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고전을 읽는가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소연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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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 속의 여러 오디세이아

<오디세이아> 안에는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 전에 이미, 그의 이야기를 서로 다른 내용으로 전파하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한다. 반면, 오디세우스가 10년 세월 동안 맞닥뜨린 가장 큰 위기들은 모두 귀향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망각과 관련이 있다. 심지어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고향에 도착하고도 그곳이 진짜 고향임을 알아보지 못하며(여신의 도움으로 곧 정신을 차리지만), 그가 이렇게 본래의 자신을 잊은 것 같은 순간에 그의 입에서는 우리가 아는 오디세이아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사실 여러 에피소드에서 드러나듯이 그는 노련한 거짓말쟁이이기도 하다.

<오디세이아>가 단순한 여행기, 모험담, 환상기가 아니라 많은 가능한 오디세이아를 품고 있는(으면서도) 유일한 오디세이아가 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디세우스가 단순히 여행을 떠났다는 데 있지 않고, 제 자리로 돌아가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한다는 데 있다. 그의 나아감은 돌아감이며, 이를 위해 각종 거친 경험과 고통과 고독모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그것에 농락당할지라도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잊지 말아야 했다. 이러한 삶의 여정을 핍진하게 그려냄으로써 <오디세이아>는 서양문학사에서 길이 빛나는 원형서사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Ø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작품

<오디세이아>

 

Ø  참고할 작품

  <일리아드>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

이 작품은 정당성 없는 전쟁에 속아서 동원된 뒤(그러니까 정당한 대의명분은 적에게 있다) 전투에서 참패하고 지휘관도 잃은 채 오직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나, 어딜 가도 그곳의 삶을 파괴하는 집단적 위협으로만 비춰질 수 밖에 없는 1만명의 군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군인들은 한 마디로 농사를 망치는 메뚜기 떼와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비참한 현실에 대한 절망이나 억울함이란 한 마디도 비치지 않은 채, 군인으로서의 규범을 지키며 오직 눈 앞의 상황을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최상의 방법만을 논한다. 바로 여기에 이 작품의 위엄과 현대성이 있다. 전쟁을 겪은 칼비노 세대는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어쨌든 이런 실용적인 윤리(장차 헤밍웨이의 소설에서 탁월한 표현을 얻은)야말로 현실에서 택할 만한 유일한 것이며, 그 윤리를 떠받치는 것은 다만 공허에 대한 감각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이해 위에서 이 책은 현대 독자들에게도 진실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고통의 표상이 되는 것이다.

 

Ø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작품

<아나바시스> à <페르시아 원정기>, 천병희역, 도서출판 숲, 2011

 

Ø  국내에 번역된 크세노폰의 작품

<키로파에디아: 키루스의 교육>, 이은종역, 주영사, 2012

<헬레니카>, 최자영역, 아카넷, 2012

<그리스 역사>, 최자영역, 안티쿠스, 2012

<소크라테스 회상>, 최혁순역, 범우사, 1998

 

Ø  참고할 작품

  T.E.로렌스의 <지혜의 일곱 기둥>

  비교에 쓰이는 다른 작품들은 모두 검색이 안 됨, 국역본 없단 말.

 

 

오비디우스와 우주의 인접성

이 책은 신들이 사는 세계를 마치 로마 시민들의 생활을 소개하듯 세심하고 정확하게 소개하며, 그 반대 방향으로도 일한다. 즉 지상세계와 천상세계의 인접성, 그리고 신-인간-자연 간 상호 작용이 이 책의 주제이다.

서술의 톤은 도덕을 어렴풋이 환기할 뿐 담담하며, 이야기는 이야기 속 이야기를 통해 끊임없이 증식한다. 각 에피소드는 다양한 운율을 따라 속도감 있게 흐르고 이미지는 사라지기 전에 얼른 다음 이미지를 불러낸다. 이 편력하고 분기하는 운동은 현재형 동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느닷없는 호격으로 리듬을 얻는다. 때로는 세부 묘사에 집중하기 위해 운동을 늦추기도 한다. 이런 서술방식을 통해 변신(갑작스러운 육체의 변형)이라는 신화적 현상은 물질적으로 자연스럽고 견고하게 표현된다. 환상이 아니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이 현상, 변신(이를 테면 인간에서 나무로, 혹은 돌고래로)이 그렇게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것은, 신과 인간과 자연은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통일적으로 파악될 수 있다는 철학을 전제로 한다.

 

Ø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작품

<변신 이야기>, 2, 이윤기역, 민음사, 1998

 

Ø  국내에 번역된 오비디우스의 작품

<로마의 축제들>, 천병희역, 도서출판 숲, 2010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 김원익역, 에버리치홀딩스, 2010

 

 

하늘, 인간, 그리고 코끼리

칼비노의 설명으로 볼 때, 폴리니우스의 『자연사』는 중국의 『산해경』 류의 책인 듯하다.

이 책은 우선 기상천외한 (상상 속) 우주의 구석구석을 날카롭게 관찰하며 신에 대하여도 탐구하는데, 그 탐구를 따라가 보면 신은 어쩐지 인간보다 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은 자살도 못하고 이성(理性)에 반하여 행동할 수도 없지 않나. 다음 장은 인간. 이 장에서 우리는 듣도 보도 못한 별 희한한 사람들예를 들면 결혼할 때면 성()이 바뀌는 사람들, 개의 머리를 한 사냥꾼들에 대한 객관적기록을 읽게 된다. 이 기록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같이 불확실한 과정을 거쳐 연약한 상태로 태어나서 결국은 죽음을 통해 부재로 돌아가며, 그들의 행복은 결코 길게 보장되는 법이 없다.

이제 이 책은 “인간성에 대한 소논문을 끝내고 다른 살아 있는 생물체를 연구하기 시작”하는데, 그 생물체는 바로 코끼리이다. 코끼리는 가장 큰 동물이고 정신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란다. 이 장은 코끼리에 대한 익히 알려지지 않았던 정보들을 “단 하나의 단어도 낭비하지 않으면서” 제시한다. 예를 들어, 코끼리의 천적은?

