조각상

▲ 페르세포네 조각상
ⓒ페르가몬박물관
독일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페르세포네 조각상. 박물관 도록 설명에 따르면 얼마 전 이탈리아 남부 타렌트란 지방에서 기원전 480~460년 사이에 만들어진 높이 1.5m짜리 대리석 조각상이 발견됐다.

조각상은 데메테르의 딸이자 하데스의 아내인 지하세계의 여신 코래, 즉 페르세포네의 실물 조각상으로 밝혀졌다. 우베는 이 작품이 이탈리아 출신 ‘도세나’라는 고대 미술품 위조가의 위작이라고 지적한다.

채석장 석공보다 돈 벌기 쉬운 조작으로 방향을 바꾼 도세나는 가톨릭교를 믿는 이탈리아 국민들이 좋아하는 마돈나상을 만들다가 점차 유물 위조에 손을 댄다. 도세나가 노린 것은 바로 '잃어버린 고리' 부분.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에 대담한 위조가 가능했다.

위작에서 파손된 부분은 대부분 위조자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려워 한 부분이다. 이 조각상에서는 양 손에 무엇이 들려져 있는지 분명치 않자 아예 파손된 모양으로 만들었다. 빈약한 가슴 역시 도세나의 위작 특징 중 하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