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 온 건 1월 3,4일이었는데 어느새 또 시간이 이렇게나 지나 있다.  요즘은 왜 이렇게 생각하기가 싫은지, 다녀 온 여행기를 쓰는 것도 미루고 있다가 더 늦어지면 아예 못쓸 것같아  부랴부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주왕산을 가자고 말을 꺼낸 건 나였다. 작년 봄쯤인가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보고 난 후 우연히 인터넷에서 그곳이 주왕산의 '주산지'라는 곳임을 알았다. 인터넷 사진 속 그곳은 주위 풍경이 호수 속에 녹아든 모습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다음에 꼭 가보리라 마음 먹었었다.  작년 여름 방학 때 꼭 가리라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결국 가보지 못하고  12월 말 우리 지기모임에서(멤버 4명^-^) 올 초 짧게나마 여행을 가자는 말이 나와  운 좋게도 가보게 되었다. 하지만 미리 고백한다면 주왕산만 가고 주산지는 결국 가보지 못하고 다음을 또 기약하고 돌아왔다.ㅠㅠ

  이번 여행은 자주 만나는 대학친구들과 마음 먹고 떠나는 두번째 여행이다. (맞지? 또 있었나?) 생각하니 벌써 재작년인데 여름에 전라남도 강진-해남-보길도를 2박 3일로 여행했었다. 처음 다녀온 여행이었는데 너무도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일이 많아 아직도 생각하면 왠지 흐뭇하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 얼마나 따뜻하고 친절했는지 가끔씩 떠올리고, 텔레비전에서 우리가 간 곳이 나오면 무척 반갑다. 이번 여행도 그와 같았으면 하는 기대를 하고 떠나 본다. 다만 선주가 사정이 생겨서 함께 못한 것이 아쉽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떠나고 싶은 마음에 선주를 내버려 두고서라도 출발해야 했다.  선주야 미안해~

  출발은 조금 느지막이 했다. 오후 1시...  덕분에 난 마산에서  부산 노포동 버스 터미널까지 아주 느긋이 갈 수 있었고 커피를 마시며 친구들을 기다리는 여유까지 부릴 수 있었다. 운동화에 두툼한 잠바, 목도리, 장갑까지 중무장을 하고 좀 묵직한 여행용 가방을 올려 매고 있는 것은 싫지 않은 일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오히려 이땐 여행 직전의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행복하기만 하다. 그리고 더불어 나 자신이 뭔가 자유로워지는 것까지도 느끼게 된다. 삼십분쯤 뒤 혜경이와 혜은이가 왔다. 이 버스터미널에서 친구들을 보는 것은 이제 익숙하다.

 주왕산은 경북 청송 부근에 있단다. 창구에 가서 표를 끊는데 세상에 .... 표값이 한 사람당 17100원... 생각보다 비쌌다. 일단 회비를 오만원씩 걷었는데 은근히 모자랄 것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먹는 건 먹어야겠지? 우리는 버스 안에서 입이 심심할 것같아 일단 터미널 내 '빠리바게트'에서 빵을 하나씩 골라잡았고 또 매점에서 과자를 하나씩 골라잡았다. 혜경이는 '알새우', 혜은이는 '맛동산', 난 '오징어땅콩'. 그러고 보니 모두 우리가 어릴 때부터 먹던 과자들이었다. 요즘 새로 나온 과자들도 많은데 우린 왜 그런 걸 골라집지 않을까? 아마도 확실히 맛이 보장되어 있고 친숙한 것들이라서 그럴거다.