용이다.

 

Ø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작품

<자연사>

 

Ø  국내에 번역된 폴리니우스의 작품

  없는 듯.

 

 

네자미의 일곱 공주

중세 페르시아의 고전인 <일곱 공주>는 일부다처제 문화에서나 가능한 화려한 서사를 자랑한다. 바흐람 왕이 7개 대륙 지배자들의 딸인 7명의 공주와 동시에 결혼하고, 한 주의 7일을 각각 상징하는 7명의 신부는 조화롭게도 매일 색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며 특수한 능력을 발휘한다. 책에는 바흐람 왕의 놀라운 업적과 행적, 그와 7명의 신부들이 펼치는 감각적인 육체 활동, 그리고 7명의 신부들이 들려주는 환상적이면서도 때로 교훈적인 이야기들이 좀처럼 끊이지 않는다. 서구 문학에서 아무리 환상적이고 웅장한 작품들 가져다 대어봐도 이 놀라운 언어의 테피스트리이자 은유의 대우주 앞에서는 결국 간결하고 절제되어 보이기 마련이다.

 

Ø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작품

<일곱 공주>

 

Ø  국내에 번역된 카르다노의 작품

  Nezami로 검색 결과, 0.

 

Ø  참고할 작품

  마리노Marino <아도네>, 바실레Basile <판타메로네> à 귀찮아서 검색 안 함.

 

 

티랑 로 블랑

칼비노는 이 장에서 기사도 로망이 서유럽 각국에서 어떻게 사라져갔는지를 짚어본다.

<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는 기사도 로망을 불태우는 것으로 기사로서의 삶을 끝내는데, 이 때 사제의 손에 의해 불구덩이에서 구원 받는 몇몇 텍스트들의 하나로 스페인 최초의 기사도 로망인 <티랑 로 블랑>이 언급된다. <티랑 로 블랑>의 첫 장은 기사라는 인간 유형은 바로 기사도 로망을 읽음으로써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기사도 로망이라는 장르의 쇠퇴는 곧 기사라는 인간의 종말을 의미하게 된다. <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가 숨쉬고 있는 라 만차의 공기는 이미 기적과 도덕적 가치의 세계와 맨 정신의 현실의 섞임을 용납하지 않고 있었고, 그래서 돈키호테는 자신을 기사로 길러준 로망들과 함께 그렇게 극적으로 사라져 버릴 수 밖에 없었다. 현실에서 기사도 로망과 기사의 별종은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영국에서 천천히, 덜 극적으로, 그러나 결국 확실히, 일어났다.

11-13세기에 나타난 기사도 로망은 최초의 대중서로서 당대 사람들의 삶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신곡>은 세계문학의 반열에 오른 작품 중에서 최초로 이 점을 증언한다. 그 책에서 프란체스카는 기사도 로망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음을 고백하고 있다.

 

Ø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작품

<티랑 로 블랑>, 검색 안 됨

 

Ø  참고할 작품

  <신곡>

 

 

<광란의 오를란도>의 구조

<사랑에 빠진 오를란도>의 속편으로서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한 아리오스토는 32년 동안 작업을 하고도 작품을 다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끊임없이 교차하고 지그재그로 분기하는 다중심적이며 공시적인 구조를 갖고 있어 어떠한 요약도 무효하며 어떤 독법(讀法)도 우월성을 주장하기 어렵다. 책의 어느 부분을 펼치더라도, 그 부분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필요 없이, 독자는 독서를 즐길 수 있다. 이러한 형식적 구조편력하는 운동성는 그 내용의 구조와도 맞물린다. 이 책에는 주요한 이야기 줄기 몇 개가 동시에 돌아가는데, 하나가 드디어 끝날 것 같으면 이야기의 무게 중심이 또 다른 새 줄기로 옮겨간다. 이렇게 이야기의 다리를 건너고 강을 뛰어 넘으며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다 보면 우리는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미로 같은 내면 속에 들어와 있음을 깨닫게 된다. 독자들은 이 거대한 서사시가 벌이는 놀이 속에서 결국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Ø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작품

<광란의 오를란도>, 김운찬역, 아카넷, 2013

 

 

아리오스토의 명시선

아리오스토 탄생 500주년을 맞아 쓰여진 이 글에서 칼비노는 <광란의 오를란도>에서 인상적인 시구들을 모아 초미니 오리오스토 명시선을 꾸민다. .

 

 

지롤라모 카르다노

칼비노는 햄릿 2막에서 햄릿이 읽고 있던 책이 지롤라모 카르다노의 <위안>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위안>에서 카르다노는 끊임없이 (죽음과 같은)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당시 의학자로서 전 유럽에 명성을 떨쳤지만 사실 그의 천재성은 꿈, 마술, 운명, 악마와 같은 주변적이고 주관적인 것을 탐구하는 데 바쳐진 그의 강박적이면서 선구자적인 노력에 있었다. 이 탐구의 과정은 똑같이 강박적으로 행해진 그의 글쓰기를 통해 남았다. 그는 삶의 모든 면면들을 언어를 통하여 포착하려 하였으나, 언어 자체도 흘러가고 달아나는 본성을 지니고 있었으니, 그의 글쓰기는 24시간 쉴 틈이 없었다. 전문분야에서도 그는 광범위한 오지랖을 발휘, 회화만 제외한(이건 다빈치에게 맡긴 듯 하다) 모든 분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200권의 저서로 남겼다. 라틴어만이 책의 언어로서 불멸할 것이라는 생각에 서투르지만 라틴어로만 글 쓰기를 고집하였고, 도박에도 일인자이어서 의사를 그만두고 도박꾼이 될까도 진지하게 고민했단다. 초보적 과학에 기반한 조화로운 통일의 시대인 르네상스기에 그는 무한히 다양한 사물들, 끊임없이 스쳐 지나가는 환영들, 어떤 것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특이한 개인들사이를 가로지르는 우연과 필연의 교차에 대해 사유하려 하였다. 그가 이탈리아어로 글을 썼다면 분명 16세기 이탈리아 문학의 위대한 기재(奇才)로 남았을 것이다.

