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의 열매
한강 지음 / 창비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기 부처>

내면에 있는 어떤 강한 열등감이 도리어 철저한 성격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런 것을 보상 심리라고 했던가?   

얼굴을 제외한 전신이 화상으로 인한 흉터에 덮힌 몸을 옷 속에 감추고서
누구보다도 철저하고 완벽하게 살아가는
훤칠하고 잘 생긴 프라임 타임 뉴스 앵커의 모습은,
아내의 눈에 비치는 수 많은 남편의 상징일 수 있겠다.

하지만 흉한 건 흉한 것인지라 싫은 감정이 생기는 건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
그것이 어찌 눈에 보이는 흉터 뿐이랴.
가까이서 보는 한 인간의 모순과 위선, 그리고 가식이
때로 그 아내에겐 얼마나 가증스럽게 느껴질까?

가장 가까운 사람의 이런 솔직한 반응이
당사자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되고, 
자신의 흉터로부터 되도록 멀리 상승하려고 몸부림 치는 그 성마른 성격은
아내로 하여금 여유를 잃게 만드는 악순환을 가져오게 만들고,
마침내 그 관계가 빚어내는 긴장을 견뎌내지 못한 채
아내의 과오로 파탄이 왔다고 단정짓고 그것에서 벗어나려 하는 남편의 비겁한 마음이 보인다.   
 
하지만 삶의 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거나, 억지스럽지 않다는 것을 소설은 여실히 드러내 보여준다. 
사람은 모두 다르지만, 한편으로 인간 존재는 모두 비슷 비슷한 한계 속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구원의 전망은, 불화를 삼천장 베끼시는 친정 어머니의 모습에 담겨 있는 듯하다.
"내 몸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득해지면 그게 바로 관세음보살"이라는 스님의 말을 되뇌는 데서,
그리고, 수 많은 것들이 "후회가 된다"고 긴 숨을 몰아쉬는 모습에서...

소설의 제목이 '아기 부처'인 것도,
그리고 아기 부처 꿈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도
결국은 삶과 관계에 대한 주인공의 인식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는 얘기가 되리라.

韓江이란 작가, 만만찮은 소설가임을 다시 느낀다.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차 팔았다 태련아.'
'.....차 팔았으니까, 이젠 우리 아무데도 안 가도 된다.' 

'날 보던 눈, 그 눈이 똑같이 그 새끼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날 보고 웃던 얼굴, 그 얼굴로 똑같이 그 새끼를 향해 웃고 있다고 생각하면..... 눈, 그 눈을 생각하면, 씨팔, 그 생각만 하면.....'

''.....태련아.'
'.....아빠랑 같이 죽어버릴까?'

절망의 모습이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독자는 너무 마음이 아프다.
오직 희망을 두고 살았던 사람이 배신해서 사라진 후 
다시 마주하는 현실과 삶의 저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고스란히 다가와 가슴을 저며온다. 

하지만 소설 속에선,
하나도 때 뭍지 않은 어린 딸의 눈으로 그 세상을 보고있다.
그래서 누추하지가 않다.
잔인하고 삭막해 돌이킬 수 없는 삶의 황폐함에 덮혀 감춰져있는
여리고 작은 아름다운 구석이
아이의 눈을 통해 언뜻 언뜻 아프게 드러난다. 

이 소설을 읽음으로 인해, 내 삶의 외로움이 잠시 가시는 듯하다.

난 앞으로 韓江, 이 사람의 소설을 죄다 찾아 읽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