  드디어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맨 뒷자리에 세 명이 쪼그르... 창가쪽 혜은이, 가운데 나, 그 다음 혜경이... 아이들이 가운데 자리를 나에게 비워주는데 순간 멈칫... 사실 난 가운데 자리를 좀 부담스러워하는 편이다. 그냥 구석에 박혀지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소심한 성격 드러나지?) 하지만 오늘은 한번? ^^
  주왕산까지는 부산 노포동에서 울산, 경주, 영천, 청송을 거쳐 4시간정도를 간다고 하는데 대략 영천까지가 2시간이고 영천서 주왕산까지가 2시간쯤인 것 같다. 지도를 보면 영천서 주왕산까지의 거리가 부산서 영천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짧다. 그런데도 이렇게 같은 시간이 드는 건 영천서 청송까지는 마을 구석구석, 산 중턱의 도로를 꼬불꼬불 돌아 한참을 가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이런 저런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다가, 차창 밖 구경을 하다가, 한번씩 자는 것을 반복했다. 그런데도 4시간은 너무 길게 느껴졌다. 햇볕 때문이었을까? 1월이고 겨울인데 날이 풀려서 그런지 햇볕이 쫘악 버스 안까지 밀고 들어왔다. 우린 옷을 막 껴입어 그런지 조금 갑갑했다. 그래서 더 버스에서 빨리 내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청송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리고 주왕산으로 가는 종점 길 버스 안엔 운전사 아저씨와 우리 셋만 남았다. 이럴때면 어김없이 여행지의 버스 운전사 아저씨들은 말을 걸어 오신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운전사 아저씨는 우리 보고 겨울에 산에 뭐 볼 게 있다고 왔냐시며 농을 붙이신다. 우리도 '우리 왜 왔노? 돌아가야 되나?'하며 농을 받는다. 우린 잘 됐다 싶어 그 부근에 숙박 괜찮은 곳이 어디냐고 여쭈어 보니, 아저씨께서는 몇 군데 전화를 직접 해 보시고 어느 민박집을 잡아 주셨다. 그리고는 괜찮은 곳일거라며, 학생들 오늘 나 만나서 운이 좋은 거라시며 으쓱해 하신다. 우리도 우리가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저씨가 고마웠다. 이래서 버스 여행이 좋다. 그 사이에 만나는 사람들 때문에...

  종점에서 내려 터미널에 서 있으니 곱슬 단발머리에, 루즈가 빨가니 화장이 찐하지만 본얼굴은 순박해 보이시는 아주머니께서 마중 나오셨다. 그리고는 저~쪽으로 오라며 먼저 집에 가 계시겠단다. 우린 어떻게 먼저? 하며 의아해했는데 아주머니는 한켠에 세워둔 자전거에 훌쩍 올라타셔서 정말 먼저 가신다. 급히 바퀴를 굴려 앞서 가시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이 언젠가 본 영화포스터 속 장면처럼 낯익고 우스웠다. 아마도 그 영화포스터는 코믹물이었을 듯 싶다.

  우리가 도착한 민박집은 그래도 최근에 지어진 듯 깔끔했다. 1층은 식당, 2층은 방. 왠지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민박집이 정해지고 방값이 정해져서 너무 빨리 , 쉽게 일이 진행되는 것 같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리 싫진 않았다. 깔끔하고 괜찮은 민박집이었고 괜찮게 싼 가격이었으므로.(2만원^-^, 이 정도면 싸지 않나?) 우리가 묵을 방은 여자 세 명으로 꽉 채워질 만큼 작았다. 하지만 썰렁하지 않을 만큼 적당히 아담한 크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먼저 길 쪽으로 난 창문을 열어 보았다. 겨울산의 절경과 그 아래 집 몇 채, 묶여있는 러시아산 강아지가 눈에 들어왔다. 한가한 겨울 풍경. 한산한 거리. 가까이 보이는 산. 여행을 온 것 같았다.

  우리는 짐만 대충 내려 놓고 아래층에 밥을 먹으러 갔다. 별로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꼭 그 민박집에서 밥을 먹을 생각도 없었는데, 거기서 그냥 먹게 되었다. 우리가 2층으로 올라올 때 아주머니께서 밥은 언제 먹을거냐고 아주 자연스럽게 물으셨기 때문이다. 그래 안 먹을 밥도 아니기에 '먹지 뭐...' 하며 내려 갔다. 메뉴는 '산채비빔밥', '해장국', '정식', '약먹은삼계탕' '옻닭'  등이 있었다. 우린 산채 비빔밥을 주문했다. 비빔밥은 그런 대로 먹을 만했다. 시골 식당 밥답게 그렇게 깔끔하진 않지만 뭔가 숙성된 맛이 있었다. 비빔밥과 함께 된장찌개가 나왔었는데 냉이가 들어갔는지 쌉쌀하면서도 달짝지근하니 특별한 맛이 났다.
 
