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960년대 - 도쿄대 전공투 운동의 나날과 근대 일본 과학기술사의 민낯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임경화 옮김 / 돌베개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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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출구가 보이지 않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위험한 배외주의 사상의 침투는, 평화헌법을 지켜 왔다고는 하나 과거의 제국 일본에 대한 진지한 비판과 반성을 결여한 채로 경제성장을 추구했던 전후 일본에 대한 통절한 반성을 우리 일본인들에게서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경제성장과 국제경쟁을 대신할 새로운 길, 저성장 속 민중 국제연대의 길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9)

당시의 논의를 회고해 보면, 현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대신에 무엇이든 곧바로 미국에 대한 일본의 종속과 식민지화라는 상투어로 정리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경향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러한 안이함이 그 이후 사태의 진행을 전망하는 것을 방해했다.(...) (23)

그러나 이미 1960년대 단계에서 히로시게 데쓰는 지적했다. ‘이공계 붐‘이라는 이름으로 화학이나 물리뿐만 아니라 수학 같은 순학문적인 학과에 이르기까지 이학부 졸업생들에게 민간기업들이 수많은 유혹의 손길을 뻗치던 이 시기에 "이미 이학부는 옛날처럼 학문이 밥보다 좋은 은자가 가는 곳이 아니게 되었"고, "1956년 무렵부터 표면화되어 더욱더 격렬해진, 과학기술에 대한 독점자본의 요구 앞에 대학 연구자들은 급격히 자주성을 상실하고 있"었으며 "‘학문의 자유‘, ‘대학 자치‘라는 관념은 그저 빈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역으로 학문의 독점에 대한 복무를 변호하는 슬로건으로까지 영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53)

26 과거 장기간에 걸쳐 식민 지배를 한 한반도 국가에 대한 국교 수립은 무엇보다도 35년간의 식민지 지배 책임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고 전후 일본에게 중요한 과제인데, 1965년에 일본 정부는 한반도가 분단국가가 된 가운데 당시 반공군사정권 지배하에 있던 남부 대한민국하고만, 분단을 고정시키는 식으로 조약 체결을 도모했다. 그것은 또한 이후 동아시아 개발독재형 친미반공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만들어 그들을 일본의 수출시장에 편입시킨다는 일본 자본주의의 일관된 목표에 기초한 것으로, 한일조약 반대 투쟁은 그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에 식민지 지배를 했던 한반도 북구국가와 여전히 국교가 없다는 것은 역시 비정상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68)

그 결과, 한편에서 군은 과학자가 19세기 SF소설에서 묘사되곤 하는 실무에 어두운 공상적 인종이 아니라 실제로는 대단히 유능하고 도움이 되는 인종이라는 것을 알고, 전후에도 과학자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과학자의 포위를 도모했다. 다른 한편에서 윤택한 연구비의 맛을 안 과학자도 전전의 빈곤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았고 통 큰 스폰서인 군과의 우호관계 유지를 희망하게 된다. 돈이라는 것은 마약과 같은 것이어서, 한번 받아들이면 이윽고 그 돈 없이는 헤쳐 나갈 수 없게 된다. 일본에서 원전을 받아들인 지자체가 이윽고 원전의 교부금 없이는 헤쳐 나가지 못하게 되어 결국 2기째, 3기째 계속해서 늘려 갈 수밖에 없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1950년 무렵까지 미국에서 과학 연구의 전후 구조는 완성되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군산학 그리고 국가의 일체화다. (73)