 

Ø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작품

<위안>, <나의 생애>

 

Ø  국내에 번역된 카르다노의 작품

  없어!

 

 

갈릴레오와 자연이라는 거대한 책

갈릴레오 사상의 특징은 세계, 자연, 우주는 거대한 책이라는 오래된 은유에 기댔다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이루는 알파벳기본 요소들이 있으며, 이 알파벳들의 끊임없이 다양한 배열을 통하여 우주의 만물을 다 재현할 수 있는 조합체계가 있다는 주장에 있다. 이는 우주에 관한 연구인 철학, 그리고 그 철학을 뒷받침하는 과학, 그 과학의 알파벳이 되는 수학과 기하학에서도 모두 적용되는 원리이다. 수학은 숫자, 기하학은 삼각형, 사각형 등 도형들을 제 알파벳으로 삼는다.

  이 알파벳론은 고정된 형체의 우월함을 주장하기 위해 채택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를 위해 도입되었다. 갈릴레오는 매끈하고 변치 않는 고정된 우주의 상()이 아니라 울퉁불퉁하고, 질적으로 무한하게 다양하며, 개별적인 것들의 생성과 쇠락을 통해서만 대략적인 영구성을 획득하는 우주상이 더 고귀하다고 보았다. 또한 이 알파벳론은 일종의 잠재태로서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것이지 과거로써 미래를 구속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는 우주라는 거대한 책을 알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작은 책을 죄다 읽고 기억해야 한다는 당대의 방법론에 필사적으로 저항하였다. 이렇게 당대의 철학과 갈릴레오의 철학을 각각 대변하는 두 주인공 사이의 언어를 통한 복싱이 바로 <대화>이다.

 

Ø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작품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두 가지 주요세계관에 대한 대화>(일명 <대화>)

 

Ø  국내에 번역된 갈릴레이의 작품

  <갈릴레오가 들려주는 별이야기시데레우스 눈치우스>, 장헌영 역, 승산, 2009

  <새로운 두 과학>, 민음사, 1996

 

 

달나라의 시라노

이탈리아에서 갈릴레오와 교황청이 싸우고 있을 때 파리에서는 또 한 명의 리베르탱이 자신의 공상과학소설을 통해 태양중심설을 옹호하고 나섰으니, 바로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다른 세상>이 그것이다. 17세기에 쓴 글들을 통하여 20세기 과학의 여러 발전상들을 이미 예견해낸 시라노는 (갈릴레오와 유사하게도) 루크레티우스의 원자론에 깊이 공감하였는데, 그 내용은 기본적인 요소들의 변화무쌍한 조합으로 만물이 만들어진다는 것으로써 현재의 DNA 유전학과도 맥이 닿는 부분이 있다.

당대의 과학지식과 사회에 대한 풍자, 구속 받지 않는 시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한 시라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개념들의 일관성이 아니라 지적인 인식에 감지되는 모든 자극들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자유와 재미였다. 당연히 <다른 세상>에는 성()에 대한 작가의 강렬한 관심 또한 담겨 있었다. 시라노는 살아 생전 작가로서 무명에 가까웠다. 이 책은 작가가 죽은 뒤에 작가의 자유분방함을 향해 쏟아질 비난의 화살을 염려한 마음 착한 친구의 자의적 도려내기를 거쳐 출판되었다. 후세의 독자들이 드디어 그의 매력을 발견한 것은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서였다.

 

Ø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작품

<달나라 여행>, <해내라 여행> à <다른 세상>, 장혜영역, 에코리브르, 2004 (원제는 다른 세상 또는 달의 국가들과 제국들)

 

Ø  국내에 번역된 베르주라크의 작품

  <다른 세상>말고 없어

 

 

로빈슨 크루소와 상인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에 관한 일기

대니얼 디포는 상인으로서 그리고 정치 논객이자 도덕적 교훈을 달고 다니는 설교자로서 부침이 심한 젊은 날을 보낸 뒤 모험가-실리주의자-모럴리스트로서 상당한 내공을 쌓은 60 가까운 나이에 소설로 전향하였다.

자전소설의 형식을 띤 <로빈슨 크루소>는 먼저 크루소가 태어나서 배를 타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지는데, 이 부분에서 도출되는 교훈(또는 반교훈)은 크루소가 규범에 순종하고 실리를 떠받드는 부르주아 상인의 덕목을 위반하고 모험과 환상을 좇았던 것이야말로 그가 장차 무인도의 고생살이로 떨어지게 된 근본적 이유라는 것이다.

이어 크루소의 배가 난파하고 그가 무인도에서의 삶을 꾸려가는 부분에서는 디포의 가식 없이 담담하고 세심한 묘사를 통해 크루소의 손에서 새로 태어나는 사물들과 그의 삶에 비추어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되는 사물들이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이 대목에서 도출되는 교훈은 인간의 위대함은 소박하면 소박한 대로, 거창하면 거창한 대로, 무엇이든 제 힘으로 만들고 운영해 보는 데 있다는 것이다.

크루소는 신도 종교도 자신의 난감한 상황을 설명하거나 개선하기에는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무인도에서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제는 무인도의 야만이 아니라 유럽의 문명이야말로 자신의 진실된 삶(땅에 발 딛고 제 손으로 삶을 꾸려가며 이웃을 용납하는 인간)을 위협하는 것임을 인식하게 된다. 이런 미묘한 심리를 간명하게 드러내는 문장들에는 디포 특유의 차분하지만 날카로운 유머가 넘실댄다.

 

Ø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작품

<로빈슨 크루소> 번역 본은 많음. 이 중 제일 나은 번역은?

 

Ø  국내에 번역된 디포의 작품

<로빈슨 크루소> 외에는 <몰이라는 매춘부이야기>(세계문학, 1996, Moll Flanders의 번역본인 듯) 밖에 못 찾았음.