  저녁을 다 먹고 우리는 아주머니께 등산로가 어떻게 되는지 여쭈어보았다. 우리가 처음 생각하고 온 길은 주왕산 제 1,2,3 폭포까지 올라갔다 오는 것이었는데 그 정도면 버스 시간 놓치지 않고 다녀 올 수 있는지, 다른 좋은 등산로가 있는지... 그리고 웬만하며 '주산지'를 한 번 가보고 싶은데 그 곳을 다녀올 시간이 되는지 등을 여쭈어보았다. 아주머니께서는 제 1, 2, 3 폭포까지 갔다오는 것은 무리가 없겠지만 주산지를 갔다오려면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야 할 거라고 하셨다. 주산지는 조금 방향이 달라서 등산하러 갔다가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하며 다시 그곳에서 택시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이미 차비에서 너무 많은 지출을 했으므로 택시를 타고 다녀와야 한다는 것에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 일단 내일 8시쯤 출발해서 가보고 시간이 되면 가보자는 말로 생각을 뭉뚱그려 놓았다. 

   여행을 하면 무엇보다 그 지역사람들의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여행지에 와 있음을 실감나게 한다. 아주머니 말투는 전라도 말씨처럼 완전히 우리와 다른 것은 아니지만, 소리를 올리고 낮추는 것이 다른 것이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마치 우리과 친구 은숙이의 말을 듣는 것처럼. 그래 우리가 우리끼리 '은숙이 말 듣는 것같다. 그치?' 하니까 신기하게도 아주머니 성함이 진짜 은숙이라신다. (참 놀라운... ) 그리고 은숙이와 아주머니의 또 다른 공통점... 말귀를 잘 못 알아 들으시고 엉뚱한 말씀을 잘 하신다는 것. 순간 난 그것이 말씨의 차이가 아니라 경북 사람들과 우리의 사고의 방법이 달라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듣고 이해하는 방법, 생각을 말로 옮기는 방법.... 왜 ~  경북 사람들끼리는 이상한 것을 전혀 못 느끼지 않는가?

  우리가 등산로 지도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아주머니는 지도는 사면 된다고 몸소 다녀 오시겠단다. 자전거 타고 다녀오면 금방이라고. 그리고는 우리에게서 천원을 받아 드시고 정말 금새 다녀오셨다. 우린 우리를 위해 그렇게까지 해주시고 우리와 함께 우리 일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주시는 아주머니가 고맙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 너무 적극적이셔서 내심 부담스러웠다. 그냥...  너무 순수해서 그러신건가?
  아무튼 우린 그 지도를 보고 기암과 대전사, 주왕암, 주왕굴, 제 1폭포, 제 2폭포, 제 3폭포를 거쳐 금은광이로 올라갔다가 장군봉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정했다. 그렇게 하면 시간이 대충 맞을 것같았다.  
 
  저녁을 먹는 동안 밖이 어두워졌다. 겨울이라 해가 일찍 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정작 6시가 조금 넘었을 뿐이다. 우리는 민박집 앞을 나가 보았다. 1월의 산골 동네... 평일 저녁...지나다니는 사람 없이 조용했다. 다만 어디선가 밥을 굶었을 듯한 강아지 우는 소리만 들려왔다. 우리는 하늘을 봤다. 당연히 별이 쏟아져야 하지 않나? 그런데 웬 걸... 별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 그냥 까만 밤하늘이었다. 우린 모르지만 하늘은 지금 흐린 중인가?
 
  민박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보니 때마침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방영되고 있었다. 주왕산에 왔는데 주산지가 배경인 영화가 방영 된다니... 우린 이 지역에서 주산지를 홍보하려고 자체적으로 틀어주는 것인가 하며 신기해했다. 나와 혜경이는 그 영화를 봤었고 혜은이는 처음이었다. 우리는 그 영화의 배경을 눈여겨 보며 열심히 봤다. 영화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하며... (왜 마지막에 김기덕 감독이 직접 나왔을까, 마지막에  보자기를 머리에 둘러 싸매고 나오는 여자가 산에 요양 차 왔던 여자가 아닐까, 그래서 저렇게 인생이 순환하는가 보다는 둥) ... 재미있었다.