전쟁을 선동한 정치가와 전쟁을 지도한 군인이 패배의 책임을 ‘과학‘에 돌린 건 전쟁책임 추궁이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것을 교묘히 회피한 것이라 불쾌한 마음이 드는데, 매스컴을 비롯해 그것을 비난하는 논조는 없었던 것 같다. 그뿐인가, 매스컴이나 지식인이나 자신들이 침략전쟁에 가담한 것에 대한 반성도 없이 ‘일본은 과학전에서 패배했다‘는 논의에 동참했다. 특히 미군에 의한 원폭 투하는 그야말로 그 ‘과학전의 패배‘를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
그것은 또한 일본의 패배가 정확히는 ‘아시아태평양전쟁‘의 패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미국에 대해서만 패배한 것처럼 잘못된 이해를 초래함으로써 그 이전에 일본이 중국에 패배했다는 사실, 얕보았던 중국인들에게 졌다는 현실을 은폐하는 것이기도 했다. (77)

니시나는 원폭 투하 직후 히로시마의 지옥도를, 그리고 나가이는 원폭 투하 후 나가사키의 참상을 직접 목격했다. 그 학적 경력으로 보나 특이한 경험으로나 당시 일본에서는 방사선의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는 입장에 있었지만, 그 두 사람조차도 20세기가 낳은 과학기술인 ‘원자력‘의 장래에 대해 이 정도의 신뢰를 갖고 있었다. 과학자가 미증유의 살상력과 파괴력을 가진 무기를 만들어 냈다는 데 대한 회한이나 죄의식, 공포의 감정 같은 것은 편린도 찾아볼 수 없다. (81)

애당초 1966년에 미국 자금 도입을 꾀한 것은 소니연구소 소장 하토야마 미치오...와 도쿄대 물리교실 교수 우에무라 야스타다...였고, 미군과의 사이를 중개한 것은 전 도쿄대 총장 가야 세이지였다. 즉 연구비가 가장 풍부한 위치에 있는 연구자들이었다. 그에 비해 연구비가 부족한 지방 대학 연구자일수록 윤리적으로 결벽했던 것으로 보인다. 연구비가 적으니까 미군에 자금 원조를 요구했다는 건 거짓말이다. 오히려 역으로 연구비가 풍부해지는 만큼 돈맛을 알아 돈에 대한 감각도 마비된 것 같다. ‘부자와 재떨이는 쌓이면 쌓일수록 더러워진다‘는데 정확한 말이다. (84)

결국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라는 건 실은 군정하의 오키나와에 미군기지를 억지로 떠맡겨 일본이 극동에서의 냉전체제 유지에 관련을 맺으며 아시아 각국 민족해방 투쟁의 암살에 가담함으로써 존립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10.8에 벌어진 야마자키 군의 죽음이 제기한 것은 그것이었다. (97)

돈벌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고도성장은 1954년 말에 시작된 진무경기부터 74년 오일쇼크까지 실로 20년 가까이 지속되었고 그것은 세계사적으로 보아도 드문 사건인데 그 고도성장의 시작을 뒷받침한 것이 한반도 특수, 그리고 그 후반을 뒷받침한 것이 베트남 특수였다. 66년부터 71년까지 베트남 특수로 일본 기업에는 매년 10억 달러의 돈이 들어왔다. ...
오컨대 전후 일본의 ‘평화와 번영‘은 한반도와 베트남 사람들이 흘린 피로 얻어졌으며, 오키나와를 미군정하에 맡겼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99)

즉 그 학생은 마루야마 마사오를 사상과 행동이 일관된 인물로 간주한 후에 비판하라고 한 것이다. 그에 비해 나는, 아아 마루야마도 도쿄대 안에서는 법학부장과의 개인적인 관계, 동료와의 관계, 오코치 가즈오나 문학부 교수와의 교우관계, 그러한 것을 고려해 결국 그러한 굴레 속에서 사는구나, 쉽게 말해 도쿄대는 편한 곳이구나 생각했다. 그는 요컨대 보통사람이었던 것이다. (120)