 

Ø  참고할 작품, 자료

  몽테뉴 <수상록>: 종교에 대한 관용 부분

 

 

<캉디드>의 서술 속도에 관하여

<캉디드>가 독자에게 주는 기쁨은 무엇보다 그 속도와 리듬에 있다. 매 페이지마다 상상 가능한 각종 불행이 숨 가쁘게 쏟아져 나오고, 맥락 없이 등장하는(심지어 아까 죽었는데 아무 설명 없이 다시 나타나 걸어 다니는 인물도 있다) 많은 인물들이 기회만 주어지면 엎친 데 덮치는 식으로 자신의 삶을 후려쳤던 재앙들을 줄줄 읊어댄다. 세계는 카오스 그 자체. 낙천주의자 팡글로스와 결국은 악이 승리할 것이라 믿는 마르탱과 함께 이 세계를 여행하는 캉디드는 불행이 끝나는 유일한 곳인 앨도라도의 존재를 알게 되지만, 애석하게도 그곳은 안데스 산맥의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는 점이다.

그럼 이제 어찌할까? 악이 이기게 되어 있든 선이 이기게 되어 있든 신이 우주를 만들거나 만들지 않았든, 인간은 알 도리가 없다. 이 어설픈 세 여행자처럼 인간은 삶의 갖가지 고통과 위험에 맞서 버티고 또 싸울 뿐이다. 희망이 있다면 아무리 기관총처럼 발사되는 불행이라 해도 그 끝은 있다는 것이다(죽음). 이를 종합하는 볼테르의 입장은 이슬람교도 노인의 입을 통해 한 문장으로 전달된다: “우리의 밭을 가꾸어야 한다.” 그는 종교적 형이상학의 세계에 맞서는 의지적 자세와 실천적 노동의 윤리를 옹호하였던 것이다.

 

Ø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작품

<캉디드>: 여러 권위 있는 출판사에서 세계문학전집의 한 권으로 출판되었음.  

 

Ø  국내에 번역된 볼테르의 작품

<철학편지>, 이병애역, 동문선, 2014

<자디그, 또는 운명>, 이효숙역, 연대출판부, 2011

<관용론>, 송기형 외 역, 한기사, 2001

 

"자유롭게 읽는 그때에야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책을 발견할 수 있다." (15)

"디드로의 시학에서 중요한 것은 작품의 독창성이라기보다는 그 작품이 다른 책에 대해 차례대로 답하고 논쟁하며 그 책들을 완성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작가가 쏟은 모든 노력이 의미를 지니게 되는 과정은 그것이 놓여 있는 전체적인 문화의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자유로운 태도, 시종일관 발휘되는 유머 기질, 곡예처럼 이어지는 글쓰기로 규정되는 스턴의 위대한 재능은 디드로뿐 아니라, 낭만주의적인 아이러니로 이어지는 세계문학 전체에 전수되었다." (165)

"당시의 베네치아는 그러니까 카를로 골도니의 작품에서 바로 뛰어나온 듯한 요지경 속 인물들 모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무대였다. 산수 계산에 푹 빠져 있던 염세적인 수도승 오르테스는, 초상화에서 차분한 자태로 앉아, 머리엔 가발을 쓰고, 뾰족한 턱에 약간은 삐딱한 웃음을 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자기가 보기에는 너무나 간단한 것을 전혀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온통 주변을 둘러싸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그럼에도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면서 남들이 잘못 알고 있는 오류에 대해 동정하고 있는 모습, 그러다 마침내는 광장 저편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사라져 가는 모습이 연상되지 않는가." (174)

"<연애론>을 읽기에 앞서 우리는 스탕달이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대상을 분류하고 목록화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 그러나 스탕달의 정신세계는 체계적인 정신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그 스스로 가장 정돈된 저작이 되기를 희망했던 책에서조차 그는 체계적인 정신에서 끊임없이 벗어나 있었다. 그가 지킨 엄격함은 다른 종류의 것이다. 그의 말은 그 자신이 ‘결정 작용’이라 부른 기본 개념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 이로부터 '행복’, ‘아름다움’과 의미론적으로 가까운 영역뿐만 아니라 사랑의 명명법 아래 확장될 수 있는 의미 범위 전반을 탐색하게 된다." (182)

"아무리 훌륭한 사냥개라도 사냥꾼의 총성이 울려야만 사냥감을 물어올 수 있다. 사냥꾼이 총을 쏘지 않으면 사냥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소설가는 주인공의 사냥개와도 같다." (192)

"스탕달이 옹호한 가치는 자신의 특수한 본질(과 한계)을, 주변 환경의 특수한 본질 및 한계와 비교하는 데서 나오는 존재론적인 긴장에 있다. 존재는 정확히 엔트로피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미립자처럼 어떠한 형태나 연결도 없는 순간과 충동으로 소멸하고 만다. 스탕달은 개개인이 각자 에너지보존법칙 혹은 지속적인 에너지 재생의 과정을 따라 자신을 실현하기를 원한다. 결국 어느 경우에든 엔트로피가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결국 우주에 은하수들과 함께 남는 것은 허공을 떠도는 원자들의 소용돌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수록, 이러한 자기실현은 더더욱 엄격한 하나의 명령으로 주어진다." (197-8)

"어떠한 텍스트를 주어도 그는 그 안에서 다른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그 이야기를 가지고 놀 것이다. 그러나 그 텍스트는 문학과는 어떠한 관련도 없는 텍스트여야만 한다. 이를테면 셔먼 장군 앞으로 온 고기 통조림 공급 상황 보고 문서, 네바다의 한 상원의원이 그의 투표자들에게 답하는 편지, 테네시 주 신문에 실린 논쟁, 주마다 실리는 농업 관련 기사, 번개를 피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독일어 판 안내서, 심지어 소득세 신고에 관한 문서처럼 문학 외적인 텍스트들 말이다." (238)

