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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Moving' 내가 좋아하는 형용사이기도 하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좀더 고상하게 '심금을 울리는' 정도의 번역이 적당할 듯한 아름다운 형용사이다. 그동안 나름대로 많은 권수의 책을 읽었지만 선뜻 이 형용사를 바칠만한 작품은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그런 나에게, 이미 어른의 세계에 어느 정도 절어버린 사회 초년병인 20대의 나에게도 아직 감동으로 다가오는 작품이 있다. 바로 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이다.
초등학교 꼬맹이 시절, 두꺼운 장편은 절레절레 손을 흔들던 무렵이라 얇고 가벼운 이 책은 쉽게 눈에 들어왔다. 지금도 어찌하지 못하는 성급한 성격 탓에 무슨 책이든지 목차, 서론 다음에 바로 결론으로 넘어뛰어버리는 나이기에, 괴물 망가라치바 열차가 소중한 뽀르뚜가 아저씨를 천국으로 보내버리는 장면은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다. 잠시의 정신적 공백.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 당시의 독서 후기는 그저, 눈물뿐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내가 그때 무슨 정신으로 이 책을 끝까지 봤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십여 년이 흐른 지금, 대학 와서 비로소 독서에 욕심이 생겼고, 처음으로 도전한 것이 고전 다시읽기였다. 서점을 미친 듯이 뒤지다가 문득 발견한 것은 바스콘셀로스 아저씨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였고, 표지와 번역 등을 고려하여 한권을 바로 사버렸다. 그리고 또다시 남은 것은 눈물과 충혈된 눈. 일년 후 교보에서 느낌표 선정도서인 이 책을 발견하고 훑어내려간 뒤 남은 것은, 주변의 시선에 부끄럽고 멋쩍어 안보이게 살금살금 눈물을 훔치는 나였다.
참 이상하다. 왠지도 모르겠다. 내 유년시절은 사고 없이 무탈하게 지극히 평범했는데... 제제, 슈르르까, 밍기뉴, 뽀르뚜가, 고도이아... 이런 고유명사만 나오면 가슴설레는 이 기분은 대체 무얼까. 어렸을 때는 그렇게 맞고만 크는 망나니 제제가 불쌍했을 따름이었지만, 지금은 좀 다른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생각건대, 어른의 세계를 접하고 나서 밍기뉴와 루이스 왕이 있는 환상적 동심의 세계를 떠나버린 제제처럼, 철없던 시절의 때묻지 않는 순수함을 '빼앗기듯이' 벗어나버린 나의 마음이, 끝없는 추억과 과거로 회귀하고픈 한 마리 연어같은 존재... 이기 때문일지도...
ps. 괴벽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익숙해져버린 고유명사는 이미 하나의 번역된 활자이기보다는 그 작품 전체에 녹아 흐르는 이미지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별 다섯 개로도 모자라겠지만, 코팅 커버에 최초 완역본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는 역시 익숙한 때묻은 문고본보다는 못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