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 : 세기말의 보헤미안 - 새롭게 만나는 아르누보의 정수
장우진 지음 / 미술문화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기 100년 전 강국들의 팽창주의에 약소국들이 비명을 지르고 나라마다 민족주의라는 것이 꿈틀대고 세기말 '불안'이 엄습하던 시대, 예술로서 시대를 떨치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그의 이름. 알폰스 마리아 무하 Alphonse Maria Mucha.

 

저자

 

저자의 프로필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강의와 저술을 활발히 하고 있는 분이라는 게 보였다. 그리고 사랑하는 조카들에게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미술책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그렇다. 덕분에 미술에 문외한인 나 역시 (미술 뿐이겠는가. 유럽에 대해서도 문외한이다. 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편안하게 작품들의 매력에 빠져들어 갈 수 있었다.

 

1900년대 초반의 사람들의 삶과 사상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이 책에서 서술된 당시의 유럽의 시대상과 무하라는 한 작가, 그리고 역경의 삶이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책 제목에는 '무하'라는 작가 이름만 명시되어 있지만, 그의 작품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시대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무하를 조명하도록 하기 위한 저자의 세심한 배려로 당시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당시의 거리를 걸어가고 있는 착각을 할 정도로 자세한 묘사가 사진까지 곁들여 있다.

 

책의 흐름

 

책의 흐름은 대략 다음과 같다. 당시의 시대상, 예술사조에서부터 시작되어서, 무하가 태어나고 자란 이야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확립해나가는 숱한 과정과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 자신의 민족과 조국을 위해 말년에 완성해 나가는 <슬라브 서사시>의 이야기. 나치 정권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 지하 창고에 묻혀 있던 무하의 작품들이 자녀들의 노력에 의해 다시 빛을 보는 이야기, 이렇게 구성되었다.

 

어머니의 교육과 그림에 대한 성실한 노력, 몰입

 

무하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어쩜 이렇게 섬세하고 아름답고 몽환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을 자아냈다. 무엇보다 재능만으로 이룬 성과가 아니라는 것도 감동으로 다가왔다. 충분한 교육을 받았던 그의 어머니는, 자상하게도 온종일 온 집안에 낙서를 하고 돌아다니는 아이의 목에 크레용을 매달아 주었다.(p65) 그리고 교회에서 성가와 춤 등을 배우며 예술적인 감수성을 단련해나갔다. 8살에 그린 그림에서 "글자를 두른 리본장식 모양이 '무하양식'을 예견하고 있는 듯 보인다"는 저자의 설명이 이후 무하의 작품에서 보니 딱 맞아떨어져서 감상하는 재미가 더했다. 그리고 정말이지 성실하게 그림에 몰입해서 작품활동을 해나간 무하의 일상 역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슬라브인으로서

 

슬라브인으로서 자신의 신념에 배치되는 게르만의 업적을 찬양하는 <독일 역사의 여러 장면과 일화>의 삽화를 의뢰받았을 때, 그의 망설임의 묘사. 그리고 그린 그의 대표적인 몇 작품과 저자의 설명은 작품과 무하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무하는 이 작업에서 게르만의 호전성이나 공격성을 드러내는 전투 장면 대신에 전투 후의 상실과 독일의 정신적, 지적 공적에 초점을 맞추고 체코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 역사적 사건을 부각하는 장면으로 33컷을 채운다. p138

 

식민지 시대를 내가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체코나 한국이나 그런 역사적 공통분모가 있기에, 무하의 이러한 작품활동의 태도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다.

 

 

초기 작품에서부터 만년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친절하고 세세한 설명, 당시 시대상, 예술풍조와 아울러 무하의 양식이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죽 지켜볼 수 있었다. 지하 창고에서 묻혀버릴 수도 있었던 작품들이 이렇게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랍고 다행스럽다.

아르누보 양식과 100년전의 유럽이야기. 무하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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