"오늘날 진정으로 현대적인 서사는 우리가 사는 시간이 (그 시간이 무엇이건 간에) 결정적이고도 무한히 중요한 순간임을 보여 줄 때에만 시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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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탄생 - 시대와 대결한 근대 한국인의 진화
최정운 지음 / 미지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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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서로서 약점이 여럿 있고 토론에 부칠 거리들도 부족하지 않다만, 이런저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 책이 전개하는 사유는 진솔하고 충실하다. 우리가 지금 이모양이꼴인 것은 현대한국의 직접적 전통이 되는 백여년전 한반도의 경험부터도 지적 정직과 성실로 뿌리까지 검토하지 않은 까닭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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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탄생 - 시대와 대결한 근대 한국인의 진화
최정운 지음 / 미지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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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이 사라져버린 경우라 하더라도 그 사연과 과정이 깊이 논의되어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사상사는 쓰여져야 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서만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다. 우리 자신을 알지는 못해도 그림자라도 흘끗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자신을 알지 못하고 또 알겠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우리 사회의 어느 분야도 안정될 수 없다. 우리 사회에 대해 최소한의 식견과 철학을 갖추지 못한 국민들은 대중 선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그 정치적 사회적 판단은 어린아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옅은 사회는 안정될 수 없고 발전할 수 없다. (18-9)

또한 신소설 작품들, 대표적으로 이인직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배경 현실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근거로 이인직은 당시 이완용의 개인 비서로 활약하며 한일병합 준비 작업을 비밀리에 추진했던 골수 친일파라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이는 학술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이다. 이러한 평가는 이인직이 의도적으로 당시 대한제국을 인간이 살 수 없는 땅으로 그려 놓았다는 것으로써, 이는 예술 자체를 부정하는 망언이다. 우리 '국학계'는 '친일파'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인종주의자들이었다. 친일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친일'을 하고 나라를 팔아먹을 운명을 타고난 괴물로 취급되었고 독자들은 이런 난센스를 묵인해왔다. 친일파에 대한 본격적인 인문사회과학적 연구는 단 한 차례도 제대로 이루어진 일이 없었다. (73)

그런가 하면 세상을 바꾸어보려는 사람들은 우선 자기 자신에 집중해야 했고 그런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그들의 삶의 모습을 결코 따라하지 않고, 에고를 만들고 목숨을 걸고 지키기 위해 외롭게 싸워야 했다. 최병도와 같은 그런 삶이 긴 세월 동안 지속된 경우에는 '독불장군'의 비사회적 인물, 나아가서 반사회적 인물이 되어갔다. 그들은 인간들이 함께 사는 '사회', '공동체'라는 것을 거의 평생 겪어 보지 못한 세대였다. 그들에게 공동체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 신화에 불과했다. 최병도라는 인물은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으로서, 에고 과대증과 같은 괴벽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와 같은 인물의 문제는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능력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역사의 심각한 문제였다. (132)

그들[일진회를 말함]의 핵심부는 복수를 원하는 동학 잔당이었고, 목표는 일본의 정복을 초청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목표 아래 일본군의 보호를 받으며 독립협회가 개발한 연설회, 시위운동과 여러 구경거리 등을 통해 대중을 동원하는 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우찌다 료헤이를 비롯한 일본의 흑룡회 간부들이 일진회의 취지를 들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조선 내에서 일본을 도와줄 세력을 기대하긴 했지만 막상 나라를 통째로 갖다 바치겠다는 말을 듣고서 말 그대로 믿을 수가 없어 여러 차례 확인 절차를 반복해야 했다. (151)

저항민족주의는 침략자 일본에 대한 적개심뿐만 아니라 '친일파'들, 즉 민족을 팔아먹는 반역자들에 대한 분노가 일차적인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사상적으로는 무엇보다 교육뿐만 아니라 투쟁을 통해서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개화민족주의자들이 당시 조선의 자연상태의 해결을 최대의 과제로 삼고 있었다면, 저항민족주의자들은 그 해결책으로 일본에게 주권을 양도하는 안을 제시한 친일적 사회계약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에 대한 투쟁을 민족주의의 근본적인 노선으로 주장한 사람들이었다. 3.1운동 이후 두 민족주의 노선이 갈등하기 시작했을 때 그 차이는 바로 이 시대에 이렇게 비롯된 것이었다. (159)

이형식이 진지하게 추구했던 것은 자신의 발전을 통해 조선 사회에서 자기 존재의 지위 확보하는 것이었다. ... 작품은 언뜻 사랑을 이야기하는 듯했지만 형식은 사랑에 빠지지 않았고 그 문턱에서 "이상한 불길"을 이용하여 자신을 성장시켜 나갔을 뿐이다. ... 형식은 공식적으로 선형과 미국 유학을 선택했을 때 부끄러운 일임을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었다. 형식은 불쌍한 조선 백성들의 환호와 자기 마음속에 불타는 그들에 대한 사랑에서 지도자이자 선생의 지위를 확인함으로써 열등감을 극복하고 짜릿함을 느꼈다. 형식은 민족의 선생이 되고 그와 처녀들과 신지식인들은 조선의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 등극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이 소설 밑바닥의 숨김없는 의미였다. 이형식은 구세주 '예수님'이 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지도자, 선생님, 즉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민족을 구할 지도자가 되기 위해 낯 뜨거운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우리 역사에서 개화민족주의자가 짊어져야 했던 운명이었을 것이다. (241-2)

구한말 동학 잔당을 중심으로 1백만 가까운 조선인들이 일진회에 가담하여 조선과 일본의 합방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합방 후 조선총독부는 일진회를 해산시켜 버렸고, 그들은 허탈감에 사로잡셨을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천도교에 합류하였다. 그러다 마침내 이들은 3.1운동에 참가하며 비로소 피눈물로 참회할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조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한때 너무나 힘든 삶 때문에 조선을 원망하여 다른 임금을 모시려 했던 반역이 또 다시 일제에 의해 배신당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뿌리와 조상에 대한 참회의 기회가 주어지자 북받쳐오는 감회를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 그 심층에서 우리 민족의 대다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우리 '민족'임을 '만세'로 고백하고, 피눈물로 회개하고, '한 민족'됨을 뼛속 깊이 느꼈다. (262)