  혜은이가 주왕산에 대해 별로 안 알아본 것처럼 이야기 해 놓고선 주왕산에 대한 것을 인터넷에서 뽑아 왔다. ^^  난 전혀 알아 본 것 없이 와서 좀 아쉬웠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서 혜은이가 가져온 것을 열심히 읽고 공부했다. 먼저 알게 된 새로운 사실!  '주왕산'이란 이름... 산새가 왕처럼 웅장하거나 품위가 있다거나 해서 지어진 것이 아니고 '주도'라는 당나라 사람을 '주왕'이라 불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 '주도'라는 진나라 후손이 당나라에 반란을 일으키고 신라로 도망쳐 왔단다. 그래 숨을 곳을 찾다가 산새가 험해서 숨기에 알맞은 이 산으로 와서 숨었고 결국 당나라의 요청으로 잡으러 온 신라장수에 의해 이 산에서 최후를 맞게 되었단다.  난 조금 실망했다. 이렇게 괜찮은 우리산에 고작 당나라 사람의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이. 물론 그 당시 사람들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그랬기도 했겠지만 우리나라보다 큰 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산에 왔기 때문에 이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기리고자 했던 마음도 있었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산의 본래 이름은 '석병산'이다.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는.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석병산'이란 이름이 더 정겹게 느껴진다. 아무튼 그래서 산 곳곳에 이 사람과 관련된 전설이 서려 있었다. 대전사, 기암봉, 주왕굴, 주왕암, 백련암 등... '대전'과 '백련'은 '주도'의 자식 이름이라고 한다.  '대전사'는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이끄는 승병들의 진영이 되었다고 하고 당나라 장군 이여송의 친필 목판이 있다고 한다. 그 외 학소대, 급수대, 망월대, 왕거암 등이 볼 만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은 옻닭요리가 별미이고 달기 약수가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식당 메뉴에 '약 먹은 닭 삼계탕' ' 옻닭' 등이 적혀 있었구나 싶었다. 달기 약수는 철분이 많아서 이 물로 밥을 지으면 밥이 푸른 색을 띈다고 한다. 이만하면 공부 끝해도 되겠지?

  우린 아주머니께 부탁해 파전에 동동주도 한 잔씩 했다. 동동주는 살얼음이 끼여 아삭아삭하니 맛있었고 큼지막하게 파를 썰어 부친 파전도 맛있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산에 여행 와 있다는 것, 뜨끈뜨끈한 민박집에서 화장도 지우고 잠옷 입고 마음 편히 둘러 앉아 동동주를 지금 함께, 마시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다음날을 위해 일찍 자야 했지만 혜은이와 나는 '폭소클럽'까지 다 보고 12시가 넘어서야 잠들었다.

  다음날 원래 계획은 7시에 일어나서 8시에 민박집을 나서는 것이었지만 우리는 8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전날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했지만 사실, 오는 잠을 깨워가며 강행군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씻고 화장을 간단히 하고 아래층에 내려가서 밥을 먹었다. 이번엔 해장국. 사실 소고기 국밥 같은 거였다. 밥을 먹고 있는데 아줌마 아저씨로 보이는 분이 오셔서 ( 누구시냐고 물어보지 않았으므로 그냥 추측이다. 가게에 말없이 들어왔다 나갔다하는 사람은 당연히 남편이겠지? ^^) 우리가 일찍 산에 갔다오면 주산지까지 아저씨 차로 구경시켜 줄 수 있다고 하셨다. 우리 마음은 또 고마움 반 부담감 반이었다.

  식당에서 공짜 커피까지 얻어 마시고 산으로 향했다. 아홉시 반쯤. 원래 계획보다 많이 늦어졌지만 원래 그런거지 뭐... ^-^  어제까지 이 산을 찾은 여행객이 우리뿐인 줄 알았는데 몇몇 등산복 차림의 여행객들이 속속들이 산을 향하고 있었다. 입산관리소. 입장권은 3200원. 그 중 1600원은 문화재 관람료였는데 다른 여행객 아저씨 두 분께서 우린 그냥 산만 볼 건데 문화재 관람료를 꼭 내야 하냐고 투정부리듯 항변하셨다. 나도 예전에 비슷한 생각을 한 적 있다. 원래 산에 들에 흩어져 있는 우리나라 문화재를 보는데 왜 돈을 내야하는 건지. 그냥 있던 산에 올라가는데 돈을 내야 하는 건지. 그런데 지금은 최소한 산을 찾는데 드는 돈을 아까워해서는 안 될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돈 모아서 우리 산이나 문화재를 깨끗하게 온전히 지켜 나갈 수 있을테니까.