진정한 의미의 ‘전공투‘를 만들어 낸 것은 니혼대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68년 6월에 투쟁이 시작된 후 극히 단기간에 각 학부에 강력한 행동대를 조직했을 뿐만 아니라, 11개 학부로서 사실상 11개 대학이 있다고 일컬어지는 초매머드 대학의 전학적인 사령탑으로 정보국을 형성한 역량은 괄목할 만한 것이다. 니혼대 전공투만의 데모로 니혼대 경제학부 앞 미사키초... 도로가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 물리적으로 흔들렸는데, 니혼대 전공투는 단순히 그 압도적인 동원력이나 기동대, 무장 우익을 상대로 한 실력행사에 강했다는 점에서만 대단했던 게 아니다. 니혼대 투쟁은 학생 대중의 정의감과 잠재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시킨 투쟁이었으며, 그 의미에서 에누리 없이 전후 최대의 학생운동이자 최고의 학원투쟁이었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대단했다. 지금도 눈물이 난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전투에서뿐만 아니라 운동을 조직하는 면에서도 대단히 유능했다. (149)

즉 19세기 중엽에 물리학은 교과서화되는 중이었고, 무에서부터 흡수할 수 있는 문호가 형성되어 있었다. 바로 그 타이밍에 일본이 근대화를 개시하여 서구 과학 학습을 시작했던 것이다. 더욱이 그 시기는 완전히 새로운 20새기 물리학인 원자 원자핵 물리학,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출현하기까지는 아직 조금 시간이 있었다. 마침 그 시기에 서구 물리학의 저작과 흡수에 착수한 일본에게는 서루에 비교적 빨리 다가갈 기회가 남겨져 있었던 셈이다. 이리하여 일본의 이론물리학 제1세대라고 할 만한 나가오카 한타로...나 이시하라 아쓰시...가 정말 겨우겨우 첨단에 손이 닿을 정도의 작업을 할 수 있었고, 후속세대인 유카와 시대키나 아사나가 신이치로가 최첨단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일본의 개국이 반세기 빨랐다면, 혹은 반세기 늦었다면 일본의 물리학이 이토록 급속히 서구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167)

전시하에서는 많은 이공계 학생이 절대적 천황제와 국가주의 사상 아래 국가를 위해 일신을 바치도록 교육받았다. 전후에 주권재민의 민주주의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아마도 대다수 학생은 일신을 바칠 대상을 기업으로 바꾸어 의욕을 가지고 정력젹으로 일했을 것이다. 기술자란 기술 자체에 관심을 가지므로 사상적인 갈등도 별로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제국헌법에 의한 전시 중이든, 신헌법의 전후든 상관없이 눈앞의 일에 자기 지식과 재능을 쏟은 ‘성공자‘의 ‘성공담‘이 각광을 받고, 전전과 전중의 과학 교육이 전후에 과실을 낳았다는 이런 식의 값싼 스토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되고, 나아가 전시의 기술자 교육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흔히 외치곤 한다. 그에 대해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렇게 해서 전전과 전중에 발생한 공학 이학 교육의 전쟁책임을 불문에 부치고 있다는 점이다. (211)

‘과학‘은 가치중립적이고 전쟁 때나 평화 시에나 파시즘에든 데모크라시에든 똑같이 유용하다는 논의가 가능하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파시점에 협력하는 것과 데모크라시에 협력하는 것은 똑같지 않다. 전시하에 전쟁 수행을 위한 과학 진흥을 운위하던 과학자가, 전후가 되어 상황이 바뀌니까 별 심각한 반성도 없이 이제는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과학 진흥을 말하는 따위는 내게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 식이라면 상황이 바뀌면 또 간단히 바뀌게 될 것이다. (215)

...... 무리학의 기본법칙은 이와 같이 그대로의 자연에는 있을 수 없는 인위적으로 이상화된 상태, 즉 현상의 본질적인 부분만을 부각하기 위해 환경과의 상호작용, 환경과 물질 에너지 운동량 간의 교환을 차단하고 자연 과정에서 비본질적 요인으로 판단되는 요소를 제거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현상의 법칙으로 만들어졌다. (229)