그러나 김동인은 1920년대를 거치며 강한 인간은 신식 교육을 받고, 합리적으로 살고, 고백체로 잘 묘사되고,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개회인'들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 단적으로 근대 문학의 기법인 고백체는 약한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들을 약하게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기술이었다. ... 김동인은 기독교도로서 사랑을 좌우명으로 살고자 하던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시대에 사랑으로--어떤 사랑이라도--강한 인간이 되는 이야기는 제대로 써내지 못했다. 사랑을 어디다 쓸지 별로 아이디어가 없는 상태였다. 나아가서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가 우리 문학사에서 이룩한 업적의 결과인 내면을 장착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약한 자들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약한 자들이 왜 약한 자가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데 안성맞춤의 장치가 바로 내면이었다. (319)

1933년 이광수의 <유정>이 발표되자 강한 조선인을 만드는 비결이 드디어 공표되었다.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랑으로 욕망과 이성의 갈등이 시작되고 두 힘 사이에 상승 작용이 일어난다. 그리고 두 힘을 최대한으로 확대시켜 그 사람을 죽게 한다. 그러면 그 죽은 이의 영혼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주변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 것이고, 그들은 끝가지 싸우는 불멸의 전사가 된다. ... 심훈은 최초로 이를 간파한 천재였고 <상록수>에서 멋지게 활용하여 불멸의 전사들을 민족 운동의 전선에 바로 배치하였다. ... 소설에서 사랑은 점점 더 가혹한 시련의 과정으로 변해갔고 그 시련을 이겨나가는 과정과 마음가짐은 종교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다. 그 극단적인 예가 이광수의 <사랑>일 것이다. 사랑은 고행 그 자체로 연결되었고 작품은 더욱 더 엽기적으로, 자학적으로 변해 갔다. (427)

우리 근대사를 보면, 합일병합을 당할 시점의 우리 민족의 모습과 해방을 맞이했을 때 우리 민족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해방을 맞이한 그때, 우리 민족 대부분은 누구와도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고, 폭력도 테러도 어떤 수단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론 싸움은 대부분 오리끼리의 싸움으로 이어졌고 한국 전쟁 때도 그러한 생존의 능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1930년대는 조선의 지식인들에게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힘든 시기였지만 그들이 새롭게 매진한 창조의 길은 새로운 민족의 지평을 만들고 있었다. (430)

우리 근대사에서 강한 한국인이 나타나는 거대하고 심오한 문화적 전환은 그때 당시에는 표면에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문화 변동의 깊은 층위를 조사하면 뚜렷이 드러날 것이다. 이는 물론 일제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여러 정책에도 불구하고, 노예 상태에 처해 있던 우리가, 은밀히, 우리끼리 만들어 온 것이었다. 그들의 폭력에 끝까지 견디고 언젠가는 복수하고 말겠다는 원한을 쌓아갔으며, 그러한 복수의 의지는 우리를 강하고 독하게 만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춘원의 공로는 지대한 것이었다. 사랑은 핵심의 무공이었다. 그의 수많은 성격적 결함과 과실에도 불구하고 춘원은 스스로 자처해온 민족주의자로서의 그의 의무와 역할은 충실히, 성공적으로 수행하고야 말았다. (431)

... 하여튼 임꺽정은 근대에, 특히 일제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종류의 영웅이었다. 특히 이 소설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으며 중대한 요인으로 작동해온 '민중'을 말뿐이 아니라 피와 육신을 갖춘 살아 있는 영혼으로 창조했다는 점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임꺽정이 표출하는 반지성주의 또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와 문화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쳐 왔다. 식민주의의 유산으로서의 반지성주의는 우리나라를 정체성이 취약한 나라로 몰아왔다. 반지성주의는 우리나라를 생각 없는 짐승들의 세상으로 만드는 한편, 외국, 선진국의 학문과 사상에 기대어 살겠다는 지적 의존의 나쁜 습관을 심화시켜 왔다. (436)

주지하듯이 이 소설의 중요한 공헌 중의 하나는 그간 잃었던 우리말, 특히 민중의 말을 상당히 되찾았다는 점이다. 조선 사람, 특히 민중의 일상 대화에서 따뜻함과 유머 감각을 현실감 있게 되살리는 데 벽초가 유별난 관심을 보인 것은 임꺽정이라는 영웅을 내려 보내며 지상의 현실에 적응시키고 뿌리박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고유한 조선인의 언어와 생활 풍습을 되살리는 작업을 통해 벽초는 '양취 나는' 서양식 사실주의 기법, 예를 들어 고독한 주인공과 고백체를 극복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주인공의 속마음을 그의 고백을 통해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나누는 격의 없는 대화, 농담, 욕지거리 등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벽초 특유의 주체성을 형성해 간 것이다. 벽초가 보여주는 주체성이란 개인에만 속한 곳일 수 없다. 주인공 영웅이 속한 공동체 전체가 주체적이어야 했다. (447)

...'민중'이라는 말은 19세기 말에 일본에서 만들어져, 중국을 거쳐 식민지 조선으로 들어온 말이었다. ...... 그에[인민을 말함] 반하여 '민중'은 서양의 어떤 정치 언어의 번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말은 근대 서구 사상과 정치 언어들이 도입되어 널리 사용도히는 가운데 한자권인 동북아 삼국 간에 독창적으로 만들어지고 쓰여온 말이었다. 말하자면 '민중'은 동양의 전통문화에서 나온 말은 아니었고 서구 정치 언어의 번역어도 아니었다. 오히려 동북아 삼국의 지식인들이 근대에 창의적으로 만든 말이었고, 적어도 한국에서는 대성공이었다. (485)

