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아이 1
시미즈 레이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6년 1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예를 들면 안데르센 동화의 원작 내용이 사실은 성인용에 훨씬 가깝다는 것을 알면 충격 받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것처럼, 단순하고 별 의미 없는 동화적인 스토리보다는, '인어의 역사'라는 리얼함을 그대로 살린 줄거리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순화된 내용'인, 인어공주가 왕자를 만나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버리고 사랑을 택한다는 줄거리가 아니라, 세일러라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인어가 자신의 사랑을 위해 종족을 배신하고 그들 모두를 이단으로 몰아 끔찍하게 죽게 했다는 인어의 슬픈 역사. 그리고 우주에서 살고 있던 인어가 알을 낳기 위해서는 지구의 바다로 돌아와야 한다는 장대한 스케일. 세일러의 아이가 산란기에 지구에 돌아온다는 예견에 인어들은 증오심에 불타고... 세일러가 낳은 인어 '지미'는 기억을 잃은 채 아트 가일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모든 비극은 시작되고... 세일러가 그랬듯, 인어에게 불행을 불러오는 '인간과의 사랑'은 오랫동안 금기시되었던 것이었다. 엇갈린 만남, 엇갈린 사랑, 엇갈린 시선 속에 지구의 종말은 다가오고...

난 사실 만화를 즐겨보긴 하지만, 대부분의 만화에는 '깊이'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만화로써, 그런 영상적인 면으로서 표현해야 더욱 깊이와 매력이 느껴지는 스토리도 분명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만화도 분명 예술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시미즈 레이코의 이 '달의 아이'도 분명 예술임에 틀림없었다. 만화 특유의, 산뜻하게 웃을 수 있는 코믹한 부분과, 섬세한 그림체가 보여주는 댄서의 세계. 그리고 가슴아픈 사랑을 정말 산뜻하고 아름답게 그려내었다.

가장 가슴아프면서도 인상깊은 구절이 있다면, 인어 특유의 초능력으로 인하여 무의식 중에 끔찍한 일들을 일으켰던 지미를, 지구를 위해서 아트가 죽이기로 결심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틸트가 냉정하게 내뱉은 말. '인어공주의 결말은 두 개뿐이야. 왕자를 죽이던가,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거지.' 결국 아트는 마지막으로 지미를 품에 안으며 칼을 꺼내드는데... 여기서 시작되는 약간의 반전, 상당히 인상깊었다.

영상이 뿌옇게 흐려진 듯, <달의 아이>의 표지 그림은 환상적이면서도 아름답다. 마치 저 먼 곳, 바닷 속의 세계인 것처럼. 처음엔 인상 깊은 제목과 일러스트에 끌리게 되지만, 점점 스토리와 비극적인 인어들의 사랑에 끌리게 된다. 섬세한 터치, 아름답고 부드러운 그림체, 그렇지만 그 이면에 숨은, 잔혹함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하는 리얼리티- 그리고 장대한 스케일- 동화적인 분위기와 신비하고 예술적인 느낌도 곳곳에서 배어나는, '달의 아이'는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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