이러한 예를 보면 기술에 대한 유일하게 유효한 비판은 ‘외재적 비판‘, 다시 말해 ‘이해가 느린 비전문가의 완고한 비판‘이라 했던 무라오 고이치나 우이 준의 지적...이 역시 핵심을 찌르고 있는 것 같다. (238)

만약 대학의 개개 학문분야가 직접 국가 내지 기업의 보조를 받아 이러한 자금원과의 계약관계를 갖거나 확대하거나 하면 그 결과가 어떠한 것이 될지는 거의 자명하다. 이렇게 대기업체제에서 관심을 받은 테마가 대기업체제의 필요에 반응하면서 편중된 성장을 할 뿐만 아니라, 그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계약 상대인 정부기관이나 기업의 목표에 갈수록 공명하게 될 것이다. ... (256)

도쿄대 투쟁의 뚜렷한 특징은 특히 대학원 차원에서 대학에 대한 어떠한 비판이든 그 비판이 동시에 대학공동체를 뒷받침하던 자신들 자신에게도 향한다는 사실을 자각했던 것, 혹은 그 자각을 요구했다는 점에 있다. (261)

따라서 우리의 투쟁은 연구실 운영의 민주화를 추진하거나, 대학 운영에 대한 대학생과 대학원생의 참가 권리를 인정해 달라는 차원의 문제에서 얼마간의 타협을 이끌어 내 승리로 총괄하고 자기당파의 세력 확대에 운동을 집약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학의 연구와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를 요구했던 것이다. (265)

그리고 지금 국립대학에서 인문계, 사회학계 학부 ‘폐지‘ 전망을 비롯한 난폭한 논의가 문부과학성에서 나오는데, 그 모델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전시하에서 만들어진 오사카제대와 나고야제대이며 그것은 바로 전쟁 수행을 위한 대학이다. 그 전쟁이 군사적인 것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본질적으로 차이는 없다. (272)

보석이 되었을 때 앞으로도 물리학 학습은 계속하리라고 생각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물리학 학습은 그만둘 수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연구실로 돌아갈 마음은 없었다. 물리학 학습은 어디에 있더라도 계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81)

원전에 대해서는 가끔 반대의 견해를 표명해 왔지만, 3.11 후쿠시마를 막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 전쟁과 파시즘의 전야처럼 되고 말았다.
젊은 시절 우리는 패전 이전을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 왜 일본의 그런 전쟁이나 파시즘을 막지 못했는가를 물어 왔다. 솔직히 똑같은 말을 우리에게 지금의 10대나 20대 사람들한테서 듣지 않을까 생각한다. ...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결과적으로는 3.11의 파국을 막지 못했다.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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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로버트 K. 레슬러 지음, 손명희 외 옮김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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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장 한장이 잘 쓰여진 글이고 그들 사이의 흐름도 좋다. 흉악범죄와 관련하여 많이 배웠고(예:체계적/비체계적) 그 범죄의 원인이 환상이며 이 환상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허락이 아니라 용서를 구하는 식으로‘ 관료주의에 맞서며 평생 새 길을 닦은 한 공무원의 회고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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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로버트 K. 레슬러 지음, 손명희 외 옮김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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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모습은 또다른 충격이었다. 그는 원래부터가 검은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빼빼마르고 이상해 보이는 젊은이였지만, 내게 정말로 충격을 준 것은 그의 눈이었다. 나는 그 눈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의 눈은 마치 죠스 영화에 나오는 상어의 눈처럼, 눈동자가 아닌 검은 점일 뿐이었다. 그 눈은 면담을 마친 뒤에도 오래도록 나를 쫓아다닌 악마의 눈이었다. 나는 그가 정말로는 나를 보지 않고 나를 꿰뚫어 멍하니 내 뒤쪽을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그는 공격적인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는데, 손에는 플라스틱 컵을 하나 들고 있었다. (30)