단재가 언어로 '민중'이라는 말의 뜻을 명쾌하게 부각시켰다면 벽초는 이 말에 피를 돌게 하고 살을 입혀 우리의 눈앞에 '민중'의 영혼을 창조하였다. 사회의 밑바닥에 태어난 천상의 영웅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함께 지식인들 및 외부 계급의 지원이나 간섭을 배제하며 싸워나갔다는 이 이야기는 ...... 우리는 '민중'의 경우에 논리를 따지는 사상이 아니라 생명력이 넘치는 영혼을 창조하는 예술을 통해 표현된 사상의 힘을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임꺽정>이 보여주는 이러한 민중의 존재가 설득력을 얻었던 것은 전통적으로 한국 문화에서 '민중' 즉 가난한 농부들, 천민들이 자신들의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온 경험이 '민중'이라는 말과 인간상의 현실감을 높여주었기 대문인지도 모른다. ... 그리고 이 민중 영웅은 근대 서구인으로서의 변신술로 엄청난 생존력과 번식력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일본과 중국에서는 민중 영웅은 한국에서와 같은 변신술을 얻을 수 없었다. (496)

말하자면 반지성주의는 동학과 3.1운동 등 '민중의 등장'에서 영감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민중 자신들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반지성주의는 민중의 목소리가 아니라 민중을 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즉 민중의 맞은편에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499) ...... 말하자면 <임꺽정>이 드러내는 노골적인 반지성주의는 작가가 그러한 사상을 처음으로 만들어서 제시하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조선 사회 어디에나 퍼져 있던 생각을 전달하고 있음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사상은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부르짖는 사상이 아니라 남몰래 은근히 자신의 '다른 자아'에게 강요하는 격률인 것이다. (506)

그러나 한편 임꺽정의 반지성주의는 현대 우리 정치의 구조적 문제점들과 직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장기적으로 임꺽정 신화는 나르시시즘에 전염되어 임꺽정을 자신과 혼동하는 정치 '스타'들을 대량으로 양산해왔다. 지식과 지성을 경멸하며 타고난 능력과 직접 경험에만 의존하는 기형적인 독불장군 유형의 정치 영웅들은 우리 현대 정치인들 사이에서 우성의 종자로 번식해왔다. '원래 불의를 보면 못 참는다.'는 허세를 부리며 권력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 저항의 '스타'들은 우리 정치를 문자 그대로 '아수라'판으로 만들어 왔다. ... 이런 문제들은 우리의 '저항민족주의'의 관성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우리들이 그간 임꺽정 신화의 의미를 정확히 해독해내지 못한 채 탐독했기에 더욱 악화되었는지 모른다. ... 반지성주의는 지식과 지식인에 대한 불신과 의혹과 증오와 질투를 토앻 우리의 정체성 형성에 큰 장애가 되어 왔고 나아가서 개화주의자들의 '교육만능주의'와 단짝으로 결합되어 대한민국을 청소년들을 학살하는 최악의 '교육 지옥'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517)

나아가서 강한 조선인을 찾아 온 지식인들의 노력은 다른 대가도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민족의 본질을 찾는 선택의 핵심은 1920년대 춘원이 제안했던 도덕성 회복을 통한'민족 개조' 계획을 기각한 것이었다. 물론 이 선택을 우리가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당시 '홉스적 자연상태'의 상처가 생생한 상황에서 도덕성의 문제를 제쳐놓고 강한 조선인을 추구한다는 것은 사회적 조건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결코 비켜갈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도덕성의 문제는 한국인이 '해방'되었을 때 한국인의 첫 번째 특징으로 조우하게 될 문제였다. 해방된 한국인들은 너무나 거칠었고 '힘'에 대한 박탈감에서 '힘'의 추구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1930년대 춘원을 위시한 조선 지식인들이 이룩한 '강한 조선인' 추구의 대가였을 것이다. (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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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미래 자연과 인간 10
에드워드 윌슨 지음, 전방욱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도도>와 함께 읽기를 권한다. <도도>가 거시생태와 가시환경에 집중하였다면, 개미전문가의 글 답게 이 책은 미생물 등 미시환경을 포함하는 생태계 전체를 강조하며, 인간중심주의와 단기-특수이익편중으로 생태계를 위협하는 환경`주의`를 보편적 생태윤리와 실천모듈로써 극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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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미래 자연과 인간 10
에드워드 윌슨 지음, 전방욱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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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국이 발을 헛디디면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불안정한 거인이요, 나머지 인류가 무지하게 저지르고 있는 잘못의 선례가 되고 있기 때문에 잘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 중국이 자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여기서 얻은 교훈은 다른 여러 곳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그곳에는 맹렬한 속도로 인구를 늘려 나가면서 총체적으로 자국의 땅과 물을 탕진하고 있는 미국도 포함된다. (83쪽)

환경주의 논리의 커다란 딜레마는 단기적인 가치와 장기적인 가치의 모순에서 기인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종족이나 국가의 단기적인 미래를 위한 가치를 선택하기는 비교적 쉽다. 전 세계의 장기적인 미래를 위한 가치를 선택한다는 것도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상당히 쉽다. 반면에 이들 두 전망을 연결해서 보편적인 환경 윤리를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을 결합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 인간이 어리석게도 걸려서 넘어지기 쉬운 병목을 인류와 다른 생명체가 쉽게 통과하게 해 주는 유일한 지침이 바로 보편적인 환경 윤리이기 때문이다. (86쪽)

수마트라코뿔소라는 종의 죽음은 나이가 든 종의 자연스러운 결말일 수도 있다. 천수를 누린 노인의 임종처럼 우리는 그들이 영면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다, 전혀 아니다. 그런 생각을 떨쳐 버려라! 앞서 말한 그런 생각은 명백히, 그리고 위험천만하게 잘못된 것이다. 수마트라코뿔소와 사라지는 모든 종들은 적어도 생리적인 측면으로 보면 모두 어려서 죽는다. 종이 자연적인 생활사를 겪는다는 것은 잘못된 유비에 근거하고 있다. 위험종은 치료를 하기에는 너무 돈이 많이 들고 삶을 연장하는 것이 무익한 임종 환자와 같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희귀하거나 감소하는 대다수의 종은 어리고 건강한 개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단지 생장하고 번식할 공간과 시간을 필요로 할 뿐이다. 그 공간과 시간을 빼앗아 간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다. (141쪽)

우리는 절멸한 종의 고고학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 고상한 야만인은 존재했던 적이 없다.
- 사람이 점령한 에덴은 도살장이었다.
- 복락원은 실낙원이다.

