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의 대통령
미셀 팽송 & 모니크 팽송-샤를로 지음, 장행훈 옮김 / 프리뷰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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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시골 분교인 학교에서 열린 여름 수련회에 3박 4일간 간 적이 있다. 그 학교에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소위 푸세식 화장실이라고 하는 것을 보았다. 그 근처만 가도 암모니아 냄새를 비롯한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수련회 마지막 날 버스를 타고 돌아올 때 생각해보니, 신기하게도 수련회 기간 동안 한 번도 화장실을 가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서 그 때의 그 악취가 떠올랐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과 부자들의 행태를 보고 있자니 역겹고 구역질이 나고 머리가 아파왔다. 솔직히 말해서 읽는 도중 책을 던지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이런 쪽으로는 문외한이었기에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혀 남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프랑스 국립사회과학연구원의 원로 부부 사회학자가 연구한 부자들의 대통령에 대한 평가 분석이다. 저자들은 학자의 양심에서 책을 통해 다시는 ‘부자 대통령’이 나와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기업 전문 변호사 출신이다. 법률에 대한 지식이 많은 것을 이용해서, 치밀하게 법의 경계망을 요리조리 피하는 모습이 참 가관이다. 목차나 책 소개에서 <부자들의 대통령 십계명>만 보아도 이 책의 요지는 알 수 있다. (다 읽고 보았는데도 충격이 컸다.)

 

 

프랑스에 대해서 잘 모르기에 읽으면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내용 중간중간에 주제가 바뀌는 단락마다 소제목이 붙어있어서 저자가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인지는 뚜렷이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마지막에 있는 ‘결론’이 없었다면 엄청 아쉬웠을 것 같다. 결론에서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직시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몇 번이고 곱씹어 생각해 볼만한 것들이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소외자, 주변인

 

 

가난한 노동자들에게는 신 빈곤층, 혹은 금융자본주의의 현대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소외자, 주변인이란 이름이 붙여졌다.p214

 

 

금리생활자가 있다는 것은 노동이 모든 사람의 의무가 아니고, 노동권이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못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p214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힘은 시장법칙을 자명한 것, 불가피한 것, 자연스러운 것으로 내세우는 데 있다. 신자유주의는 오늘날 세계적인 차원에서 자리를 잡고 선진국과 신생 공업국들의 노동자들을 경쟁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타고 난 자연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 이 시장은 인간의 비인간적 대우를 수반하고, 정글에 더 가까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p215

 

맞는 내용인 걸 알면서도 뭔가 불편해진다. 이러한 자각 없이 하루하루 생활하는데만 급급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노동자의 자살

 

 

임금노동자들은 정신적 혼란이 너무 심해 자살하는 사람까지 있다. 노동 현장에서 자살하는 것은 경제체제가 그의 절망적인 행동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고발하는 것이다. 몇 사람을 위해 엄청난 이익을 내면서 가장 약한 자들을 짓밟는 체제를 고발하는 것이다.p216

 

 

최근 노동현장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자살은 초현대적 시대의 폭력적인 징후 가운데 하나이다. 사르코지의 프랑스는 이러한 불안한 무기력 상태에 처해 있다.p216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초현대적 시대의 폭력적인 징후에서 자유롭지 않다.

 

 

과두권력의 정체를 추적하라

 

 

우리는 사회변화, 더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고,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며, 지식과 문화에 더 폭넓게 접근하는 쪽으로의 변화를 모색한다. 이러한 모색은 대다수의 프랑스인을 통제하고 예속시키는 인적 네트워크에 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p218

 

 

시민 개개인은 자신의 거주지와 작업장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로부터 시작해 과두권력의 다양한 구성원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선거에 당선된 자들의 소속 정당이 어디인지 알고, 그들이 공공사업을 수주한 기업인이나 부동산 개발업자, 제조업자들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배후를 알아내야 한다. 언론에 등장하는 이들 중요 인사들 간의 상호관계를 도표로 그려보는 것도 필요하다. 이들이 구성하는 집단 권력은 이들의 인간관계와 상호관계를 연결시켜 보아야만 그 실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pp.218-219

 

 

경계심과 호기심을 갖는 태도, 그리고 이런 문서들을 검토하는 행위자체가 이미 투쟁에 속한다.p221

 

 

지배자들에 대해서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은 자기들이 겪고 있는 지배체제와 본의 아니게 공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기업에 관한 이들 문서, 금융계와 경제를 다룬 서적들은 때때로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한 표현으로 차있는 것이 사실이다.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겁을 먹도록 만드는 전문용어들이다. 하지만 인터넷에는 사람들이 쉽게 대답을 발견하도록 해 주는 엄청난 자료가 담겨있다.p221

 

지배자들, 정치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았던 내 행동이 현 지배체제와 본의 아니게 공모하는 것이라니, 소름이 돋는다.

 

 

제일 젊고 생활조건이 열악한 유권자들은 정치게임에서 배제된 첫 번째 소외자들이다. 이들은 18~25세의 젊은이들로 같은 해 지방선거에서 75%가 투표하지 않았다.p229

 

 

투표를 가볍게 생각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부자들의 대통령’이 다시는 나오지 않기 위한 방법들이 제안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도 적용이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제시된 방법이 최선인지는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현 체제에 좌절하고 절망하고 비관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비판적인 시각으로 움직이고, 변화시켜나가려고 노력하는 자세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을 직시하는 과정도 필요하겠지만 이러한 건설적인 대안에 대해서도 논의하는 장이 마련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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