범인상 분석을 배우는 일은 흉악범, 특히 연쇄살인범들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부였다. 돈과는 무관하게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범인들은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통상적인 범죄자들과는 근본적으로 질이 다르다. 살인범, 강간범, 유괴범들은 그들의 범죄에서 금전적 이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하지만 때로는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정서적 만족을 추구한다. 때문에 그들은 통상적인 범죄자들과 다르고, 그 때문에 나는 그들이 흥미로웠다. (42)

그러나 일반인은 연쇄살인범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범인을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인물로 여긴다---여느날에는 정상이었다가 보름달이 떠오르면 광기에 사로잡혀 머리칼이 자라고 송곳니가 튀어나오고 다른 희생자를 찾아나서게 될 거라는, 그러나 연쇄살인범들은 절대 그런 게 아니다. 그들은 환상에 사로잡혀 있고, 그들의 마음 속에는 환상의 일부가 되어 다음번 살인을 부추기는, 충족되지 못한 경험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이 연쇄살인범이라는 용어 뒤에 숨은 진정한 의미이다. (43)

하지만 나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고 법집행 분야 밖에 있는 여러 전문가들이 우리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줄 수 있었다. 내가 전문적인 모임에 참석하고 나중에는 연사로 초대를 받아 경찰관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시야가 더욱더 넓어진 것이 사실이었다. 심리학자들, 정신병학자들, 흉폭한 범죄의 희생자들을 적극적으로 돌보는 사람들, 그리고 정신 건강을 다루는 다른 전문가들을 만남으로써 나는 독자적으로 하고 있던 연구에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는 계기를 얻었다. (47)

그것은 면담을 끝내기에는 멋진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고, 지금도 믿지 않는다. 어떤 여자도 그의 문제를 풀어주거나 살인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 그에게는 부적당한 점이 너무도 많다. 그리고 그의 문제점들은 여자들에게 퇴짜를 맞거나 하는 일보다 훨씬 더 깊이 내재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성과 처음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나이에 표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환상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가 여자와 성숙한 관계를 맺지 못한 것은 그러한 환상 때문이었고, 그 환상을 구체화한 것은 행동이었다. 내가 면담했던 그렇게도 많은 범죄자들처럼 그 역시 살인범으로 자라난 것이다. (90)

이러한 살인범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어떻게 살인자가 되었느냐 하는 세부사항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먼저 정상이었던 사람이 35세를 넘어가면서 갑자기 사악하고 파괴적인 살인자로 전락하는 일은 절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한다. 살인의 전조가 되는 행동은 살인범의 삶에서 오래 전부터---어린 시절부터---존재하고 진전되어 온 것이다. (92)

다른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능력은 유년시절에 시작되고 10대 이전에 강화된다. 하지만 그 능력이 처움부터 없고 10대 이전에 긍정적으로 감화되지 않는다면, 사춘기에 이르렀을 때쯤에는 때가 너무 늦기 십상이다. 비록 ‘튀는‘ 행동이 상실이나 강간은 아닐지라도, 그것은 기능부전의 다른 어떤 조짐일 것이다. 어린시절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완전히 정상적인 생활로 이행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학대의 사이클을 영속시킨다. 아이들을 범죄자로 키울 가느엇ㅇ이 높은 알코올 중독자인 어머니나 폭력적인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기능부전인 성인들은 범죄적인 환상과 행동이 싹트는 온실 환경을 만들어냄으로써 그들의 자녀와 사회에까지 손상을 입힌다. (104)

전에 살인범의 정신을 연구했던 학자들 대부분은 난폭한 행동의 뿌리가 어린시절에 받았던 충격에 있다고 생각했다. 즉, 어렸을 때 성폭행을 당한 사내아이는 자라서 여자를 강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수행한 면담에서는 강간범이나 살인범이 모두 어린시절에 성폭행을 당했던 것은 아니었다. 난폭한 행동을 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어린시절의 충격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을 키우는 데 있다. 살인범들은 자신의 환상으로부터 살인 동기를 부여받는다. (105)

