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 - 임동확 시인의 시 읽기, 희망 읽기
임동확 지음 / 연암서가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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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든 소설이든 미술이든 세상에 얼굴을 내밀고 나면 감상과 해석은 읽는 이, 보는이의 몫이라는 말을 들었다. 만든 이의 생각과 달리 더 심오한 감상이 가능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겠지. 더구나 시는 내 눈에는 암호와도 같아 보여서 물 위에서만 슬쩍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물 속 깊은 곳까지 보고 싶은 갈증이 느껴질 때가 자주 있다.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해보이는 일이라 포기하기도 했었다.

 

 

첫인상? 저자의 프로필이 독특했다. 아니 내가 보기에 반가웠다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겠다. 세상의 모순과 불화에 주목하면서도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궁극적인 화해와 소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저자. 책 곳곳에서 그런 저자의 시각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생, 길, 시간, 공간, 사랑, 고독, 죽음, 생명 등 서른 가지 주제를 가지고 서른 편의 시와 저자의 감상을 접할 수 있다. 시도 시이지만 저자의 감상이 더 높고 광활한 세상으로 안내해주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유쾌했다.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만의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오규원,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중에서 p16

 

 

봄날 꽃이며 자연을 감상하기 위해 공원으로 들로 나가서 이 시와 저자의 해설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저 언뜻 보기에는 아름다운 꽃이구나, 잎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실은 모진 비바람과 빛과 어둠 속에서 견디어 내어 제 몸뚱이를 지탱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묵묵히 말이 없다. 벚꽃의 아름다움에 홀딱 정신을 빼앗기는 요즘,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인내와 고통을 생각하면서 감상해보고 싶다.

 

 

사랑

 

 

나를 없애는 방법,

죽기 아니면 사랑하기뿐!

사랑하니까

네 앞에서

나는 없다

작두날 위에 나를 무중력으로 세우는

그 힘

 

황지우, <나는 너다17>중에서 p56

 

 

모든 사랑은 자신도 모르는 존재의 심연에 도달하려는 하나의 길이며, ‘나’라는 자아를 완전히 소멸시킬 때 더욱 완벽하게 자기의 본래성을 회복할 수 있다. 오히려 내가 나의 자아라는 “강”을 벗어나야 사랑의 상대인 타자가 머무는 저편의 강기슭에 도착할 수 있다. p61

 

 

숱한 사랑싸움을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한방의 시이다.

 

 

아니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인 걸까? 아니면 비겁한 나는 앞으로 만약 이런 상황이 닥친다해도 사랑하기보다 죽기를 택할 것인가? 모르겠다. 나 자신을 내어놓기를 거부하는 어줍잖은 모습으로 사랑을 한 것 마냥 거들먹거리는 것은 웃긴 일이란 건 확실히 알았다.

 

 

 

보는 이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저자의 눈과 마음을 거쳐 재해석된 시는 더욱 아름답고 영롱해보였다. 선별된 시 역시 어쩜 이런 표현을 구사할 수 있었을까 하는 감탄이 나오는 부분이 자주 있었다. 내 삶을 돌아보고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도 되었다.

 

 

표현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는 요즘, 오히려 이렇게 표현을 가능한 억제하고 다듬고 다음어 만들어낸 깊이 있는 시가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힐링 처방약이지 않을까 싶다.

 

 

 

 

바쁜 생활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시를 읽어보고 싶은 누구에게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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