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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피천득 지음 / 샘터사 / 199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며 살기에도 부족한 일생이다' 이 말이 갑자기 떠오르는 건 왜인지. 아마 이 책이 그만큼 우리 주변에서 정신적인 풍요를 찾아야 하고... 물질적인 집착이나 미움보다는 사랑을 택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공허한 물욕 대신 깨끗한 무욕을 택한 작가 피천득. 주로 여백으로 이루어져 있는 희디흰 바탕에 깊이 있는 조개의 그림이 하나 그려져 있는 표지는 결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기품이 있어 작가 자신의 정신적 여유와 깨끗한 동심을 닮아 있다. 그러나 하얀 만큼 더 쉽게 더러움이 눈에 띄는 표지를 보며 그것이 마치 우리 인간의 마음과 너무나 흡사해 괜히 슬퍼진다.
내가 무욕을 택하는 게 더 두려워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지.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는 용기 있는 그의 글은 언제나 신선한 향기가 넘친다. 하나의 책 자체는 문자와 종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온도나, 색깔이나, 냄새가 없다. 그러나 그 속에서 따뜻한 온기와, 청결한 흰색과, 봄을 맞아 수줍은 듯 조심스럽게 피어나느 듯한 싱그러운 향기가 느껴지는 것은 글에 그의 영혼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