  주왕산은 정면에 암석 봉우리가 거대하게 불쑥불쑥 솟아 있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그것이 주왕산의 가장 특징적인 모습으로 인식되어 있다.  입산 관리소를 통과하자마자 오른편에 '대전사'가 있었다. 대부분의 절이 산 속에 묻혀 있기 마련인데 이 절은 산 입구에 있는 것이 조금 특이했다. 산을 입구서부터 지키고 있음일까?   기암봉이 대전사  뒤쪽으로 풍채좋게 서 있었다.

  간단히 대전사를 둘러보고 뒤편으로 나가니 기암봉이 바로 보이고 그 앞에 기암봉을 설명하는 안내문이 있었다. 이 기암봉은 앞서 말했던 '주도'가 이 주왕산에 숨어 신라군과 싸울 적에 신라군에게 군량미가 많게 보이게 하기 위해 이 암석봉우리 전체에 거적을 둘러 꼭 쌀가마니를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 봉에 기 (깃발)을 꽂았다고 하여 기암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제 글에서 읽었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 '음~ 그렇구나'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의 안내판이 참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른 관광지의 안내판은 한자 범벅으로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안 들어 오는데 반해,  여기 안내판은 되도록이면 한자를 쓰지 않고 쉽게 썼으며 학술적인 내용이 아닌 흥미로운 이야기만 간단히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부담스럽지 않은 안내판'이어서 좋았다.

  우리는 다시 왼편으로 발길을 옮겨 주왕굴과 주왕암으로 향했다.  넓고 얕은 계곡을 따른 평탄한 길을 계속 걸었다.   그 사이 또 읽은 안내판. '수달래'에 대한 것이었다. 이 부근에만 늦봄에 피는 꽃으로 철쭉과이며 진달래와 달리 꽃잎에 20개 이상의 점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사람들은 이 곳에서 최후를 마친 주도가 마지막에 흘린 피가 계곡에 흘러 이 꽃이 피었다고 이야기들 했다고 한다.

    드디어 주왕암과 주왕굴에 도착했다. 주왕암은 조그마한 암자였고 주왕굴은 그야말로 굴이었는데 왜 '주도'가 이 곳에 숨었는지 알 만했다. 주왕굴은 그야말로 걸어서 들어가긴 무지하게 힘들도록 좁고 구불구불한 바위절벽 사이,  깊숙한 곳, 폭포수 뒤편에 있었다.  이 곳을 군사들이 들어온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우리가 밟고 있는 쇠다리도 없지 않은가?... '주도'는 이 폭포수 뒤에 숨어 군사와 대치하고 있다가 물을 마시려고 몸을 내밀다 신라군이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우린 주왕굴이 얼마나 숨어 있기 딱 좋은 곳인가 감탄하며 암자를 나왔다. 그때 암자에서 어느 스님이 불경을 외고 계셨는데 그 목소리가 이때까지 들어본 어느 불경외는 소리보다 탁월히 매력적이어서 또 한번 감탄했다.

  다음 길을 쭉 따라 가니 나무계단이 나왔다. 그 위를 올라가니 시야가 확 트이면서 기암절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 나왔다. 자세히 보니 오른편에 있는 것이 급수대, 그 왼편에 시루암, 정면에 연화봉이었다. 시루암은 잘 보면 할아버지 얼굴같이도 보인다.

   다시 그 곳을 내려와 절벽 아래로 난 좁은 길을 걸어갔다. 아래를 보니 왠지 아슬아슬했다. 좀 더 가니 아까 봤던 시루봉 아래가 나왔다. 그리고 그 맞은 편에 학소대가 있었다. 아마도 '학의 보금자리'라는 뜻일거다. 옛날 이 봉 위에 청학과 백학이 다정히 살고 있었는데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해 총을 맞아 죽었다고 한다. (우씨~ 암튼 일본인들!) 우린 '학마을 사람들'을 떠올렸다. 혹시 황순원이 이 학소대를 배경으로 소설을 쓴 것은 아닐까?... 