네번째이자 마지막 단게는 범행 후 행동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이 단계가 상당히 중요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떤 범죄자들은 범행 당시의 환상을 지속시키기 위해 살인 사건의 수사에 끼어들거나 다른 방법으로 범죄와 계속 관련을 맺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142)

내 짐작으로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회에는 변하지 않는 어떤 일정한 비율의 비체계적 살인범들---상당한 정신착란이 있고, 체포되거나 살해될 때까지 이따금씩 살인극을 자행하는---이 항상 존재해 왔던 것 같다. 그러나 체계적인 살인범들의 숫자와 비율은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회가 점점 더 유동적으로 변하고 대량 살상 무기를 입수하기가 쉬워짐에 따라 반사회적 인물들이 강탈과 살인 환상을 실현할 능력 또한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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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신호 - 무시하는 순간 당한다 느끼는 즉시 피할 것
개빈 드 베커 지음, 하현길 옮김 / 청림출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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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라는 선물‘이라는 원제를 기억해야 책 전체의 짜임새가 더 잘 드러남. 열 사람이 한 도둑 못 막는다는 식의, 폭력은 불가측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과 자포자기에 대한 대반박--폭력은 예측/예방할 수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중반)과 미디어(후반)에 대한 통찰은 특히 널리 공유될 필요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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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신호 - 무시하는 순간 당한다 느끼는 즉시 피할 것
개빈 드 베커 지음, 하현길 옮김 / 청림출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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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내가 사형 찬성론자여서 더 많은 사형을 주장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형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이 책의 핵심인 다음과 같은 의문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로 진지하게 범죄와 폭력에 맞서 싸우고 있는가?‘ (21)

우리는 폭력이 우리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 어딘가에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폭력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한 이를 피하거나, 연구하거나, 예상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신호가 없으면 그 신호를 읽지 못한 데 따른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폭력이 아무 경고도 없이 주로 다른 사람들에게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한, 이런 편한 통념 속에서 피해자들은 고통받고, 범죄자들은 승승장구한다. (30)

"아니요"는 절대 협상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아니요"라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당신을 지배하려 애쓰는 중이기 때문이다.
......
나는 사람들에게 "아니요"가 완전한 문장이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권한다. (97)

남자와 여자가 안전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은 이해가 간다. 남자와 여자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성별 간에 극적인 차이가 있다는 이런 간결한 서술을 어디서 처음 들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말이다. 남자들은 속으로 여자들이 자신을 비웃을까 봐 두려워하는 반면 여자들은 속으로 남자들이 자신을 죽일까 봐 두려워한다. (101)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우리가 예측하려는 사람의 형태가 아무리 정도를 벗어났다 해도, 그 사람과 당신 혹은 당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아무리 다르다 해도, 당신은 그 사람에게서 당신 일부를, 당신 자신에게서 그 사람 일부를 찾아내야 한다. 매우 중요한 예측을 할 때 당신은 예측 대상과의 공통점을, 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낼 때까지 살펴야 한다. 그것이 그 사람이 인지하고 있는 상황을 볼 수 있도록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121)

"내가 창 한 자루를 어둠 속으로 던졌다고 상상해보라. 그게 내 직관이다. 이제 창을 찾으러 정글 속으로 사람을 보내야 한다. 그게 내 지성이다." (132)

그런 경향은 점점 더 증가하는 추세다. 언론에 의존하는 정도가 심해, 전국적인 보도 뒤에는 그와 유사한 사건이 몇 건 더 발생하리라 예상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그런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누가 저질렀다고 설명하는 뉴스를 보면, 자신과 같아 보이는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그리고 결국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던 일을 행동하게 된다. (230)