곰곰히 따져보면 이 대체 가설[생물다양성이 늘어나면 생산량도 늘어난다는 가설]은 말만 그럴듯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생산량이 뛰어난 어떤 종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생물 다양성의 풍부함이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한 가지 수단일 뿐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 다양성이 증가될 경우 부수적인 결과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종들이 다른 종의 생장을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 이 결과는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 이들은 적어도 32종에 달하는 그룹 내에서 생물 다양성의 증가와 함께 생산량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 주었다. (181쪽)

나는 여기에서 생태계 수준의 경제 가치와 생산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생태계 내의 모든 종, 특히 절멸 위험에 처할 정도로 희귀한 종들을 구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음을 일단 시인하려고 한다. 상아부리딱따구리가 없어진다고 해도 미국의 번영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 뭐하러 그런 쓸데없는 종들을 구하려 하는가? 그러나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가치 척도'라는 것은 야만적인 기업 회계에 봉사하는 노예일 뿐이다. 1973년 결제학자인 콜린 클라크는 흰긴수염고래의 경우를 예로 들어 이 점을 설득력있게 따지고 있다. ...... 콜린 클라크의 맹목적인 답안은 단순하다. 죽은 흰긴수염고래의 환금 가치는 현존하는 시장과 관련이 있는 단위, 즉 고래의 기름과 고기의 단위 무게당 가격에만 근거한다. 그러나 과학, 의학, 미학 그리고 우리가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분야의 지식이 늘어 감에 따라 살아 있는 흰긴수염고래의 가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 그 누구도 어떤 동식물과 미생물이 가진 미래 가치를 완전히 추정할 수 없다. 그 잠재력은 이미 알려진, 그리고 아직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스펙트럼을 가로질러 펼쳐진다. (183-4쪽)

이처럼 생물계를 보존하는 것은 우리의 장기적인 물질적 번영과 행복을 위해 필수적이다. 생물계를 보전하자는 주장의 이유로 이 정도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생물계를 지켜야 하는 데이는 더욱 심오한 이유가 있다. 나는 이것을 다음 장에서 보여주고자 한다. 이것은 인간이라는 종의 우수성과 자아상을 정의하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203쪽)

지금으로부터 30억 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지구상 모든 생물들의 조상은 같다. 유전적인 통일성은 진화적인 계보학을 재구성하려고 노력하는 유전학자와 고생물학자에 의해 정확하게 재확인된, 사실에 근거한 역사이다. 만약 호모 사피엔스가 통일된 창조 신화를 가져야 한다면... 진화의 역사만큼 종을 확고하게 통합시키는 것은 없다. 이것이 자연계의 관리인 정신을 옹호하는 다른 가치이다. (211쪽)

야생 지역을 정확히 인식한다는 것은 척도의 차이일 뿐이다. 자생 식물과 척추동물이 사라진 오래된, 교란된 환경에서조차도 세균, 원생동물, 그리고 작은 무척추동물은 여전히 원시의 기질을 유지하고 있다. ... 과학자들은 이렇게 압축된 세계들을 이제야 탐험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생명의 놀라움을 깨닫기 위해 에콰도르를 방문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미시 세계에 바탕을 둔 미소 심미학은 창조적인 마음에 여전히 미지의 야생 지역으로 남아 있다.
미소보호지역(microreserves)을 만들자는 강력한 주장이 있을 수 있다. ... 하지만 미소 보호 지역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이들은 커다란 짐승이 계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거시 보호 지역(macroreserves)이나 거대 보호 지역(megareserves)의 대체물은 될 수 없다. (227쪽)

통합된 환경 운동의 지도 원리는 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장기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만약 200년의 환경주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게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넘어 다른 사람들을 보고 나머지의 생명을 바라다볼 때 마음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지역에서 나라로, 그리고 그 너머로, 자신의 일생이라는 짦은 시간에서 수세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류사의 확장된 미래까지 시야를 확장할 때 환경주의는 힘을 받는다. (240쪽)

정부의 협정 체결 능력은 분쟁 지역을 국제적인 평화 공원으로 바꾸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무기를 두드려서 보습으로 만들 듯이 전쟁터를 자연 보호 구역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이 있는 가장 중요한 장소는 남북한 사이의 비무장 지대이다. 한국 전쟁을 종식시킨 1953년 휴전 협정 이래 길이 240킬로미터, 폭 4킬로미터의 무인 지대 DMZ는 한반도의 허리를 띠처럼 감으며 자연 통로를 이루고 있다. 미래의 통일 한국은 이 땅을 거의 아무런 비용을 들이지 않고 가장 크고 훌륭한 야생 생물의 천국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반세기 동안 교란되지 않은 삼림이 생장하여 굽이치는 봉우리들을 덮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인 김계중 박사가 처음으로 제안한 공원 조성 아이디어는 DMZ의 자연 공원화를 위해 전적으로 노력하는 국제적인 비정부 기구인 DMZ 포럼에 의해서 추진되고 있다. (279쪽)

절멸 위험종법이 약화되기를 바라는 비판자들은 이 불완전한 결과를 실패작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아마 건강을 회복하여 떠나는 사람들보다 죽는 사람들이 더 많은 병원의 응급실도 실패작이라고 할 것이다. 미국의 자연 보호 구역을 위해서는 사회가 응급실을 유지하듯이 더욱 많은 기금과 전문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비판자들은 이 법의 시행이 미국의 경제 발전을 저해하므로 생명을 구하는 일은 국익이 없다고 딴지를 건다. 이보다 더 진실을 왜곡하는 것은 없다. 최악의 경우에도 절멸 위험종법은 수정과 발전을 통해 우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할 것이다. ... 이 법이 남용되어 발전을 저해한 적은 거의 없다. ... 절멸 위험종법에 대한 반대가 빈번한 미국의 농업 지대와 방목 지대에서는 절멸 위험종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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