 좀 더 가니 암벽들 사이로 좁은 길이 나 있었다. 참 볼만한 모습이었다. 주왕산은 등반도 등반이지만 아마도 이 암석들 자체가 볼거리라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나 싶었다. 길 오른 편으로 제1폭포가 있었다. 생각보다는 작은 아담한 폭포. 우린 그 곳에서 다 같이 한 컷 찍기로 했다. 그래서 지나가시는 아주머니께 디지털 카메라를 건내며 한 컷 부탁드렸다. 아주머니께서는 카메라를 잡는 것이 어색하신 듯 당황하시는 것같았다. 그러더니 잽싸게  버튼을 누르시고는 황급히 카메라를 주고 자리를 뜨셨다. 아주머니께서 찍은 사진 확인 결과 우린 오른쪽 위 귀퉁이에 쏠려 있었다.^-^  우린 다시 다른 분께 부탁드렸고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제 2폭포는 좀 외진 곳에... 2단 폭포였는데 폭포수 아래 작은 소를 이루고 있었다.  폭포물줄기와 소가 얼어 있었다.  우린 얼마나 얼어 있나 확인하고 싶어 돌을 들어 던져 보기도 하고 조심조심 얼음 위를 걸어본다. 그리고 그 앞에서 서로 '시키는대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제 3폭포는 좀 더 넓은 곳에 좀 더 큰 규모와 높이로 자기만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3단 폭포였다.이것 역시 물줄기가 얼어 있었다.

 제 3폭포 오른편으로 위로 올라가는 철 계단이 있어 올라갔다. 이제는 금은광이로 가야 한다. 그런데 표지판부터가 어디로 가야할 지 헷갈렸다. 이쪽인가 싶어 갔더니 절벽같은 곳이!   다시 돌아와 금은광이라고 화살표가 된 표지판을 찾아 갔다. 여기서부턴 우리가 이때까지 걸어 온 관광용의 평탄한 길이 끝나고 등산용인 것같은 가파른 산길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 계곡과 길이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길을 가게 되었고 우린 우리가 올바로 가고 있는지 내심 걱정되었다. 그런데... 일은 터졌다. 앞서 가던 혜은이가 살짝 얼어 있던 계곡물을 땅인 줄  알고 밟다가 그만 빠져버린 것이다. 다행히 깊지 않아 발목까지만 빠졌지만 얼마나 놀랐던지... 우린 발이 얼까봐 부랴부랴 젖은 양말을 갈아 신고 신발 안을 대충 닦아 내었다. 놀라운 것은 그 잠시 동안 젖은 양말이 얼어버렸다는 것이다.  우린 갑자기  우리가 해가 짧은 겨울, 추운 날에 산 속으로 들어가고 있음이,  길도 잘 모르면서 간다는 것이,  더군다나 길도 험하다는 것이 , 너무 두려워졌다. 그리고 혜은이 신발이 젖어 그 상태로는 도저히 더 험한 길을 걷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린 조금 아쉬웠지만 발길을 돌려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이번 여행은 여기까지인가 보다하고... 다음에 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다시 오기로 하고. 혜은이는 "까불다가 그래됐다"며 괜히 미안해 했다.  안 그래도 되는데... 내심 나도 길이 무서워서 다시 돌아오고 싶었었다. 아마도 혜경이도 그렇지 않았을까?...   

  돌아오는 길은 부담이 없었다. 갈때는  이곳 저곳을 본다고 정신없었는데 돌아올 때는 우리들 각자 이야기를 했다. 내가 요즘 느끼는 것들.

  민박집에 도착하니 아주머니께서 대구로 가는 차가 곧 있다고 하신다. 나는 마산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대구로 가서 마산으로 가는 차를 갈아 타야 했다. 우린 그 말을 듣고  아주머니께도 제대로 인사도 않고 급하게 정류소로 뛰었다. 이렇게 일찍 갈 생각은 아니었는데  버스가 바로 있다는 말을 들으니 지금 당장 가야 할 것같이 마음이 급해졌기 때문이다. 정류소에 가니 대구 가는 차는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고 영천가는 차는 바로 있는데 영천서 대구 가는 버스가 많다고 하신다. 그래 혜경이와 혜은이랑 같이 버스에 올라다가 영천서 나 혼자 내렸다.

  이렇게 이번 여행은 끝이 났다. 1박 2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껏 여행을 못한 것같은 아쉬움이 조금 남는 여행이었다. 하지만 주왕산 자체가 매력있는 산임은 충분히 느끼고 온 것같다. 다음에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들르고 싶다. 그리고 이번 여행은 우리들이 앞으로 함께 할  많은 여행의 시작이 되어 줄 것이다. 다음에 더 즐거운 여행을 기약하며 이쯤으로 정리해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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