여자들이 보호 명령을 받아내려 했거나 청문회 직전이었던 법정에서, 많은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왜일까? 살인범들이 거부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살인범들은 거부가 사적으로는 많이 힘든 정도로 끝나지만, 공개적으로는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남자들에게 거부란 자신의 정체성과 남의 눈에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포함해 자아 전체에 대한 위협이고, 이런 면에서 그)들의 범죄는 ‘자아를 방어하는 살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276)

나는 선택 사항들 중 구타, 폭행, 주거침입, 그 밖의 다른 위법 행위 혐의로 체포하는 것과 같은 사법기관의 개입을 훨씬 선호한다. 이런 것들이 접근 금지 명령 위반으로 체포되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한가? 법률 위반으로 기소되는 것은 사법제도 대 법률 위반자의 관계를 형성하는 반면 접근 금지 명령은 학대자 대 그의 부인이라는 관계를 형성한다. 많은 학대자가 법정 명령을 받아 자기 피해자의 지배하에 놓이는 것, 즉 여자가 남편 행동을 지배하려 한다는 생각을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 형세를 역전시켜 우위에 서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사법제도가 구타 같은 범죄 혐의로 기소하면 이는 아내의 행동이 아니라 남자의 행동이므로 예측 가능한 결과가 기대된다. (281)

사소한 대화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상은 아주 중요한 시험이다. 브라이언은 캐서린이 고상하게 보이고 싶어서인지 "아니요"라고 했지만, 좀 더 설득하자 굴복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이다음에 한 단계 더 의미 있는 것을 시험할 테고, 점점 더 나아가 마침내 지배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낼 것이다. 마실 것에 관한 대화는 나중에 이뤄질 데이트에 관한 대화, 헤어짐에 관한 대화와 동일하다. 말로 하지 않았지만, 이는 브라이언이 운전하고 캐서린이 승객이 되겠다는 합의다. 문제는 캐서린이 이 합의를 재협상하려 할 때 발생한다. (307)

암살범이 섬뜩하고 특이할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암살범의 동기와 목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암살범은 남들이 알아주기를 원한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 즉 중요한 인물이 되기를 원한다. 어린 시절에 그런 느낌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어른이 됐을 때 그런 방법을 찾는다. 이는 마치 평생 영양실조에 시달리다가 한 번의 과식으로 이를 해소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 (361)

페리 사건은 가장 공적인 범죄조차 가장 개인적인 문제에 의해 동기가 부여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당신이 대량 살인범이 작성한 죽음의 명단에 올라가지 않을 가능성이 월등히 놓지만, 나는 이 사건을 폭력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그리고 뉴스에서 다루는 선정적인 기사 속의 인간적인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논의했다. 텔레비전에서 이런 살인 사건을 당신이 이제 막 읽은 상세한 설명이나 아무 관점도 없이, 일차원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부당한 두려움을 더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407)

들판을 갈지자로 내달리는 작은 동물을 보면 아무런 위험이 없는데도 두려워서 그런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갈지자로 움직이는 것은 위험 신호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일종의 전략이고, 예방책이다. 두려워하며 그 상태로 계속 있는 것이 파괴적인 반면 예방책은 건설적이다. 두려워하고만 있으면 공포를 초래하고, 공포 자체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우려하는 결과보다 더 위험하다. 암벽등반가와 바다에서 장거리 수영을 하는 사람은 자기를 죽이는 것이 산이나 물이 아닌 공포라고 말할 것이다. (411)

텔레비전 뉴스가 어떻게 작동하고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당신의 안전과 안녕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첫째, 범죄를 두려워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가 되는 한 형태다. 그러나 거기에는 실질적인 문제가 더 많이 포함돼 있다. 지속적인 정보와 긴급 사항에 노출된 결과 신경쇠약증에 걸린 우리는 뉴스의 짧은 문구와 생존 신호를 구별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뉴스가 정보 전달이 아니라 선정선만 추구하다 보니, 실제로 우리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것에 관해 왜곡된 시각을 갖게 된다.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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